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3 14:01최종 업데이트 25.01.13 14:01
  • 본문듣기
박정훈 대령 무죄!중앙지역군사법원이 9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군 형법상 항명 및 상관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공판이 끝난 뒤 박정훈 대령이 응원나온 시민들로 받은 장미꽃을 들고 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이정민

지난 9일,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항명 사건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을 앞두고 다양한 관측이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무죄를 확신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판결하는 법원이 사법부가 아닌 국방부장관의 통제를 받는 군사법원이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군에서 발생한 숱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해병대수사단에 수사 기록 민간 경찰 이첩 중단 명령을 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관련 법령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위 규정은 2022년 3월 8일 제정되어 2022년 7월 1일 시행된 규정으로 군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피해자의 인권보장과 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개정된 군사법원법 제2조 제2항 본문에 따라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절차 및 방법과 상호협력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군인 등의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절차의 투명성과 수사의 효율성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성폭력 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의 경우 군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를 인지하게 될 경우 '지체 없이' 민간 수사기관으로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는 조문이다. 박정훈 대령은 채 상병 사망 원인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범죄 혐의점을 인지하여 위 규정에 따라 이를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했고, 군검찰은 박 대령이 이첩을 보류, 중단시키라는 상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며 항명죄를 덮어 씌웠다.

박정훈 대령을 살린 규정

이 규정은 2021년에 발생한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제정되었다.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를 입고, 이를 군 수사기관에 신고하였으나 부실 수사, 피해자 방치 등으로 극심한 2차 피해를 겪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이후 가해자와 2차 가해, 사건 은폐에 가담한 자들을 수사, 재판하는 과정에서도 군검찰과 군사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에 여념이 없는 막장 행태를 보였다. 일련의 과정은 군 사법·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국회에서 군사법원법을 개정하여 주요 범죄에 대한 수사, 재판 관할을 민간으로 옮긴 것이다.

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영결식에서 고인의 영정이 영결식장을 떠나고 있다. 2024.7.20 [공동취재]연합뉴스

(기자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일각에서는 개정 군사법원법을 임의 해석하여 사망 원인 범죄 수사권이 없는 박정훈 대령이 위법한 수사로 특정 인원의 혐의를 특정하여 민간 경찰에 이첩했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해오고 있으나, 박정훈 대령은 군사경찰에 수사 관할이 있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변사사건수사)'를 진행하던 중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즉 업무상과실치사 범죄 혐의를 인지하여 해당 인원을 즉시 민간경찰에 이첩한 것으로 적법한 수사를 했을 뿐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당시의 법 개정 취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김계환 사령관에게 '지체없는 이첩'을 중단시킬 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입법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해병대사령관에게는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의 이첩 시 이첩 중단 명령을 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에게 한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

맥락상 이는 지휘관이 이첩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이며, 군 사법·수사 시스템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뜻이기도 하다. 상관이 직권을 남용해 수사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3대 범죄 관할을 민간으로 이전하고 법령에 '지체 없는 이첩' 의무까지 명시해둔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 이종섭, 김계환 같은 이들이 이첩에 개입한 행위는 군 사법·수사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쌓아온 노력에 반한다는 것이다.

실제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는 선고에 앞서 지난 11월 21일, 10차 공판에 참석해 방청석에서 손을 들고 재판부에 "군사법원법이 왜 개정된 것인지 꼭 한 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예람이의 목숨으로 만든 변화를 헛되게 하지 말아달라"는 절절한 호소를 남겼다. 판결의 면면에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한강 작가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해병대예비역연대가 9일 오전 박정훈 대령의 1심 무죄 선고 직후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을 출발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까지 행진했다.김화빈

재판부가 판결문에 남긴 의심

이제 남은 것은 재판부가 판결문 곳곳에 남긴 '의심'을 해소하는 일이다.

(군검찰이) 피고인의 권리를 중대히 침해함으로써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진술은) 이치에 맞지 않고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아 보여 이를 쉽게 믿기 어렵다.

군검찰의 공소권 남용과 법정에서의 위증은 모두 범죄다. 나아가 위증을 통해 가리고자 한 수사외압 역시 범죄다. 다만 이 재판은 박 대령의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이기에 재판부가 이러한 의심스러운 사정을 세세히 판단하지 않았을 뿐이다. 박 대령의 항명죄가 무죄라는 뜻은 곧 박 대령에게 내려진 소위 '명령'이란 것이 위법하다는 뜻이고, 위법한 명령을 내린 상관은 범죄 피의자 신분을 면할 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억지로 박정훈을 유죄로 만들고자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면은 박정훈 대령의 유·무죄를 다투는 일을 넘어, 이들 범죄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로 넘어가야 한다. 윤석열이 세 번이나 거부한 특검법 도입의 명분이 충분해진 것이다. 윤석열을 위시한 수사외압의 실체를 밝힐 때가 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은 12.3. 내란 사태 당시 전군지휘관회의를 열고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라 겁박했다고 한다. 체포 방해에 동원되었던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5경비단과 33군사경찰경호대에서는 '공무집행방해'와 '지시불응' 중 어느 죄가 더 무겁냐는 자조적인 말이 오간다고 한다. 법치국가에서 개인의 자의적 명령이 법 위에 있다는 망국적 발상이 온 나라를 좀먹고 있는 가운데, 박정훈 대령 항명죄 무죄 선고는 한 줄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정당하고 적법해야 비로소 '따라야 할 명령'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확인해 준 판결이 다행일 뿐이다.

지휘관 견장을 달고 뱉는 말이 다 명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명령을 할 권위와 권한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지휘관이 위대한 인간이라 주어진 것도 아니다. 다 국민이 만들어준 법에서 비롯된 지위와 권한을 빌려 쓸 뿐이다. 그걸 모르는 지휘관들이 이예람 중사를 비롯한 숱한 군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범죄 피의자 체포 방해라는 사상 초유의 기막힌 현장에 힘없는 병사들을 내몰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024년 9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항명 혐의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판결 직후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변호인이 발표한 이 전 장관의 입장문에 '재판부가 항명죄에 대해 더 공부해보기 바란다'는 비아냥거림이 담겼다고 한다. 임성근 전 사단장은 '자기가 배워온 바에 따르면 항명이 아니라는 재판부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왜곡된 시각으로 오랜 세월 '명령'이 무엇인지 잘못 배워왔으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도 이해가 된다. 모쪼록 이 전 장관을 비롯한 수사외압 세력과 임 전 사단장이 함께 모여 판결문을 여러 차례 읽어보며 진정한 '명령'의 가치에 대해 숙고해보며 반성이란 걸 해보길 권한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