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21 10:38최종 업데이트 25.01.21 13:02
  • 본문듣기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공수처 출석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 직후인 15일 오후 장문의 편지글을 내놨다. "국민 여러분, 새해 좋은 꿈 많이 꾸셨습니까?"로 시작한다. 엄동설한, 국민을 한 달이 넘도록 길거리로 내몬 장본인의 인사치고는 참 고약하다. 긴 글에 '사과'나, '죄송'이라는 단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경시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면 어떤 짓을 하는지"라며 야당을 성토하고 계엄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글을 읽으면서 민주주의를 경시하는 대통령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고 어떤 짓을 했는지 구치소 거울을 보면서 반문해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은 '법치'와 '불법'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궤변적 주장을 반복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불법적 탄핵을 일삼으며 입법 폭주를 거듭했기 때문에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게 내란 사태 이후인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와 공수처·검찰·경찰의 내란죄 수사에 불법이라는 잣대를 스스럼없이 남발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법원에도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체포영장이 집행되던 날조차도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며 수사당국과 법원을 싸잡아 성토했다.

법치가 무너진 절대주의 시기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시작된 15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체포 시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유성호

법치란 법에 의한 정치를 말한다. 그리고 법은 입법부의 입법 행위와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구현되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법을 준수할 책무가 우선되는 것이지, 불법을 스스로 판단할 권한은 누구도 준 적이 없다. 권력자가 스스로 법을 재단하고 그 법이 강요되는 국가를 '독재 국가'라 하지 '법치 국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윤 대통령의 2년 6개월은 법치가 무너진 절대주의 시기였다. 법 밖에 존재했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 권력의 온갖 비리와 불법을 두둔했던 검찰... 윤석열 정권의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가 아니라 법비(법을 악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국가였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그래 놓고도 법치를 말한다.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가 오직 '소환 불응'을 이유로 현직 대통령을 체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수사권 없음을 이유로 진술을 하지 않았으니, 전 세계를 뒤흔든 체포 작전의 실익은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게다가 조사라는 목적이 달성됐다면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국가원수를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구속영장 쇼핑을 하려고 합니다." - 국민의힘 대변인 논평

"내란죄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라는 국민의힘 주장이 맞다면 법원은 공수처에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까지도 불법이라는 국민의힘이 "구속영장 쇼핑"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란을 두둔하고 있다.

불소추 특권을 가진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발부한 것은 내란 혐의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엄중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증거인멸 우려가 없으니 불기소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은 국민의힘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관저에서 경호원을 인질 삼아 버티며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대통령을 체포해 빠른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직접적인 실익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고 법치를 말하던 대통령이 군부독재 시절과 같은 절대 권력을 쥐려고 스스로 괴물이 됐다. 그러나 이런 죄를 대통령에게만 물을 것도 아니다. 온갖 불공정과 비상식, 불법을 두둔하고 눈감아왔던 국민의힘 의원들. 체포를 막아서고 잡혀가는 범죄자에게 큰절까지 하던 모습은 내란 동조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기 충분하다.

오죽하면 보수정당에 몸담았던 정옥임 전 의원조차 '(대통령) 앞에서 아부하고 중진으로서 말할 위치에 있는데도 말 한마디 못 한 그 사람들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했겠는가? '내란의힘'이라는 조롱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행보는 12.3 내란 사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극우 지지자 등 떠민 국민의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남소연

19일 법원에 의해 대통령의 구속이 확정되었다. 대통령이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직접 나서 구속의 부당성을 주장했다지만 그가 관저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사건의 엄중함이나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면 구속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은 그다음에 있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이 법원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무법천지가 된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녔다는 소식은 대통령의 구속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난입한 계엄군과 법원 유리창을 부수고 난입한 극우 지지자들 앞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이렇게 유린당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경찰의 과잉 대응"이 문제였다는 취지로 시위대를 옹호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할 말을 잃게 한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병한 십자군 전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라더니 논란이 되자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선을 그었다.

계엄 해제 국회 의결부터 19일 법원 폭동 사태까지 번번이 법치주의에 맞서왔던 국민의힘이다. 입법부와 정당의 소임, 무엇하나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다. 대통령과 극우 지지자들 사이에서 내란 옹호의 매개체 역할만 충실했을 뿐이다. 보수 연단에 올랐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원 폭동 세력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면 과한 억측일까?

윤 대통령은 체포에 앞서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정권 재창출을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란을 획책하는 대통령의 재탄생을 바라지 않는다.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 세 번을 집권한 보수 정권, 박근혜 윤석열은 탄핵 당했고 이명박도 온갖 비리로 형을 살았다. 보수 후보로 당선된 대통령 모두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은 것이다. 그래 놓고도 이 혼란의 와중에 정권 재창출을 이야기한다. 후안무치한 정권욕만 남았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끔찍한 미래라 열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작 끔찍하게 생각하는 일은 윤석열 정권의 재탄생이다. 공정과 상식, 법치를 내걸고 불공정과 비상식, 불법을 자행하는 정권, 내란을 획책하고 영구 집권을 획책하는 정권, 이런 정권의 재탄생은 악몽이다.

세 번이나 불량 대통령을 내세운 국민의힘, 공장이 이랬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 정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무슨 낯으로 정권 재창출을 이야기하나? 극우 폭동 세력을 부추겨 대통령을 지키는 정당이라면 차라리 해산하는 게 낫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프리미엄 안호덕의 암중모색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