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6 11:57최종 업데이트 25.02.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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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비상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권우성

차디찬 바람만이 서성대는 겨울의 중턱이다. 이런 계절엔 동구 밖 온도가 두려워진다. 더구나 사는 게 힘들 때면 으레 지난봄의 정령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따뜻함이 그립고, 새 세상이 그립다.

그 바닥엔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 추위를 견뎌내면 봄이 온다는 것, 고통을 이겨내면 반대급부의 일이 생길 거라는 소망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1980년 봄도 그러했다. 민주화를 꿈꾸는 이들은 1980년을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다. 잃어버린 세상을 다시 찾은 것 같아서…


2024년 12월 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노동현장에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피곤했다. 가뜩이나 집을 팔고 월세로 이사한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매우 심란한 상태였다. 집주인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집주인에게 돈을 내야 하는 현실이 슬펐다. 결국 화살은 정치 쪽으로 돌아갔다.

"나라를 똑바로 운영해야지, 썩을 놈들. 지금 돌아가는 경제 꼴이 이게 뭐냐고. 그런데도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나라인가."

세살이로 내려앉은 신세타령을 정부 탓으로 돌린 건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실상이 그랬다. 연일 뉴스를 보면 이곳저곳, 구석구석 경제수치는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저변의 사람들도 사는 게 힘들다며 아우성이었다. 죽어라 일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건 희망이 소진돼 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무소불위의 권한 꿈꿨던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날 밤, 중노동을 마치고 퇴근한 후에도 잡일은 이어졌다. 이삿짐 정리가 미처 끝나지 않아 집안이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TV 뉴스를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속보>윤 대통령 계엄령 선포'

순간, 1980년 5월 광주의 봄이 오버랩 됐다. 44년 전 그 붉은 봄이 떠올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계엄령 발동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그것도 찌라시 수준을 뛰어넘어 아주 저급한 음모론이라고 생각했다. 계엄령은 쿠데타, 내전, 반란, 전쟁, 폭동, 국가적 재난 등으로 인해 국가의 일상적인 치안 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하다고 판단될 때 선포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44년 만에 상식적으로 믿기조차 어려운 계엄이 이 땅 위에 재현된 것이다. 탱크와 장갑차로 밀어붙이고 총부리로 정적을 없애겠다는 그 저열한 발상이 영화가 아닌 실화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우리에겐 학습효과라는 게 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를 이겨냈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정치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 세계평화질서의 민주화 말이다. 박정희의 18년 독재, 전두환의 독재 이후에 독재는 영원히 종식된 줄 알았다. 그런데 대명천지에 계엄의 총부리가 겨눠졌다. 독재는 민주적인 절차를 부정하고 통치자의 독단으로 행하는 정치를 이른다. 고대 로마의 체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따위가 그 전형이다.

2024년 12월3일 내란은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의 변종처럼 느껴졌다. 그때와 지금의 반란은 결이 같았다.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내란과 폭동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저항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일체의 정치활동 중지, 언론통제, 대학 휴교, 영장 없는 체포, 구금 등을 내용으로 하는 포고령 10호를 발표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함은 물론, 체포와 구금, 압수수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포고한 것이다.

2024년 12월3일 밤 11시에 내려진 계엄사령관 명의 포고령(제1호)은 전두환 군부가 실권을 쥐었던 1980년 5월17일 발표된 '포고령(제10호)'을 베낀 것처럼 닮아있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시키는 것은 물론 정치적 결사나 집회, 시위를 금지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며 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을 예고했다. 의료인에 대한 본업 복귀와 위반 시 처단 경고도 명시됐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강력한 경고까지 더해졌다. 공포감을 조성하는 '처단한다'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사용됐다. 쿠데타 군사정권에서 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며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완전히 빼앗으려 했다는 점에서 충격파는 더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로 스타검사에 오른 윤(尹) 아니었던가.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공정과 상식을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워 대통령까지 된 사람 아니었던가. 그러나 949일 동안 그는 독단적이었고 파행적이었다. 0.73%p 차이로 당선됐지만, 통합행보 없이 자신에 대해 반대를 하면 적으로 간주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협치 없이 대치만 있었다. 지지율도 10%대로 떨어지며 바람 잘 날 없었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 삶은 피폐해졌다.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하는 데 혁혁한 성과를 냈던 그가 이제 탄핵의 대상이 됐다. 내란을 잠재우겠다며 총부리를 들이댔다가 정작 본인이 내란 수괴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대통령 임기도 '1000일몽(夢)' 위기다.

