▲전두환씨 성명발표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1995년 12월 2일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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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사태만큼의 폭동이 나오지 않은 것은 권한대행이 아닌 현직 대통령 김영삼이 전두환 처리를 진두지휘해 보수진영이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극우세력에 대한 보수정권의 통제력이 지금보다 강해 극우세력이 임의로 행동하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속에 대한 저항의 강도는 지금과 달랐지만, 전두환 구속은 윤석열 구속과 맥이 닿는 부분을 띠고 있었다.
당시 국민들이 전두환 구속을 지지한 것은 그가 5·18 광주에서 자행한 만행에 치를 떨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두환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을 받았다는 판단에도 기인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권을 획득하거나 강화하지 못하고 12·12쿠데타, 5·17쿠데타(비상계엄 전국확대), 5·18 학살 등을 연달아 벌여 정권을 잡고 권력을 강화한 것을 응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작동하고 있었다.
당시의 검찰 구속영장에도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국회에서 헌법제정특별위원회를 구성, 새로운 헌법질서 창출이 모색되는 등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 군 내부에서도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 즈음"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전두환이 민주주의를 위협해 국민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그 같은 인식이 민주진영은 물론이고 중도층과 일부 보수진영까지도 움직여 전두환 구속이 비교적 평온하게 집행됐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전두환의 자유를 박탈했다는 점은 외국 언론의 눈에도 포착됐다. 그달 5일자 <조선일보> 7면에 의하면, <뉴욕타임스>는 전두환을 감옥에 넣은 에너지가 한국 민주주의라는 것을 "그가 그토록 저지하려고 했던 민주주의의 단죄 대상이 되고 만 것"이라는 문장으로 전달했다.
전두환은 민주주의를 저지하려 했지만 도리어 그 민주주의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평이다. 이 신문은 한국 민주주의가 종래의 아시아 민주주의보다 발전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전·노 전(前) 대통령의 구속은 아시아 전역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과거 아시아에서는 독재정부라 하더라도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독재 자체에 대한 평가는 유보됐었다. (중략) 그러나 전·노 씨에 대한 처벌은 이제 그러한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80년대에 생활 형편이 나아진 한국 중산층이 전두환 처벌을 지지하는 것을 염두에 둔 논평이다. 아시아 민주주의를 저평가하는 뉘앙스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이 전두환 구속을 추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전두환의 계승자들
이처럼 4·19와 부마항쟁과 6월항쟁 등으로 표출된 한국인들의 민주주의 열망은 전·노 구속이라는 초유의 전직 대통령 구속을 낳았지만, 이 열망은 그 뒤에도 온전히 성취되지 못했다. 전두환의 민정당을 계승하는 세력이 그 후에도 한국 사회를 상당부분 지배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을 방해하고 지연시켰다.
전두환의 계승자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한 국가범죄인 5·18의 진상규명 및 재평가를 방해하고, 대중과 소수자와 노동자 등의 인권과 권익 향상을 저해했다. 또 자신들에 앞서서 한국 민주주의를 짓누른 일본제국주의의 범죄를 옹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외형상으로는 일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사회 지배 스타일을 옹호하는 의미도 띠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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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속에서 1995년 이후로 이명박·박근혜·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배출됐고, 이들은 국민적 저항을 받고 퇴임 후에 혹은 재임 중에 구속을 당했다. 윤석열 같은 역대급의 극단적 인물이 출현한 것은 전두환에 뿌리를 둔 세력이 여전히 상당한 힘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1995년 당시의 국민적 열망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는 점은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그의 확신범 같은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윤석열 구속은 전두환의 유산이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를 옹호하는 국민의힘의 태도는 그 유산이 아직 강렬함을 시사한다. 그래서 그의 구속은 전두환의 잔재를 완전히 지우고 민주주의를 성취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이번 일은 '전두환 구속'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고 똑똑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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