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7 11:13최종 업데이트 25.01.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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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5일 국세청 민주원 조사국장이 세종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리베이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과 탈세 행위가 심각한 건설, 의약품, 보험 중개 3개 주요 분야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24년 11월 13일 제일약품이 병의원을 대상으로 약의 처방을 유도하기 위해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받았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제약회사는 제품설명회, 학회, 강연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를 위장하여 의료인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고 한다.

심지어 1박에 66만 8700원 상당의 호텔 숙박을 예약하기도 하고 영업사원들이 의사 자택에 음식을 배달해주거나 대신 차량 정비를 맡겨서 입출고를 해주기도 했다. 게다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현금화해 현금을 제공했다. 이러한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문제는 수십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엄격한 기준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베이트 문제는 정보 비대칭성이 큰 의료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환자는 질병 정보에 대해 충분히 알기 어렵고, 약의 선택권을 가지기도 어렵다. 실사용자인 환자는 의사와 약사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인의 결정이 환자의 치료 및 예방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치우치면 피해를 고스란히 환자가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늘 예민했고, 엄격하게 접근하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단순히 공정경쟁 차원에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문제를 접근하였지만, 지금은 환자의 치료이익을 보호하는 관점에서 강화된 규제법안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10년 쌍벌제 도입과 2014년 처벌규정이 강화된 이후로, 현행 수준의 엄격한 처벌조항이 마련되었다.

법적으로 제약회사는 의료인에게 원칙적으로 어떤 편의도 제공해서는 안된다(약사법 47조). 다만 단서조항으로 몇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먼저 회사는 판매할 제품의 견본품을 병의원에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최소 수량으로 제공해야 한다. 둘째, 자사의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의료인에게 연구비 등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규모가 제한된다.

셋째, 학회 등이 주최하는 학술대회 발표자 및 좌장, 토론자에게 교통비, 식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사용된 비용만 지원해야 한다. 넷째, 자사의 제품설명회 참석자들에게 교통비, 식음료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 다만, 1회 10만 원 이하, 월 4회 이내여야 한다.

다섯째, 신약의 시판 후 조사에 참여하는 의료인에게 사례비를 줄 수 있다. 다만, 사례 1건당 5만 원 이하여야 한다. 여섯째, 의약품 거래 과정에서 선결제에 따라 최대 1.8%의 비용 할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일곱째, 카드사를 통해 의약품 결제 금액의 최대 1% 이하의 적립 점수를 제공할 수 있다.

다음의 예외사항도 넓은 범위의 판촉 행위로 규정하기 때문에 제약회사는 보건복지부에 제공된 편의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해야 하며, 이를 지출보고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일곱 가지 예외 사항을 제외한 편의는 그 어떤 것도 불법이다.

2021년에 국회는 복지부에 제출되는 지출보고서를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약사법을 개정하였다. 약사법에 따르면, 2023년에 작성된 지출보고서를 작년부터 대중에게 공개해야 했다. 보건복지부는 12월까지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여러 차례 했지만, 석연치 않게도 여전히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 엄격한 기준은 작동하지 않는다

약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재화이며, 그 선택권은 의사와 약사에 맡겨져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현실과 법률 사이의 큰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은 대부분 공정거래위원회가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를 공표한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자료를 기반으로 약사법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약회사의 불법 리베이트 사건에 있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경쟁에 관심이 있을 뿐, 의료체계의 특수성은 살피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약회사의 공정경쟁 여부를 판단할 때, 법률상 약사법이 아니라 제약바이오협회가 마련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승인한 공정경쟁규약을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한다.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규정한 공정경쟁규약에서 정한 기준은 약사법과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약사법상 불법임에도 공정경쟁규약 기준에 부합하여 처벌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그중 하나가 기부행위에 관한 위법 여부다.

제약사의 공정경쟁규약에 따르면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에서 제약사는 요양기관 등에게 기부행위를 할 수 있다. 제약회사는 매년 관행적으로 의사회 및 병원협회 등과 협력하여 의료인 및 병원 관계자에게 사회 공헌을 이유로 상금을 포함한 시상식을 개최한다. 예를 들어, 종근당은 '존경받는 병원인상'을, 한미약품은 '한미참의료인상'을, 동아ST는 '동아병원경영대상'을, 한독은 '한독학술경영대상'을, 보령은 '보령의료봉사상'을 매년 시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맹점은 제약사가 전시·광고를 위해 학회 등에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경쟁규약에 따르면, 제약사는 학술대회에 부스 사용료를, 학회 등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광고를, 전문가 및 일반인 대상 교육자료에 광고를 목적으로 비용을 학회에 지불할 수 있다.

한국에는 의학 관련 무수한 학회가 있으며, 학회에서 개최하는 무수한 학술대회가 존재한다. 큰 규모의 호텔에서 열리는 화려한 학술대회에서는 늘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회사가 지원하는 부스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의학회의 웹사이트 하단엔 늘 제약사 및 의료기기 회사의 배너가 자리한다. 이익 제공 대상의 모호성은 있지만, 약사법상 위법하다고 판단할 소지가 있다.

그 외에 제약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의료인에게 지급하는 강연료 및 자문료도, 시장조사에 응하는 의료인에게 지급하는 답례품도 공정경쟁규약에 따르면 공정경쟁에 부합하지만, 약사법상 모두 불법에 해당되는 사례들이다.

약사법상 허용범위 벗어난 공정경쟁 기준 시정되어야

2010~2012년 동안 리베이트로 적발된 기업이 110개가 넘으면서 제약회사 등이 제공하는 불법 리베이트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주목을 받았다. 이에 제약회사가 의료인에게 관행적으로 제공하는 편의를 규제하기 위해 약사법이 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약사의 관행적 리베이트 문제는 여전하며,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돌고 돌아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인들과 제약회사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약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재화이며, 그 선택권은 의사와 약사에 맡겨져 있다. 제약회사는 리베이트를 통한 경쟁이 아니라 가격과 품질로 경쟁해야 한다.

의사와 약사는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제약사가 제공하는 소액의 금품도 엄격하게 생각해야 하며, 환자의 치료 이익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약을 선택해야 한다. 행정기관은 법의 정합성을 따져서 법을 집행해야 한다. 최소한 제약사가 내세우는 공정경쟁규약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된 입법의 범위를 벗어났다면, 이를 문제 삼고 기준을 새롭게 세우는 게 기본 절차다. 하루속히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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