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이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앞에서 ‘내란수괴’ 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은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라는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버티기를 이어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 의중을 대변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9일 외신기자 간담회 때 "(윤 대통령은) 의도한 비상계엄 선포 목적이 달성되지 못할까 봐 고심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계엄선포의 목적이 달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극우세력은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고 한남동 관저 앞을 지키며 12일에는 반공청년단 출범식을 국회에서 열기까지 했다. 이들의 존재가 윤석열에게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윤석열의 버티기를 가능케 하는 제 1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극우세력의 움직임은 2016년 박근혜 탄핵소추 때도 있었다. 1960년 4·19 때도 마찬가지다.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이 육성한 극우단체를 계승·발전시키고, 그것에 더해 정치깡패들까지 활용했다. 그래서 극우의 힘은 이승만 때가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야성명을 발표(1960.4.26.)한 이승만이 하와이로 망명(5.29)하기 전인 5월 20일, 보수·극우 인사 210여 명이 "좌경급진세력이 제철 만난 듯 날뛰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국민자주연맹을 결성했다(5월 21일자 <조선일보> 1면).
그들 역시 제3자가 볼 때는 4·19에 맞서 반혁명을 시도하는 극우세력이었다. 제임스 캐리 기자의 글을 담은 6월 2일 자 <경향신문> 'AP 기자가 본 반혁명운동'은 "반혁명의 유령이 한국의 신정부에 습래하고 있다"며 그들이 허정 과도내각에까지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이상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극우세력의 움직임은 지금뿐 아니라 1960년에도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권력욕 굉장했던 이승만, 결국 하야하게 된 이유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당시, 미국은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발표 다음 날인 그해 4월 27일,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을 방문한 김정렬 국방부 장관은 깜짝 놀랄 광경을 목격했다. <김정렬 회고록>에 따르면, 그것은 주한미군사령관의 명령으로 작성된 미 군사고문단장의 서신이 송요찬에게 전달되는 장면이었다. 서신의 핵심은 '우리는 송요찬을 지지한다'였다. 당신이 정권을 잡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미국의 움직임은 김정렬의 강렬한 반대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하야 성명이 나오자마자 포스트 이승만을 모색하는 미국의 태도는 그의 퇴진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공개적이거나 가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고, '대안 모색'이 실패한 데서 그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태도가 대통령 퇴진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이승만은 윤석열만큼, 혹은 훨씬 더 권력욕이 강했다. 이승만은 하야를 발표한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번복을 시도했다. 김정렬 국방부 장관은 그날 육군참모총장을 방문하기 전에 경무대부터 방문했다. 호출을 받고 아침에 가보니 허정 수석국무위원(외무부 장관)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위 회고록에 따르면 허정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어제 방송으로 발표한 대통령의 하야 성명서를 국회에 제출해서 인준을 받고 공식적으로 선포하기로 되어 있는데, 막상 성명서를 제출하려고 하니까 대통령께서 지금 좀 가만히 있으라면서 제동을 걸고 계시오"라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식으로 의견을 구했다.
잠시 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승만은 "이 사람들아! 내가 그 서류를 내면 아주 사회가 혼란해져!"라는 말로 하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전날 발표는 구두로 한 것이니 철회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물러날 생각이 없었던 이승만이 어떻게 하야성명을 발표했고, 뒤이어 하야 발표를 철회하려 했지만 결국엔 하야를 받아들이게 됐을까? 이 과정에서 여당인 자유당이 보여준 태도를 살펴봐야 한다.
국민들의 시위가 거세져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게 되자, 자유당 의원들은 내각제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헌 정국으로 국면을 전환해 난국을 돌파하는 방안이 이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난국 돌파용으로 부각된 내각제 개헌은 자유당 의원들에게는 손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부수립 당시부터 보수세력이 희망했던 것이고, 의원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 방안은 시위대를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는 이승만을 돕는 것이었지만, 이승만의 안위를 제1순위에 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승만과 거리 둔 자유당,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