그는 어쩌다가 그런 최악의 수를 두었을까. 그 어처구니없는 수가 진정 통하리라고 확신했던 것일까.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제거하면 정국을 장악하리라 믿었던 것일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척결하면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리라고 상상했던 것일까.

역모에 대한 죗값을 치르시라

그건 역모였다. 누가 봐도 반민주적이었다. 절대 통하지도, 통할 리도 없는 수준 낮은 작당모의였을 뿐이다. 국민을 얕잡아보고, 국민을 기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쓴 대통령이 비민주적이었던 전두환이었다.

못된 정치를 하는 자들을 가리켜 '○대가리'라고 일컫는다. 흔히들 '새대가리'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쥐어 터져도 돌아서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기 때문이다. 새대가리의 원조는 처음엔 닭대가리였다고 한다. 닭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가 맹금류가 하늘에 뜨면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아무 구멍에나 무조건 머리를 들이 민다. 몸통은 나와 있는데 대가리만 감추니, 감춘 게 아니다. 도망간 것 또한 아니다.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뻔뻔한 민낯을 드러낸 채 대가리만 감추고 있는 정치는 혹세무민에 불과하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는 공수처 측과 경호처가 대치하고 있다.이정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집행이 이뤄진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은 무산됐다. 경호처, 군인 200여 명의 인간 띠와 3단계 차벽에 가로막혔다. 이런 코미디도 없다. 경호처와 공수처가 대치하는 이런 진풍경은 억지로 꾸미기도 힘들다. 국가기관과 국가기관이 대치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만약 화기 사용까지 이뤄진다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수도 있다.

뒤늦게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에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모든 것이 회복돼 탄핵 심판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온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계엄령을 없었던 일 치자는 궤변이다. 대통령은 12.3 내란사태 이후 탄핵과 수사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또 비상계엄을 판단할 권한이 오로지 대통령에 있다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주장도 반복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베트남 파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 등을 언급하며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헌재가 탄핵 심판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결정을 했다'라고도 주장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참으로 비겁하다. 폭거를 해놓고도 변명과 핑계를 일삼는 졸장부의 행태다.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하니 당당하게 그림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이의 마지막 자존이다.

그가 늘 외쳐온 주문처럼 성역 없는 수사를 받으면 끝날 일이다. 그림자 안에 숨어 지지자들의 충성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가 정작 국민에게 충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록할까. 최소한의 염치는 도리를 말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스스로 하야를 선택하는 것도 썩 괜찮은 그림이다. 그래야 비겁하지 않다.

이제 국민들은 과거 군사독재시절로 절대 회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총칼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시민사회는 더 이상 계엄령 같은 엄포에 굴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주의의 명령일 뿐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다. 권력이란 휘발성을 띤다. 그 오만방자한 힘도 언젠가는 누추해진다. 오래된 권력은 오래 입은 옷처럼 이물감이 없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종장엔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권력을 누리는 자들은 항상 '마음의 거울'을 봐야한다. 깨끗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단죄받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겨울이 점점 더 깊은 빙하기로 빠져들고 있다. 나는 무섭다. 해가 일어나기 전에 깨어나 일터로 나가는 혹한의 시간이 두렵다. 그래서 날마다 출근길을 망설인다. 많은 노동자가 그럴 것이다. 노동현장에 봄은 없다. 늘 춥고 배고프다. 하지만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는 숙명의 시간이 기다린다. 팔자 좋게 정치 얘기하는 것도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어차피 정치가 삶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으니까. 어차피 돌고 돌아 다시 야만의 정치가 시작되고 있으니까.

44년 전 잠시 잠깐의 봄. 그리고 44년 후 맞게 된 겨울 같은 봄. 민낯을 감추고 권력을 잡은 뒤 자신만의 '봄'을 즐기는 위정자들에게 경고한다.

"국민은 너희들보다 똑똑하다. 시대를 역행하는 자여, 그러려면 정치를 하지 마라. 탱크보다 무섭고 장갑차보다 무서운 게 국민 마음속 칼이니라."

새벽 5시, 노동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 칼바람이 분다.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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