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오른쪽)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력과 자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결탁해 왔다. 가급적 은밀하게. 괴물과 천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 금기를 보란 듯 깨버렸다. 공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에 '올인'해 막대한 선거자금을 댔을 뿐 아니라 유세 흥행을 주도하며 자신의 도박을 성공시켰다.
미국 정부효율부 장관에 지명된 그는 오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일원이 된다. 한 해 동안 자산이 2배 넘게 증가해 순자산 4320억 달러(약 635조 원)를 소유하게 됐고, 영향력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엑스(옛 트위터)의 CEO이기도 한 그가 현시점 지구촌 최강자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터다.
그런 그가 적극적으로 유럽 정치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유럽 극우 정당들에 윙크를 보내는 그를 향해 유럽의 지도자들은 '내정간섭'이라고 일제히 성토하며 견제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유럽+북미로 집약되는 서구 세계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전쟁이 시작된 모양새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의 소유주가 새로운 국제 반동 운동을 지원하고 독일을 포함한 선거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지난 6일 프랑스 대사들과의 신년회의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정조준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향해 검찰총장 시절 아동 성범죄 조직을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집요하게 들추며 사임 압력을 가한 데 이어, 2월 조기 총선을 앞둔 독일에선 극우 독일 대안당(Afd)에 전폭적 지지를 표한 머스크의 광폭 행보에 압박감을 느낀 마크롱의 첫 견제구였다. 불과 2주 전,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 트럼프와 함께 초대하며 좋은 관계를 맺으려 애쓰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어조다.
트럼프 행정부는 20일로 다가온 대통령 취임식에 프랑스인으로서는 극우 정치인 에릭 제무르와 사라 크나포 두 사람만을 초대함으로써 마크롱 측과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머스크를 성토했던 자리에서 마크롱은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프랑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을 잊었다"는 말로 스스로 판 수렁에 갇혔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테러나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그들의 요청에 의해 프랑스는 군대를 파견했고, 프랑스가 없었다면 그들 대부분은 오늘날 주권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여 국내외로부터 빗발치는 공분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차드의 외교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1~2차 세계대전에서 아프리카 청년들이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으나, 프랑스는 그들의 희생에 걸맞은 그 어떤 감사의 표시도 한 바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우스만 송코 세네갈 총리도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안전과 주권을 수호할 능력도, 권리도 없음을 확인하는 바이다. 오히려 리비아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그 나라들을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경우가 더 많았다"며 마크롱의 망언을 반박했다.
미국 기업인의 소위 '내정간섭'에는 발끈하면서도, 자신들이 행해온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대단한 자비로 여기는 그의 태도는 어제의 제국주의자가 오늘의 제국주의자를 만나 벌이는 자가당착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었다.
일론 머스크는 왜?
처음부터 우파 정치인으로 출발한 트럼프와 달리 머스크는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민주당 지지자였다. 그러던 그가 도대체 어떤 계기로 트럼프 지지자가 되었으며 유럽 극우정당들과 손잡고자 하는 걸까?
2020년 코로나19 발발 무렵, 머스크는 정부의 봉쇄 조치에 격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당시 열정적 트위터 사용자였던 그는 트위터상에서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편파적인 규제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며, 민주당에 대한 의견을 바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무렵, 여성으로 성전환을 시도 중인 아들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아들로부터 의절 당하면서 크게 좌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는 본질적으로 속아서 아들 중 한 명을 위해 (성전환) 서류에 서명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이었고,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었고, (아들이) 자살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 그 후 '워크 마인드 바이러스'(woke mind virus, 정치적 올바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태도)를 없애야겠다고 다짐했다."
머스크는 지난해 7월 22일 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 박사와의 대담에서 전환의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머스크는 트럼프와 크게 의기투합했고 민주당 정부와는 완전히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2024년 7월,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과 가진 대담에서 급격한 정치적 지향점 변화의 계기를 설명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엑스
2022년 트위터를 사들인 이유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당시 언론 환경에서 "트위터가 언론 자유를 위한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피격되었던 지난해 7월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이후 4개월간 열정적으로 트럼프 당선을 위한 도구로 엑스를 사용했다.
그에겐 퍽 효과적이었던 그 무기가 과연 그가 의도했던 대로 주류 언론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해방구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과거 트위터가 죽였던 많은 계정을 살려놓은 대신, 유명 언론인들의 계정을 일시 정지시키며 또 다른 방향의 검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집요함으로 엑스라는 강력한 발판을 통해 유럽 정치에까지 간여하면서 그의 플랫폼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를 구현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혹은 과도한 '워크 마인드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손잡고자 하는 상대가 하필 극우 정당들이라는 건 설득력 있는 얘기일까? 먼저 성조기를 든 대한민국 극우와 유럽 극우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럽 극우 정당들의 공통적 성향은 '자국주권론자'다. 이들은 소위 정치적 올바름(PC주의)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보단 각국의 전통과 고유한 차별성을 지키는 데 관심을 두며, 하나의 지붕 아래 모두를 일렬로 정렬시키는 유럽연합식 질서에 적대적이다. 민족주의적이고, 보호무역을 지향하며, 이민/난민에 대해선 엄격히 통제하고자 한다. 이런 점들은 단일한 국제질서 속에 편입되길 거부하고,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말하며,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트럼프와 상통하는 면을 갖는다.
