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8 14:49최종 업데이트 25.01.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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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2월 7일 한강 작가가 지난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하고 있는 모습.EPA/연합뉴스

작가는 기본적으로 작품으로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견해를 직접 드러낸 글에서 감동할 때도 있다. 얼마 전 한강 작가(아래 호칭 생략)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문이 그런 사례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작품을 쓰게 된 과정과 준비하면서 느꼈던 작가의 마음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나는 그 강연문을 읽으면서 작가가 밝혔던 여러 감회가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과 공명하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10월 노벨위원회가 "인간 삶의 연약함"을 탐구한 한강의 작품에 상을 수여할 때만 해도 불과 두 달 뒤 한국에서 이런 주제가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성을 지니는 것이며,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한강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아래 <소년>)나 1948-49년 제주 항쟁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아래 <작별>)가 보여주듯이 오랫동안 폭력 피해자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고 느꼈던 순간

지난 2024년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자, 당직자와 보좌진들이 이를 막고 있다.유성호

강연문에는 작가가 썼던 작품에서 폭력과 그 피해자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상세히 담겼다. <소년>과 <작별>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과거에 벌어졌던 참혹한 사건을 만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작가는 밝힌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 온 학살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 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쪽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구절은 <소년>을 쓰기 위해 한강이 들인 준비와 공력의 깊이를 보여준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 작업"이 곧 좋은 소설을 낳는 것은 아니지만, 충실한 조사와 공부, 탐구가 없이 관념으로만 좋은 소설을 쓸 수도 없다. 작가는 "<소년>을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을 출간"했다고 밝힌다. 이 구절은 한강 작품 세계의 핵심을 요약한다. 작가는 묻는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어서 작가는 이 물음을 바꾼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 공동체에 참가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바로 지금 눈앞에서 매일 보고 있는 내란사태의 반향을 느낀다. 지난 한 달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하나만 꼽자.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데 동원되었던 특정 군부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학살의 직접 집행자였다는 추한 이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내란사태에 동원되었던 군인들은 수십 년 동안 벗어보려 했던 오명을 다시 덮어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나는 국회 진입 과정에 동원된 군인들이 주저한 데는 이런 광주가 남긴 끔찍한 기억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렇게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했다.

한강은 한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어 이를 기억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이 겪고 있는 기괴한 부조리

지난 2024년 11월 4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작가 한강의 작품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으로 특별코너를 만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권우성

12월 3일, 권력 투쟁의 목적으로 내란 우두머리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백 명의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포위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습격했다. 다행히도 다수 국회의원은 큰 폭력 사태 없이 몇 시간 만에 문민 통제를 회복했다. 그리고 약 열흘 만에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면서 한국 민주주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렇게 내란의 큰 불길은 잡았지만, 여전히 잔불은 남았다. 내란 우두머리는 적법한 체포 영장 집행도 거부한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한강의 작품은 이때 문학이 어떻게 국가를 진전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우리의 제도와 역사를 비판하고 시민을 이해하고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지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국가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관계를 탐구한다.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항상 더블린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더블린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도시의 중심부에도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성 속에 보편성이 있다." 한강은 한국의 가족 관계, 폭력, 민주화 운동이라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을 발견했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길은 추상적인 보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한국이라는 현실의 뿌리를 찾는 데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사례다.

시적 산문으로 표현된 한강 작품의 독특한 힘은 한국 문학 전통에서 강력하게 강요되어 온 족쇄와 규범을 깨뜨리는 능력에 있다. 뛰어난 문학의 기준은 기존 전통과 구별되는 차이와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한 차이와 특수성은 작가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작가가 속한 국가와 언어의 문화적 역량의 축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2016년에 영어로 출간된 <채식주의자>와 곧 영어판이 출간 예정인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문 번역본 등 한강 작품에 대한 전 세계 독자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문학 전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강의 소설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이 피상적인 재미와는 거리가 멀고, 그녀의 작품을 음미하려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한강의 작품이 대중적이라고는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노력을 기울여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한강의 글을 읽고 한국 관련 뉴스를 접하는 전 세계 독자는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기괴한 부조리에 의아해할 것이다. 한국 시민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과거를 탐구한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친위 쿠데타, 계엄령, 국가폭력의 위협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이렇게 물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죽은 자들의 도움, 그리고 한강과 같은 살아있는 작가와 예술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연대하는 전 세계 동료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씁쓸하게 확인해준다.

* 이 글은 미국 주요 신문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Conflict in South Korea reopens the very wounds examined in this year's Nobel laureate's work"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확장,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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