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4 19:28최종 업데이트 25.01.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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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한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에 버스 바리케이드 및 철조망,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다.권우성

"절대로 국민들 앞에서 숨지 않겠다. 어떤 일이 있을때 마다 늘 나와서 잘했든 잘못했든 국민들 앞에 나서겠다."

2021년 9월, 윤석열이 대선후보 시절 SBS 집사부일체에 나와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이 무색하게도 윤석열은 관저에 숨어 있습니다.


정훈님도 알다시피 그는 숨어 있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내란죄 피의자인 그는 이미 세 차례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이에 불응했고, 결국 법원에서 체포영장까지 발부됐습니다. 하지만 공수처와 경찰이 그를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2024년 12월 31일부터 2주가 지났는데, 아직 윤석열을 체포하지 못함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3일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즉 기득권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앞에서 법은 무의미했고 공권력은 무력했습니다.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는 걸 목격했고, 이는 사실상 법을 무너트리면서까지 대통령을 지키고자 하는 '반동'이 승인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 참으로 기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극우 유튜브 스타가 된 대통령, 인간 방패와 백골단까지 탄생시켜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다수의 언론사들은 '이제는 헌재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윤석열을 체포하느냐 마느냐입니다. 결국 탄핵 심판 이전에 체포 여부에서 윤석열의 운명이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보는 겁니다.

윤석열이 1차 체포영장이 집행되기 이틀 전인 지난 1일 관저 앞 지지자를 향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밝힌 것엔 일종의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잡혀가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그 다음날 "경찰이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라는 윤석열 변호인 윤갑근 변호사의 발언 역시, 지지자들에게 경찰을 막아달라는 사실상의 '총동원령'으로 해석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체포영장 집행 실패는 사실상 윤석열과 윤석열 지지자, 극우 유튜버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승리의 경험'을 안겨주게 됩니다.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겁니다.

국민의힘 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앞에서 ‘내란수괴’ 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우성

표면적으로 윤석열의 건재함이 입증되자, 체포영장 집행 유효기간 마지막 날인 6일, 국민의힘 의원 45명이 관저 앞으로 모여서 '인간 방패'가 됐습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법치주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버린 겁니다.

윤석열이 체포되는 순간, 아마 국민의힘은 대안을 찾아야 했을 겁니다. 야당의 공세를 막을 준비를 해야 하고, 대선에 나갈 만한 인물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윤석열이 버티는 동시에 극우를 중심으로 지지세력을 규합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윤석열이 다시 보수의 구심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관저 앞에 모인 45명 중 영남 의원과 비례대표가 35명이었다고 합니다. 공천이 당선으로 직결됐거나,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이들입니다. 소위 '배신자'가 안 되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윤석열을 지키는 일이 '진짜 보수'임을 어필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 것입니다.

지난 10일에는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의 주선하에 국회에서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청년들, '백골단'의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백골단은 이승만 정권 때는 '정치 깡패' 집단이었고,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무분별하게 시민을 폭행한 사복경찰 체포단으로서 '국가폭력'의 상징입니다.

윤석열은 경호처에 의해 경호를 받고 있는데, 윤석열 관저 주변을 돌아다니는 '자경단'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일입니다. 하물며 그 이름을 '백골단'으로 지을 수 있었고, 그들의 뒤를 국회의원이 받쳐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체포영장 집행 실패가 우리가 만들어온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겁니다. 법 위에 윤석열이 있다는 것이 입증됐으니, 그들의 지지자들도 윤석열을 지킨다는 명목으로는 현행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발상이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요?

황당한 '윤석열 인권' 타령

인권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릴 예정인 전원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 상정 철회 및 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하며 김용원 위원의 입장을 막고 있다.이정민

정훈님, 사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의 체포·구속을 막으려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9일 인권위가 '윤석열 방어권 보장'(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 안건을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김용원 상임위원과 강정혜·김종민·이한별·한석훈 위원이 발의한 이 안건은 '윤석열 체포·구속 자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절차 정지'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시민단체와 인권위 직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13일 전원위가 열리지 못한 것이 천만 다행입니다.

13일 김용원 상임위원은 회의실 출입을 막아선 이들 앞에서 "내란 수괴라고 해도 인권이 있어요"라며 윤석열 방어에 앞장섰습니다. 약자들의 인권 침해를 구제하는 기관인 인권위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는 낯 뜨거운 광경입니다. 윤석열이 대체 지금 무슨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나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윤석열 피해자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정 실장은 14일 입장문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와 공수처가 언제든 성벽을 허물고 한남동 관저에 고립된 윤 대통령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려고 한다"라며 "직무가 중지됐다고 해도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어느 남미의 마약 갱단이 '성벽'을 치고 체포영장에 불응하면서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는 15일로 알려져있는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지지자 결집과 여론전을 노린듯한 메시지입니다.

이렇듯 윤석열은 부당하게 탄압받으며 체포 위협에 휩싸인 억울한 피해자 혹은 보수의 순교자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적대적 양당제와 보수 진영의 '윤석열 동정론'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12.3 내란 사태를 두둔하는 일이 정치권에서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체포영장 집행 실패가 만들어준 '틈'이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 지지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한 번 더 실패하면 끝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연합뉴스

아시다시피 요즘 여론조사 결과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1]에서는 윤석열 탄핵 찬성은 64%, 반대는 32%로 조사됐습니다. 탄핵소추안 직전인 2024년 12월 둘째 주 조사에 비해 찬성은 11%p 떨어졌고, 반대는 11%p 올랐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34%로, 36%인 더불어민주당과 오차범위 내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보수 대결집'입니다. 체포에 실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곧장 체포할 만큼 잘못한 것은 아니다'라는 신호를 준 것입니다. 반면 신병 확보는 국회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야당은 정국 주도권을 점차 잃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무기력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니 지지세를 확산시키기 어렵습니다.

MBC가 1월 초 12개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이념 성향을 물은 조사에서 보수가 진보보다 최대 1.7배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보 성향의 '여론조사 꽃'과 2003명을 조사한 조원씨앤아이-스트레이트뉴스 제외). 보수층이 '윤석열 지지'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은 일종의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선 체포영장 발부 이후로 "대체 언제 체포되는 것이냐"면서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말이 농담처럼 나옵니다.

결국 쟁점은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아닐까요? 인간방패가 된 국민의힘 의원, 백골단의 등장, 인권위의 황당 안건 등은 결국 윤석열이 관저에서 버틸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러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윤석열이 체포된다면 국면은 곧바로 전환될 겁니다.

하지만 영장 집행에 또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실패하면 사실상 탄핵 심판까지 '버티기'는 기정사실화됩니다. 그 사이에 '윤석열 지키기' 여론이 어떻게 날뛸지 알 수 없고, 이는 분명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면서 사실상 윤석열의 버티기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공수처와 경찰이 얼마나 체포 계획을 잘 세웠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야당의 제보 공개와 언론의 보도에 경호처가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쉽게 길을 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석열을 체포할 완벽한 계획이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윤석열 체포의 성공과 실패는 이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됐습니다. 공수처가 직접 경호처를 고립시키고, 최상목 권한대행을 설득하고, 안 되면 오동운 공수처장이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기회는 단 한 번 뿐입니다. 실패할 경우엔, 공수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정까지 위험해질 겁니다.
덧붙이는 글 [1] 이번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7~9일 전국의 만 18살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6.3%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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