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이 굳게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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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가 되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라고 이전의 연재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우선 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 손주, 형제자매라는 좁은 범위의 가족관계에 해당하여야 하고요. 그다음에는 장례를 치를 목돈이 필요합니다. 만약 장례를 치를 사람이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면 일반적인 장례보다 높은 강도의 분투를 겪게 됩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강도 높은 분투의 과정을 거친 뒤에는 고인의 장례를 상주가 되어 치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선 연재에서 돈이 없을 때 어떤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지 설명했었지요.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시민 공영장례'에 대해서요. 오늘은 고인의 가족이 아닐 경우 어떤 방법을 통해 장례를 치를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가족이 아니면 절대로 장례할 수 없어!'라는 말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거나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이 장례를 치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정말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런 비극이 더는 없으면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쉽게 풀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두 가지 방법 : '장례주관자' 혹은 '시신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인정받기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할 수 있으니 차근차근 따라와주셔야 합니다. 우선 '장례주관자'와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라는 말이 낯설 수 있으니 용어를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장례주관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12조제2항에 등장합니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시장 등은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에 장기적·지속적인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 또는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 사망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 조문의 처음에 등장하는 제1항은 '무연고 사망자'란 누구인지, 그리고 책임 주체는 누구이며 어떻게 고인을 모셔야 하는지를 설명해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제12조제2항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주관할 수 있다는 즉,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주관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는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요? 정답은 장사법 제2조16호의 아목입니다. 제2조16호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람이 누구인지 정의하고 있는데요. 앞서 설명한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있고요. 그다음에는 행정기관과 시설장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목,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입니다. 앞선 '장례주관자'와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장례주관자'는 근거 법령이 애초에 '무연고 사망자'를 정의하고 설명하고 있고요.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이하 아목에 따른 연고자라고 하겠습니다)'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의 범위를 정의하는 조문에 등장합니다.
따라서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장례주관자'인지, '아목에 따른 연고자'인지에 따라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고인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장례주관자'라면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가 될 테고요. 당연히 '무연고 사망자' 통계에도 잡힐 겁니다. 하지만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장례를 치른다면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가 아니게 되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겠지요. 그래서 보통 '아목에 따른 연고자'는 '가족같이 살았던' 사람이 지정 받길 원하고요. '장례주관자'는 그 정도 관계는 아니지만 고인의 유지를 이행해 주고 싶은 사람이 받습니다.
예로 들자면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나 친인척 등은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되는 것이고, '장례주관자'는 친구나 종교 활동을 같이했던 지인 등이 되겠지요. 물론 이들도 비혈연 가족 같은 친밀한 관계였다면 얼마든지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무 자르듯 딱 구분 짓기는 어려울 수 있거든요.
'장례주관자'만 무상 장례? 그럼 누가 돈 들여서 장례하겠어?

▲2019년 12월 1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 숨진 이들의 장례를 맡을 유가족이 없어, 장례식은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라 무연고자에 대한 공영 장례로 구청이 치렀고 상주 역할은 구청 직원과 성북동 주민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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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둘의 차이는 여기서 끝일까요? 아닙니다. 서울시는 모든 '무연고 사망자'에게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장례주관자'가 있다 하더라도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일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공영장례'를 지원할 수도 있지요. '장례주관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무상 장례를 지원받는 셈입니다. 하지만 '아목에 따른 연고자'는 이러한 지원을 받을 수 없지요. 연고자가 되어 장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모두 져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요.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가 아니니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할 수도 없고요.
이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니! 한쪽은 무상 장례가 가능하고, 한쪽은 불가능하다면 누가 '아목에 따른 연고자'로서 장례를 하고 싶어 하겠어?" 저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동안 시행된 사례들을 살펴본 결과 둘은 거의 비등한 숫자였습니다. 때론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더 많기도 했고요. '장례주관자'로 지정받더라도 본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서 장례를 치른 경우도 많았고요.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사랑했던 이의 장례를 치를 때 돈이 들더라도 그의 생전 유지를 따르거나, 여력이 되는 만큼 정성을 다하길 원하지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장례주관자'와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되려면
개념에 대한 설명이 길었지요. 지금부터는 '장례주관자'와 '아목에 따른 연고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절차 등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장례주관자'와 '아목에 따른 연고자'로 지정, 혹은 인정해 주는 주체는 기초자치단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서류는 기초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자' 장사 업무 담당 주무관에게 제출하게 될 것이고요. 이때 요구되는 서류는 보통 이렇습니다.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의 관계 증빙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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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있는 서류들을 전부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 중 하나만 제출할 수 있어도 됩니다. 해당하는 서류를 제출했다면 주무관은 적절성을 살펴보고 '아목에 따른 연고자'로 확인해 주는 공문을 병원과 장례식장, 화장장 등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 공문을 통해 장례를 치를 수 있고요. '장례주관자' 또한 거의 동일하지만 내부 심의가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고인의 장례를 치를 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가 모두 없거나 장례를 기초자치단체에 위임했을 때 가능합니다. 즉, 바로 장례를 치를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제가 만나 본 '장례주관자'와 '아목에 따른 연고자'들은 입을 모아 여기에 소요되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정말 괴롭고 끔찍했노라 말했습니다. 둘 모두 장사법에 근거하고 있으니 생전에 상주를 누구에게 맡길지 정해둘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보완 해야 할 점 중 하나지요.
애도의 권리를 몰라서 빼앗기는 일은 이제 그만
이 글을 쓴 이유는 사람들이 장례가 여전히 직계가족에만 허락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제 장황한 설명을 전부 이해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마지막 이 문단을 여러분이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족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를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기초자치단체에 꼭 문의하세요. 혹시 기초자치단체가 해당 제도에 대해 모른다면 1668-3412(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로 연락해 주세요. 여전히 장례식장이나 병원, 경찰 관계자분들의 잘못된 안내로 장례를 포기하게 되는 비혈연의 친밀한 관계가 많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서 제도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 비극이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기억해 주세요!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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