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13일 자 <동아일보> 기사 "재래식다방 '흐림' 커피전문점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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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두커피전문점 모집 광고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첫째는 유럽풍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기술원조나 일리(Illy) 등 이탈리아 커피 원두를 내세운 광고가 많았고, 이외에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콜롬비아 커피 맛을 내세우는 전문점 광고가 많았다. 가수 권인하를 내세운 '미스터커피'는 "이탈리아 정통 원두커피의 깊고 풍부한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광고 카피를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페터치니'는 이탈리아 포멕(FORMEC)과의 기술 제휴를 자랑하였다.
두 번째로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수익을 보장한다는 점을 많이 내세웠다. 많은 업체에서 "불황을 모르는 고소득 유망사업, 커피전문점"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영향력 있는 신문에서 체인점 창업에서 실패할 확률은 5%, 성공 확률은 80%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던 것도 이런 체인점 창업 열기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조선일보> 1993년 3월 8일 자).
세 번째로는 베이커리와 커피의 결합을 강조하는 광고였다. 이해 6월 1일부터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카페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음식점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허용된 것이 계기였다. 예컨대 커피전문점 '해피타임'은 체인점 모집 광고에서 '햄버거+피자+커피'를 내세웠고, '맥필드'는 "커피와 즉석빵 종합 체인점"이라는 점을 앞세웠다.
1993년 3월에는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커피체인점이 있었고, 서울에만 400여 개의 매장이 성업 중이었다. 7월이 되자 체인점 형태의 커피전문점이 100개를 넘어섰고, 서울에만 1700여 개, 지방에 300여 개, 총 2000개를 넘어섰다. 매달 100개 이상의 커피 체인점이 문을 여는 셈이었다.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재래식 다방은 흐림, 커피전문점은 맑음"이었다.(9월 13일 자)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한 '교육방송'은 12월 14일 저녁 시간에 '커피전문점 설치 요령'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원두커피전문점의 유행
커피전문점이 체인점 형태로만 유행한 것은 아니었다. 대도시와 도시 근교에 원두커피나 드립커피, 혹은 에스프레소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보헤미안'이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문을 연 이후 대학로의 '에스프레소클럽', 홍대 입구의 '칼디커피', 대구의 '커피명가', 포항의 '아라비카' 등 스페셜티커피 전문점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조선일보>가 1993년 10월 21일 자에 '도시 근교 외딴 카페 인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소개한 카페만 해도 가평의 '뜨락', 포천의 '터', '서운동산', '팔야촌', 광릉의 '야외스케치', 남양주의 '아뜨리', '목마루', 양주의 '사슴의 집', '흑과백', 고양의 '표표', 강화의 '산까치'. 양평의 '힐하우스' 등이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들렸다. 약사가 약국 문을 닫고 커피전문점을 차렸다는 소식이었는데, 개업 첫해에 약국 수입과 커피전문점 수입이 비슷한 정도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서울 양재동에 문은 연 '에르디아'를 운영하는 약사 노정희씨 사연이 <조선일보> 1993년 9월 5일 자에 실렸던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커피전문점 창업에 뛰어들게 만드는 흥미로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원두커피전문점의 유행으로 원두커피의 소비 비중이 인스턴트커피의 1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동아일보>는 원두커피가 '옛 명성'을 되찾았다고 표현하였다.(1993년 5월 19일 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인스턴트커피 유행으로 커피 맛이 획일화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원두커피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해에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일본과 대만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국제농업개발원이 이해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간 세 나라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커피 소비량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간 352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1년에 72잔을 마시는 대만보다는 압도적으로, 그리고 195잔을 마시는 일본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 결과였지만 일본을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에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1/4이었던 그때나, 일본을 따라잡은 지금이나 일본을 이기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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