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 친환경 염화칼슘을 뿌리고 계시는 경비원 아저씨.
차유진
그러더니 내용물을 슬그머니 바닥에 쏟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수거자루도 흥건히 젖고, 막걸리 쉰내가 사방으로 퍼졌다. 남자는 주변을 의식한 듯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사라져 버렸다. 몰상식한 행동이라며 대신 흉을 봐줬건만, 경비원님은 "제가 치우면 되죠" 하고 대수롭지 않게 씨익 웃어 보이셨다.
나는 그가 가진 도량의 미소를 살면서 몇 번이나 품었던가. 내 일 아니랍시고 미리 선부터 긋고 지낸 날들이 훨씬 많았을 테지. 호의가 차츰 호구로 취급될까 봐, 똑 부러지게 산 시간만 켜켜이 쌓인 건 아니었는지...! 덤덤한 그의 성품 앞에서 수선스레 넓힌 오지랖이 되려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에게서 맡은 일에 성심으로 임하는 자세를 배웠다. 계절이 바뀌어도 정갈한 옷 매무새는 물론, 매사에 굼뜸조차 찾아볼 수 없다. 보행로 뿐만 아니라 화단 위에 수북히 내려앉은 낙엽들까지 일일히 쓸어담고, 육중한 크기의 쓰레기 수거함까지 물청소해서 햇빛에 말려놓는다.
같이 지켜보신 엄마도 저렇게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은 뭘해도 잘 할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닿는 모든 것들은 늘 야무지고 정성스럽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주어진 소임에 귀천을 두지 않고 근면하는 것, 그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존중을 넘어 존경심을 갖게 하는 것, '스스로의 일에 기본적인 자세만 갖추어도 일터를 잃을 일은 없겠구나...!'란 이치를 깨닫게 해준 진정한 귀인이다.
동네에서 만난 진정한 귀인
입김조차 얼어버릴 듯한 겨울 새벽, 잠시 경비초소에서 나와 기지개를 펴며 잠을 쫓던 모습을 기억한다. 화단 곳곳에 서식하고 있는 길고양이들 얼굴도 일일이 사진 찍어 기억해두고 살피니, 녀석들 역시 그 마음을 알았는지 가끔씩 초소로 찾아와 기척을 한단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선인은 알아보는 법이다.
경비원님의 휴무날, 우연히 동네 산책길에서 조우한 덕에 반려견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2023년 11월 1일, 첫 출근 일자까지 정확하게 떠올리며 낯설고 막막했던 순간을 들려주셨다.
"22년 공직 생활하고 정년퇴임을 했어요. 경비원 일은 처음이라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죠. 집에서도 말렸지만 뭐든 움직이고 싶었어요.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네요.(미소)"
다사다난했던 그의 시간들이 능히 짐작되었다. 행여 덮어놓고 업신여긴 이들 또한 왜 없었겠는가(이 글을 쓰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무작정 시비를 걸어오는 주민으로부터 곤혹을 치르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요쿠르트 안 얻어먹은 주민들이 없었다며 감사함을 먼저 드러냈다.
▲눈이 오던 날. 길을 내주신 경비원 아저씨.
차유진
밤새 폭설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눈 앞에 펼쳐진 설경에 잠시 마음을 빼았겼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이미 보행로는 안전하게 길이 내어져 있었다. 보행기를 밀며 무탈하게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멀찍이 보였다. 아마 경비원님의 이마에도 구슬땀이 제법 맺혔으리라.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느냐'가 더 소중한 것임을 몸소 가르쳐 주셨기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고되더라도 진심 어리게 쌓아가는 당신의 수고로운 하루들을 가슴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나의 경비원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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