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6 11:41최종 업데이트 25.01.1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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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일자리 박람회2024년 5월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를 찾은 구직자 등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제도는 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올해는 고용보험 시행 30주년이 되는 해다. 1963년에 시행된 산재보험을 필두로 1977년 의료보험(이후, 국민건강보험으로 발전), 1988년 국민연금의 뒤를 이어 1995년에 고용보험을 시행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4대 사회보험제도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용보험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실직자의 생계를 지원하는 실업보험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업급여에 더해 재직자 및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직업능력개발사업), 고용위기에 대응한 고용유지 및 취약계층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임금보조제도(고용안정사업),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모성보호사업, 2001년부터 시행) 등 다양한 노동시장 정책을 포괄하고 있다.

시행 초기 경제위기와 고용보험의 대응

고용보험은 시행 2년 반 만에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다. 1997년 말에 흔히 IMF위기라 불리는 외환금융위기를 맞은 것이다. 최초 시행 당시 실업급여 사업은 상시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체, 직업능력개발사업과 고용안정사업은 70인 이상 사업체를 적용범위로 하고 있었다. 또한 시간제나 3개월 미만의 짧은 기간 동안 고용되어 일하는 임시일용직과 시간제 근로자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1997년 말 기준으로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428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1338만 7천 명 가운데 32.0%에 불과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수급자수는 1997년 4만 9천 명에서 1998년 41만 2천 명으로 급증한다. 실업급여 수급자수는 1999년 48만 5천 명에 이르렀다가, 2000년에 이르러서야 33만 3천 명으로 줄어든다.

경제위기가 수급자 급증의 1차적인 원인이었지만 고용보험의 적용범위를 넓히고 실업급여의 수급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빠르게 개선한 것도 도움을 주었다. 1998년 한 해에만 세 차례에 걸쳐 적용범위를 확대하여 1998년 10월 1일 이후에는 상시근로자 1인 이상인 모든 사업체가 적용대상이 되었다. 월 80 시간(주당 18시간) 이상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와 1개월 이상 고용되어 일하는 임시직 근로자도 적용대상으로 포괄하게 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도 완화되었다. 제도 도입 시에는 이직일 이전 18개월 동안 최소 12개월간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으나 1998년 3월부터는 각각 12개월과 6개월로 자격요건이 완화되었다. 2000년 4월부터는 현재와 같이 이직일 이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업급여의 지급기간도 제도 도입 시에는 30일∼210일이던 것이 한시적인 제도개선 조치를 거쳐 2000년부터는 90일∼240일로 연장되었다. 고용보험은 실업을 예방하는 데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1998년에 휴업 지원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한 근로자가 65만 5천 명에 이르렀고, 1999년에도 37만 명이 지원을 받았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도전: 비정규직 증가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막 걸음마를 떼었던 고용보험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성큼 한걸음 내디딜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와 유연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을 휩쓸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기간제, 시간제, 용역, 특고 등 여러 형태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도 늘어난 것이다.

2010년대 이후에는 디지털 기술이 확산되면서 소위 플랫폼 노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비정규직도 늘어난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이후 사각지대 해소가 핵심과제로 대두되었다. <표 1>은 고용보험 제도 시행 이후 주요 사업과 적용 범위의 변화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표 1>고용보험의 주요 사업과 적용 범위 확대과정황덕순

<표 1>을 보면, 고용보험 제도의 발전과정에서 두 가지 큰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한 경우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 반면 보수세력이 집권한 경우 이렇다 할 정책이 추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의 효과는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률로 확인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이용해 각 정부의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이 지표를 살펴보면 2003년 32.8%, 2008년 44.0%, 2013년 51.1%, 2017년 52.0%, 2022년 69.9%이다(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 위해 2022년의 적용범위를 기준으로 계산하였다). 정부별 적용률 증가분은 노무현 정부 11.2% 포인트, 이명박 정부 7.1% 포인트, 박근혜 정부 0.9% 포인트, 문재인 정부 17.9% 포인트로서 정부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크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2024년 8월 기준 비정규직 고용보험 적용률이 72.6%로서 2022년에 비해 2.7%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두 번째는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용보험 제도가 발전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금융위기,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용보험의 역할을 크게 확대하였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물론 위기가 항상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에 국제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제도 개선 성과가 없었다.

