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11월 4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으로 특별코너를 만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권우성
12월 3일, 권력 투쟁의 목적으로 내란 우두머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백 명의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포위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습격했다. 다행히도 다수 국회의원은 큰 폭력 사태 없이 몇 시간 만에 문민 통제를 회복했다. 그리고 약 열흘 만에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면서 한국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렇게 내란의 큰 불길은 잡았지만, 여전히 잔불은 남았다. 내란 우두머리는 적법한 체포 영장 집행도 거부한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한강의 작품은 이때 문학이 어떻게 국가를 진전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우리의 제도와 역사를 비판하고 시민을 이해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지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국가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관계를 탐구한다.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항상 더블린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더블린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도시의 중심부에도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성 속에 보편성이 있다." 한강은 한국의 가족 관계, 폭력, 민주화 운동이라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을 발견했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길은 추상적인 보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한국이라는 현실의 뿌리를 찾는 데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사례다.
시적 산문으로 표현된 한강 작품의 독특한 힘은 한국 문학 전통에서 강력하게 강요되어 온 족쇄와 규범을 깨뜨리는 능력에 있다. 뛰어난 문학의 기준은 기존 전통과 구별되는 차이와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차이와 특수성은 작가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작가가 속한 국가와 언어의 문화적 역량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2016년에 영어로 출간된 <채식주의자>와 곧 영어판이 출간 예정인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문 번역본 등 한강 작품에 대한 전 세계 독자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문학 전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강의 소설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이 피상적인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그녀의 작품을 음미하려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한강의 작품이 대중적이라고는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노력을 기울여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한강의 글을 읽고 한국 관련 뉴스를 접하는 전 세계 독자는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기괴한 부조리에 의아해할 것이다. 한국 시민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과거를 탐구한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친위 쿠데타, 계엄령, 국가폭력의 위협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이렇게 물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죽은 자들의 도움, 그리고 한강과 같은 살아있는 작가와 예술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연대하는 전 세계 동료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씁쓸하게 확인해준다.
* 이 글은 미국 주요 신문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Conflict in South Korea reopens the very wounds examined in this year's Nobel laureate's work"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확장,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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