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22일 12.12및 5.18 사건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수감중이던 전두환이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 측근들에 둘러싸여 안양교도소에서 출감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하늘이 두 쪽 나도 사면은 안 돼요."
아이들은 벌써부터 '훗날'을 걱정했다. 체포된 윤 대통령이 조만간 구속되고, 형사 재판 절차를 거쳐 중형이 내려지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아이들의 관심은 그다음이었다. 범죄 혐의로 기소되고 형이 확정된 역대 대통령 중에 제대로 단죄된 경우가 있었는지 모두가 반문했다.
한결같이 전두환의 '전례'를 들이댔다. 교과서에서도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데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어 아이들의 머릿속에도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전두환이 법적으로 단죄 받지 않은 게 우리 현대사의 최대 치욕이라고 강조하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 중 최대 실책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말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 혐의 등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그들을 불기소했다.
하지만 5.18 특별법을 통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공소시효 정지 규정까지 만들어졌고, 재수사를 통해 전두환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는데, 당시 적시된 죄목중 하나가 '반란 수괴'였다. 지금 국회가 발의한 특검법상 윤 대통령의 혐의와 동일하다.
그러나 구속수감이 된 지 채 2년도 안 되어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전격 사면 결정이 내려졌다. 외견상 자신이 처벌한 범죄자를 스스로 풀어준 셈이지만,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김대중의 사면 건의가 있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동서 화합을 통한 국민 대통합'이었다.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사형 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전두환을 용서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마디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선의가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윤석열에 의해 공정과 상식이 부정당했듯, 전두환에 의해 용서와 사과가 조롱당했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분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온존한 지역감정은 해소되지 않았고, 세대별, 성별, 이념 갈등에다 경제적 양극화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은 만신창이가 됐다. 반사이익으로 집권하고 갈라치기로 국정을 운영한 윤 대통령의 '반정치' 행태는 시나브로 극단화된 우리 사회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전두환 사면을 건의한 덕에 김대중 대통령이 큰 정치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오판으로 정의와 법치주의가 훼손되었으니 그 과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 아이는 화합과 국민 대통합이라는 말은 허울에 불과하다며, 우리 사회에 정의와 법치주의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의와 법치주의가 훼손된 화합과 통합은 한낱 정치적 야합에 불과하다는 거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또다시 윤석열을 사면한다면 전두환의 '전례'보다 훨씬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거라 우려했다.
사족: 한 아이는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직후 자신의 카톡 상태 메시지를 이렇게 바꿨다고 했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남긴 금언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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