몇 걸음 만에 멈춰 선 전국민고용보험

전국민고용보험은 임금노동자만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으로는 특고,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등 다양한 취업자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5월 전국민고용보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해 12월에는 전국민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로드맵은 2021년 7월에 산재보험 적용직종 + α, 2022년 1월에 일부 플랫폼 직종, 2022년 7월에 기타 특고 및 플랫폼 직종을 대상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2021년 7월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서 2023년 이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또한 전국민고용보험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득파악 체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2020년 말 기준으로 상용근로자의 소득은 반년, 일용근로자의 소득은 분기, 사업소득은 반년, 혹은 1년을 주기로 파악되어 왔으나, 신고 및 행정처리를 위한 시간을 감안하면 고용형태에 따라 소득 발생 시점과 국가의 소득 파악 시점 사이에 반년에서 1년 반의 시차가 있었다. <표 2>는 소득파악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을 요약한 것이다.

< 표 2>소득파악체계 개선 추진 내용황덕순

<표 2>와 같은 제도 변화가 마무리되면 2024년 1월부터는 임금근로자뿐만 아니라 특고, 프리랜서 등의 소득까지 매월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질 예정이었다. 전자세금계산서와 현금영수증 의무발급대상이 확대되고, 여기에 카드 매출 및 임대소득 정보가 연계되면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도 크게 높아지게 된다. 이는 전체 취업자를 고용보험 가입자로서 보호하고, 소득을 기준으로 가입범위 및 수급자격기준 등 보호기준을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또한,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도 소득을 기준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인수위에서는 '고용보험 관리체계를 개인별 소득에 기반한 관리체계로 전환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반 동안 실제로 추진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특고와 플랫폼 노동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실태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를 통해 2024년 5월을 기준으로 80만 6661명의 노무제공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2024년 1∼5월 사이에 실업급여를 받은 인원이 5513명(가입자 대비 수급자 비율 0.68%)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전혜원, '특수고용직 실업급여, 누가 얼마나 받았나 보니', 사사IN, 882호). 이는 적용확대가 끝이 아니라, 실제 적용률을 높이고, 수급률을 개선하는 등 고용안전망으로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국민고용보험을 중심으로 취업에서 은퇴까지 모든 사람을 지원하자

고용보험 시행 30주년을 맞은 올해, 잠시 멈춰 섰던 전국민고용보험으로의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윤석열의 12.3 내란 시도를 무산시키고 탄핵을 이끌어낸 우리 국민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멈춰 섰던 우리 사회가 다시 진보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있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임금근로자를 넘어 일하는 모든 사람을 지원하도록 노동시장 정책을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고용보험 가입이 실업급여뿐만 아니라, 실업자 및 취업자의 직업훈련, 취업자의 실직 예방과 재취업 촉진, 출산·육아 지원, 자녀 돌봄·건강·학업·은퇴 준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지원 등 거의 모든 노동시장 정책으로 이어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림 1]은 다양한 노동시장 이행과정을 지원하는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보험의 역할을 보여준다.

<그림 1>노동시장정책 재구조화 방향황덕순

노동시장 정책이 노동시장 진입에서 은퇴까지 노동생애 전체에 걸쳐 모든 사람의 취업, 실직, 교육·훈련, 출산·육아·재충전 사이의 이행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전국민고용보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제도 시행 3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리는 고용보험의 미래상이다.

황덕순전) 한국노동연구원장사의재

* 필자 소개 : 황덕순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오랫동안 노동시장 정책과 고용보험 관련 연구를 수행해 왔으며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냈다. 참여정부에서 빈부격차차별시정비서관, 문재인 정부에서 고용노동비서관, 일자리기획비서관, 일자리수석비서관으로 일했으며 현재 사의재에서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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