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9 19:27최종 업데이트 25.01.0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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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에도 새해는 어김없이 밝았다. 시간의 순리대로 해는 바뀌었지만 2025년 대한민국의 새해는 윤석열의 내란에 가로막힌 역리(逆理)의 시간에 멈추어 있다. 게다가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역리의 정국에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거듭해서 찢어놓았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는 120년 전 을사늑약의 그 해와 닮은 을씨년스러운 을사년이다. 무엇보다 작년 12월 3일 밤, 반헌법적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의 내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2025년 대한민국의 새해를 어둡게 가리고 있다.

내란을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과 한 무리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재발부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보이는 인물이 수행원 및 경호원들과 함께 관저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오마이TV’에 포착되었다.오마이TV 화면 캡처

수많은 카메라의 눈들이 그 참담한 현장을 환하게 비추어 내란과 폭동의 현실을 국민의 눈앞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는데도 윤석열은 거짓으로 일관된 변명을 늘어놓았고, 그 원인을 민주당의 '입법 독주' 탓으로 돌리며 정당한 통치행위였다고 강변했다.

저 가증스러운 위선의 입과 거짓의 혀로 무슨 말을 늘어놓더라도 입법 독주는 민주주의의 절차였고, 비상계엄은 위헌이고 내란이었다는 사실이 바뀔 수는 없다. 문제는 윤석열에 대한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 그리고 체포영장의 집행 이후에도 윤석열 자신뿐만 아니라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 힘, 나아가 몇몇 국무위원들이 내란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는 곧 국민이다. 그래서 국회의 탄핵 의결은 국민의 결정이다. 국회의 의결이 있으면 다음 절차로서 헌재의 판결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고 헌법적 절차다. 이 절차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모든 행위는 반헌법적이며, 반민주적이고, 반국민적 행위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헌법재판소가 8명의 재판관으로 탄핵심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헌법과 국민을 농락한 일련의 과정은 윤석열의 복귀를 노리는 내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헌재의 탄핵 판결과 법적 처벌이 확정되는 것이 내란의 종결이라고 할 때 '디테일에 잠복한 악마'를 불러내 탄핵과 내란 수사의 절차를 더디게 하는 모든 시도가 내란의 연속적 과정이다. 국민과 국회가 결정한 탄핵의 순리를 거스르는 역리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1차 내란, 2차 내란, 3차 내란

국민의힘 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이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앞에서 ‘내란수괴’ 혐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대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권우성

나는 12월 3일 밤의 비상계엄선포를 윤석열의 1차 내란으로 읽는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과 직무 정지 이후 한덕수 권한대행은 스스로 탄핵 절차의 방패막이가 됨으로써 윤석열의 내란을 이어 달렸다. 명분도 법리도 없는 한덕수의 2차 내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덕수가 탄핵되자 국민의 힘 당은 한덕수 탄핵을 원천무효라며 헌재에 권한쟁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나는 한덕수 탄핵 이후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불완전한 상태로 묶어 두고자 하는 반헌법적이고 반국민적 행태를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3차 내란으로 간주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에 대한 '선택적' 임명은 헌재의 온전한 정상성을 지연시킴으로써 국힘당의 3차 내란을 이어가는 셈이 되고 말았다. 연이은 대통령실 고위직들의 비뚤어진 일괄사표, 지지자들을 충동질하는 치기 어린 윤석열의 신년 메시지, 그리고 마치 사극에서나 볼 법한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경호처의 '반란', 이를 방임한 최상목의 태도 등은 2025년의 대한민국에 3차 내란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윤석열과 한덕수,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내란의 연속적 과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란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우리는 이번 내란 정국을 통해 국민의힘이라는 제도 정당마저도 길거리에 펄럭이는 자가당착의 성조기나 거리의 정치를 선동하는 극단적 종교집단과 한 뿌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말았다.

그들이야말로 제도정치 영역에 도사린 내란의 힘이자 내란수괴의 모태다. 연속된 내란의 이 황당하고도 비현실적 과정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침몰하고 정치의 도덕적 형식이 완전히 파괴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다른 한편으로 반역사적 내란 정국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교착되고 오염된 정치나 정당에 있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몫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란의 카오스에서 발견된 세 개의 시민주의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1일 오후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권우성

극단의 분열과 보수화의 거대경향, 연속되는 내란 정국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구를 두껍게 가리고 있지만, 나는 2025년의 대한민국이 새로운 출구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 이유가 바로 내란의 카오스에서 발견된 세 개의 '시민주의'에 있다.

