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9 10:33최종 업데이트 25.01.09 10:33
  • 본문듣기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윤석열 체포 1박 2일 철야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체포하기 위해 진격 투쟁을 시작하며 관저로 향하고 있다.유성호

요즘 윤석열 체포·탄핵 집회에 참석하고, 이와 관련된 뉴스를 보느라 너무 피곤합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진행된 대통령 관저 앞 집회에도 참석하였는데, 태어난 지 80일이 된 아이를 돌보느라 저녁 7시엔 집회 현장을 벗어났습니다.

토요일 서울 한강진역을 내려가는데 반대편 계단에서 수많은 인파가 '윤석열 체포'를 외치면서 올라왔습니다. 죄책감과 미안함, 고마움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아이 기저귀를 갈고, 달래고 재우면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했습니다. '잡혀갔나?'라는 기대로 핸드폰을 켜지만 나쁜 소식만 들려옵니다.


체포를 하지 못한 아쉬움과 고생하는 시민과 동료에 대한 미안함,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배우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윤석열의 체포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의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나의 돌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화가 난 시민들이 당장 대통령 관저 앞으로 달려갈 수라도 있지만 멀리 떨어진 지역은 화난 마음을 나누고 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국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다고 합니다. 광장과 여론에서 배제된 존재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위기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의힘에 맞서, 민주주의를 배달합니다

국민의힘 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앞에서 ‘내란수괴’ 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우성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의 전략은 명확해 보입니다. 법 기술과 경호처의 물리력을 이용하여 최대한 헌법과 법률의 심판을 늦추는 겁니다. 확보한 시간 동안 강성지지층을 타깃으로 여론전을 펼쳐 '준비된 조기대선'을 치르자는 것일까요?

언론에서도 윤석열 탄핵체포와 탄핵반대 집회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도하면서 마치 윤석열 관저 앞이라는 링 위에서 진보와 보수가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법원 체포영장이 불법이고,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조합원이 경찰을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황당한 가짜뉴스들이 검증되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윤석열의 쿠데타를 막지 못한 관료들은 이제 와서 헌법과 합의를 들먹이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무능한 공수처의 모습 역시 법 집행에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과 잔당들은 군대를 동원해 대한민국의 권력을 사유화하려고 했던 일을 '해프닝'으로 만들려는 중입니다.

지배 엘리트들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세상을 운영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자, 계급과 힘의 논리에 따라 세상이 돌아간다는 잔인한 진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광장뿐만 아니라 일터와 지역, 여론조사 표본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까지 연결되어야 할 때입니다. 광장에서 꽃피운 민주주의가 우리의 일상으로 배달되어야 하고, 광장에 참여하기 힘든 존재들의 이야기가 광장으로 배달되어야 합니다.

배달을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라이더들입니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탄핵은 신속하게, 배달은 안전하게'라는 슬로건을 걸고 민주주의를 배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동료 라이더들의 일터에 방문해 민주주의와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함께 외치는 대장정입니다.

코스가 의미심장합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는 TK 지역을 훑고 대전과 경기도를 거쳐 서울에서 개최되는 토요일 집회에 참여합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대구경북을 방문합니다. 살려달라는 겁니다. 라이더들은 함께하자고 말하기 위해 갑니다.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라이더의 배달통에 담긴 요구와 민주주의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들이 '전국대행진'에 앞서 내걸은 슬로건라이더유니온

모두의 시선이 윤석열에게 향해있던 12월 31일 국민의힘이 노동약자보호법을 입법 발의하였습니다. 특고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법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은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노조법 개정과 안전운임제 등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법안만을 밀어붙입니다. (관련 기사: '노동약자 지원법'이 초래할 심각한 문제 https://omn.kr/2bdz4)

법을 발의한 임이자·최수진·박성훈·김위상·조지연 의원은 1월 6일에 윤석열 체포영장을 막겠다고 대통령 관저로 달려갔습니다. 국민의힘은 체포영장 저지, 전광훈 목사 집회 참여 등 바쁜 일정 속에서도 참으로 성실하게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윤석열 체포·탄핵 집회라는 거대한 투쟁과 함께 우리의 일상 투쟁 역시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윤석열을 파면하고 잡아가는 것은 헌법재판소와 수사기관에서 할 수 있지만 윤석열의 정치와 정책은 일상의 투쟁과 정치 활동을 통해서만 탄핵할 수 있습니다. 라이더들이 노동현장으로 떠나는 이유입니다.

배달라이더 전국대행진의 일정라이더유니온

라이더의 요구사항인 담긴 배달통을 열어봅시다. 첫 번째로 윤석열 정부가 가혹하게 탄압하고 없애버렸던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냥 재도입이 아니라 배달노동자에게도 적용하라는 요구입니다. 배민 쿠팡 등 플랫폼업체들은 AI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배달료를 실시간으로 변동시키는 데 최저요금을 2000원대로 깎아 버렸습니다.

특고 플랫폼노동자라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은 안전운임제를 확대하여 재도입하거나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활용하여 특고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라고 주장합니다.

배달하다 시민을 다치게 할 때 보상할 수 있는 유상운송보험을 의무화하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지금은 보험을 들지 않고 일을 하는 라이더가 많아 국민의 생명안전에도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형태변화에 따라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보험을 개선해 차별 없는 사회보험 보장도 요구합니다. 모두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고민해야 할 공동체 모두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요구입니다.

라이더들은 자신의 배달료와 일감을 강제로 결정하는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협상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주장합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노무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모여서 일하지 않고 흩어져서 홀로 일합니다. 개별화된 노동자들을 AI 기술을 통해 통제하는 겁니다.

이는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드러난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계엄의 주요 이유는 유튜버들이 제기하는 부정선거의혹이었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선관위에 중무장한 군대가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윤석열은 자신의 관저를 지키고 있는 지지자들에게 '유튜브를 통해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의 열렬한 구독자였던 겁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시청내역 데이터를 토대로 한 알고리즘 추천에 지배당하고 양극단으로 찢겼습니다. 알고리즘에 저항하는 배달노동자들의 투쟁은 알고리즘에 지배당한 민주주의를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퇴진이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차별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미래와 연결되어야 윤석열을 이용한 나쁜 정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김문수의 연하장에 답합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024년 1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12.3 윤석열 대통령 내란 사태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유성호

며칠 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저에게 신년연하장을 보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에게 보내는 연하장이었습니다.

"2025 을사년 새해, 노동개혁으로 따뜻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나갑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보낸 연하장박정훈

윤석열의 군사쿠데타를 막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던 김문수 장관이 노동개혁으로 따뜻한 일자리는 만들겠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2024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주요한 의제로 제기한 최저임금법 5조 3항을 활용하여 특고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겁니다. 연하장에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5조 3항 논의를 제대로 해보자고 했다면 저 역시 따뜻한 답장을 보낼 것이었습니다.

지난 추석 때 김문수 장관이 김 세트를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대로 김문수 장관에게 돌려보냈는데 연하장에 대한 답장은 라이더유니온의 민주주의 배달로 하려고 합니다. 라이더가 가져갈 민주주의와 노동환경개선의 요구를 잘 수령하길 바랍니다. 수령 확인은 윤석열의 체포·파면과 책임자 처벌, 노동 입법으로 받겠습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