그러나 이들이 상당한 공통 분모를 지닌다 해도, 캐나다를 합병하고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는 미국이 유럽의 극우들과 과연 안정적 밀월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근육에 힘이 흘러넘치는 강자가 욕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 평화는 지속되기 힘든 법이다.
엑스, 유럽서비스 중단 가능성
마크롱이 공식 석상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전후, 유럽위원회의 프랑스 집행위원이던 티에리 브르통은 엑스 상에서 '내정간섭'을 주제로 머스크와 날카로운 설전을 벌였다. 지난 9일 그는 프랑스 방송인 RMC에 출연해 "일론 머스크가 계속 유럽 선거에 개입한다면 우리는 유럽연합이 가지고 있는 법(DSA)으로 엑스를 통제해야 할 것이고, 그럼에도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루마니아에서 이미 했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월 치러진 루마니아 대선에선 유력했던 사민당 후보가 탈락하고 무소속 후보와 구국연합 후보가 1~2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는데, 틱톡을 이용한 러시아 측 개입이 있었다는 이유로 선거 결과가 무효화 된 바 있다. 공식적으론 루마니아 법원의 결정이었으나 실질적으론 유럽연합의 개입을 통해 이뤄진 결정이었음이 티에리 브르통의 발언으로 확인된 셈이다.
루마니아 경찰 조사 결과, 러시아 측의 개입 정황은 전무했으며 오히려 친 유럽연합 후보가 틱톡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선거 개입한 정황이 밝혀졌다. 선거 개입을 통해 한 주권 국가의 민주적 정치 질서를 교란시킨 유럽위원회는 유럽 선거에 대서양 너머 백만장자의 입김이 들어가는 것은, 선거 무효화 방법을 써서라도 저지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유럽 정치에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행위가 '내정간섭'이라고 연일 공격당하자 머스크는 "당신이 지금 독일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2차대전 당시) 미국 내정간섭" 덕이라거나 "내정간섭이라고? 스타머(영국 총리)가 트럼프의 당선을 막기 위해 영국 정부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와 같은 건가?"라며 냉소적으로 응수했다.

▲2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일론 머스크가 독일 극우정당 공동 대표 알리스 바이델과 엑스 상에서 생중계로 진행한 대담 포스터
엑스
머스크는 유럽 국가들의 격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9일 극우 독일 대안당(Afd) 공동대표인 알리스 바이델과의 대담을 엑스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유럽위원회가 2월 총선을 앞두고 독일 극우 정당 투표 독려를 위해 머스크가 벌인 행동과 토론 내용, 엑스 측이 사용한 알고리즘의 유럽연합 디지털규제법(DSA) 위반 여부를 살피기 위해 150명의 전문가를 투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유럽위원회는 엑스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머스크가 소유한 모든 회사의 연 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지난 8일 프랑스 외교부 장관 장-노엘 바로는 머스크의 유럽 내정 간섭에 대해 "최대한 단호하게" 행동할 것을 유럽위원회에 촉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 내에서 엑스의 서비스 중단 가능성도 언급했다.
유럽연합이 머스크를 향해 쓸 수 있는 최대치의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상대는 지구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2/3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 카드를 꺼내 든다 해도 결국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세상은 큰 폭으로 변할 듯
지난해 11월 10일 <르 몽드>는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인 머스크가 얼마나 집요하게 엑스라는 무기를 사용했는지 분석했다. 머스크는 미 대선을 1개월 앞두고 매일 평균 101건의 글을 엑스에 올렸고 그중 70%는 정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절반 가까이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내용이었다면 나머지는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거나 주류 미디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고 보도했다.
2억 명 이상의 팔로어를 가진 초대형 인플루언서로서의 영향력 외에도 엑스의 소유주로서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발언들은 좀 더 자주 노출되게 만드는 알고리즘 조작을 통해 머스크는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며 엑스를 선거용 무기로 적극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르 몽드>의 보도가 '파워맨'의 과도한 개입이 힘을 발휘해 민의를 왜곡한 결과였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두 달 뒤인 지난 7일 나온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고백은 2020년 바이든이 이긴 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페이스북의) 팩트체커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태도를 보였고 특히 미국에서 그들이 쌓은 신뢰보다 더 많은 신뢰를 무너뜨렸다. (...) 우리는 실수가 너무 많았고 검열이 지나친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저커버그는 2020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4억 달러(약 5842억 원)를 기부했다.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최대 후원자라는 머스크가 기부한 2억 7700만달러(약 4045억원)의 1.4배가 넘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 캠프가 모금한 금액(7억 4300만 달러)이 공화당 캠프가 모금한 금액(4억 2600만 달러) 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많다. 머스크는 자신이 "트럼프를 위해 쓴 돈 보다 선거에 100배는 더 많은 돈을 써온 조지 소로스(억만장자 펀드매니저)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습다"고 엑스에 쓰기도 했다.
적어도 미국에서 치러진 선거가 금권이 아닌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권력과 자본이 맞잡은 손을 모두가 보았고 그들이 함께하는 일들이 요란하게 엑스를 통해 생중계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서슴없이 온 세상을 휘저으며 내정간섭을 하려는 모양새다. 과거에는 자선을 가장하며 해왔던 것을 노골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들이 휘젓고 지나가는 자리엔 골이 패이고 또 어딘가에선 몰랐던 진실들이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머스크와 트럼프 공동 정권은 임기 시작도 전에 전쟁을 시작했다. 대상은 오래된 권력들이다. 어쩌면 앞으로 5년간 세상은 더 큰 폭으로 변할 듯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