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의 8일 자 기사 <지난해 3분기 세계 반도체 시장 17% 성장… 삼성전자 1위 수성>
조선비즈 보도화면
먼저, 삼성이 매출 1위라는 제목은 사실일까요? 예 맞습니다. 2024년 3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2.9%로 1위입니다. 2위는 8.5%를 차지한 SK하이닉스. 전 세계 반도체 회사 중 1위와 2위가 한국 회사입니다. 진정한 반도체 강국 맞습니다.
이 결과가 좀 이상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뉴스를 보면 TSMC가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것 같고,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의 열 배가 넘습니다. 그런데 어째 TSMC는 아예 순위에 들지도 못하고, 엔비디아는 겨우 7위일까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시장 조사업체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조사할 땐 파운드리(다른 회사가 설계한 칩을 제조하는 회사) 업체를 빼는 경우가 많습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 업체인 엔비디아나 퀄컴의 반도체를 실제로는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서 만들기 때문에 하나의 제품에 매출이 중복해서 잡히게 됩니다. 그로 인해 반도체 시장 규모에 대한 왜곡이 생길 수 있어서 반도체회사의 시장점유율을 조사할 때는 파운드리는 빼는 겁니다.
엔비디아가 순위에서 밀린 건 매출액 기준으로 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적은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엔비디아는 매년 매출이 크게 성장하고 있고, 영업이익률이 높은 데다, 미래 성장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그만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겁니다.
실적이 부진해 지난해 10월엔 사과문까지 발표한 삼성전자가 실제로는 반도체 시장에서 1위라는 이 기사를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기사 본문을 보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 상승한 걸로 나옵니다. 18% 성장이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2023년의 반도체 시장이 워낙 좋지 않아서 기저효과로 저 정도의 상승이 발생한 겁니다.
이건 경쟁사의 실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SK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4%, 93%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삼성전자의 성장률은 경쟁사에 비하면 5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메모리 회사뿐만 아니라 팹리스인 엔비디아 역시 전년 동기 대비 94% 매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상위 7개의 반도체 회사 가운데 삼성전자보다 더 나쁜 성과를 낸 건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한 인텔뿐입니다. 그래서 인텔은 CEO(최고경영자)가 바뀌었습니다.

▲삼성전자 2024년 분기별 실적. 영업이익은 2분기 고점을 찍고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봉렬
그럼, 매출보다 더 중요한 영업이익은 어떨까요? 기사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엔비디아의 영업이익률은 60%가 넘습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도 계속 늘어서 지난해 3분기에는 40%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1%에 불과하고, 며칠 전 발표된 4분기 잠정 실적을 보면 8.7%로 더 떨어졌습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한 자릿수 영업이익은 향후 성장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듭니다. 요약하자면 삼성전자가 아직은 반도체를 가장 많이 만들어 팔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경쟁사에 비해 성장률이 형편없이 떨어졌고, 그나마 많이 팔아도 이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은 다 놔두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1위라는 걸 강조하면 독자들이 기업과 산업 전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삼성전자 HBM 납품 확신? 제대로 보도하라

▲<한국경제>의 8일 자 기사 <엔비디아 젠슨황 "삼성, HMB 성공 확신... 결국 회복할 것">
한국경제 보도화면
현상의 실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기사는 또 있습니다. AI 가속기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삼성전자에 대해 한 발언을 보도하는 <한국경제>의 기사 제목은 <엔비디아 젠슨 황 "삼성, HBM 납품 성공 확신… 결국 회복할 것">입니다.
제목만 보면 삼성전자에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한 해 삼성전자는 AI 가속기에 사용되는 최첨단 메모리인 HBM을 개발해 놓고도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3분기 실적을 발표할 때는 사과문을 함께 발표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HBM을 납품할 수 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사에 소개된 젠슨 황의 발언을 보겠습니다.
"삼성은 HBM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고, 엔비디아가 처음 사용한 HBM도 삼성 제품이었다. 삼성은 위대한 회사고 결국 회복할 것이다."
"삼성이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게 될 것이란 사실에 큰 확신을 갖고 있다."
젠슨 황이 이 정도 발언을 했으면 이번 달에라도 당장 삼성전자의 HBM이 테스트를 마치고 곧바로 납품이 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경제>도 "성공 확신"을 제목으로 삼았나 봅니다. 문제는 젠슨 황의 다음 발언입니다.
"삼성이 단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삼성은 해낼 수 있다"
젠슨 황의 "New Design"이라는 발언을 <한국경제>는 새로운 구조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삼성전자의 HBM은 아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설계를 다시 하지 않으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말로 해석됩니다. <조선일보>가 소개한 "한국 사람들이 이 문제에 조급해하는 것을 알지만, 새로운 디자인에는 시간이 걸린다"라는 젠슨 황의 발언까지 더하면 삼성전자의 HBM 납품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삼성이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게 될 것이란 사실에 큰 확신을 갖고 있다"는 발언은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큽니다. 젠슨 황의 이런 발언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3월에도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개최한 'GTC 2024' 현장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는 사인을 해서 당시 HBM 납품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는 기사가 나왔지만, 그 후로도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었습니다.
젠슨 황이 삼성의 납품 가능성을 자꾸 이야기하는 건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말고 납품 가능한 회사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함으로써 가격 결정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젠슨 황의 발언을 전하는 기사 제목은 'HBM 납품 성공 확신'이 아니라, '삼성은 새로운 HBM 설계 필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요? 아직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가깝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 6월 24일 하노이 삼성전자 R&D 센터에서 열린 한·베트남 디지털 미래세대와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대통령 윤석열의 경우 제대로 된 여론을 듣기보단 극우 유튜버 방송을 즐겨 보다가 잘못된 상황 판단을 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도 조언합니다. 언론 보도를 잘 가려 봐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1등을 하고 있다거나 젠슨 황이 삼성 HBM의 납품 성공을 확신했다거나 하는 등의 기사만 보고 만족하며 현 상황에서 안주하게 된다면, 윤석열과 같은 실수를 해서 삼성전자의 몰락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아첨하는 소리 말고, 쓴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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