첫째로 'MZ세대의 시민주의'에 주목할 수 있다. MZ세대는 신자유주의의 거대경향 속에서 스펙과 경쟁으로 성장한 '신자유주의의 아이들'이다. 능력에 기반한 공정을 외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이 세대의 가치는 민주주의가 위태롭고 정치가 파괴되어도 오로지 자기만을 향해 있었다. 공익과 공유와 공동의 질서에 무관심한 이 세대는 동구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역사의 종말이 진단된 시대에 성장한 역사를 잃어버린 세대일지도 모른다.

이런 MZ세대가 윤석열의 내란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서사를 잇는 놀라운 변신을 보였다. 386세대가 '박정희의 아이들'에서 '신군부의 도전자'로 변했듯이, 이제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의 아이들'이 '윤석열 체제의 도전자'로 변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윤석열이 준 시대의 선물이 된 셈이다. MZ세대의 시민주의, 특히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서 농민과 만난 MZ세대 여성의 시민주의는 2025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밝히는 새로운 희망이다.

둘째로 우리는 계엄군, 즉 '군대의 시민주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군은 정치주의와 파벌주의에 오염된 역사 속에서 '시민의 군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윤석열의 내란을 주도한 군의 고위 지휘관들은 여전히 정치주의와 파벌주의의 비극적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윤석열의 내란이 지체되고 실패의 경로에 들어선 데는 민주화 이후 우리 군에 내면화된 '제한적 시민주의'가 있었다.

특히 방첩사의 경우 국군기무사가 해체된 전례를 스스로 떠올리며 합법적 범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문화를 보이기도 했다. 여인형 사령관의 오판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국회에 체포조로 출동한 방첩사 수사관들은 고의적이고 소극적 태도로 시간을 끌었으며, 중앙선관위에 투입된 병력도 방첩사 법무장교단의 판단을 근거로 건물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한적이나마 작동했던 계엄군의 시민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의 또 하나의 시민주의가 우리 군에 뿌리내리는 단초를 발견한 것은 2025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밝히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권우성

셋째로는 '노동조합의 시민주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노동조합은 민주화운동과 같은 사회개혁적 노동운동,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주의, 미조직노동이나 취약계층을 포용하는 사회연대운동, 나아가 최근의 노동기반 공익재단의 설립에 이르기까지 노조의 시민주의를 확장해 왔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노동운동의 계급주의와 정파주의는 노동의 공공성과 보편성 확장의 오랜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 조직노동의 배타성과 이기주의로 인한 고립과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의 노동개혁을 겪으면서 시민주의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사회의 현실에서 노동조합은 가장 강력하게 조직된 시민으로 남았다.

12월 3일 밤 계엄 포고령이 내리는 순간 노동조합은 국회 방어를 위한 가장 발 빠른 동원을 시도했다. 민주노총은 야당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합원들이 국회 정문으로 모이라고 긴급 공지했고, 양대 노총, 산별노조 및 연맹과 지역본부 간부들이 조직 단위별로 모여 비상 상황에 대비했다. 내란의 혼돈 속에서 노동조합의 조직된 시민주의가 빛났다.

윤석열의 내란이 3차 내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에서는 속도감 있는 탄핵 심판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민주주의의 공고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촛불시민'이 지켜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는 이성적 군중으로서의 촛불시민의 존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범위를 거대한 시위군중으로까지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나는 시민의 의지를 다양한 행위 양식으로 표현하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대의 민주적 제도에 부가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표출적 민주주의'(expressive democracy)로 규정한다. '응원봉'으로 바꿔 든 2025년의 표출적 민주주의가 이 혼돈을 제 자리로 돌려놓으리라는 확신의 한가운데 새롭게 출현한 세 개의 시민주의가 있다. 2025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서사를 이어갈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조대엽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포럼 사의재

* 필자 소개 : 조대엽은 현재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정책전문가들의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선우재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장과 노동문제연구소장, 한국사회연구소장 등을 역임했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분과의장, 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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