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3 11:56최종 업데이트 25.01.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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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겨울은 늘 춥지만 열아홉 살 때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기억된다. 대학입시를 마친 직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김포의 선산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황톳길을 거쳐 가야 했다. 운구하는 내내 어르신들은 막걸리와 전을 드시며 누구에게 던지는 말인지 모를 호통과 통곡을 이어가셨다. 장지에 이르니 관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를 두고 한참 입씨름이 벌어졌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다투시던 어르신들은 하관이 되자 다시 통곡하셨다. 통곡도 잠시, 봉분 모양이 만들어지자 외삼촌과 이모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위에 올라가 덩실거리며 흙 밟기(평토)를 하셨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망자를 보내는 공간은 눈물과 통곡뿐 아니라 웃음과 욕설까지도 쏟아지는 모든 감정의 용광로 같다는 것을. 이런 기억은 몇 년 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학생부군신위>에서 다시 소환됐다. 이듬해 이 영화는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한국의 장례와 풍습을 잘 보여주었다는 평과 함께 예술공헌상을 받았다고 한다.


굳이 '한국'이라는 명사를 붙이지 않더라도 모든 사회에서 장례는 언제가 시작인지도 모를 관습들이 쌓여 축적된 의례(ritual)이며 법률과 제도로 바꿀 수 없는 문화다. 1969년 군사독재 정부는 허례허식을 일소하겠다는 목적으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세부 사항으로 '가정의례준칙'을 만들기도 했다. 이 법률에는 혼례, 장례, 제사, 회갑연의 절차를 정하는 기관(가정의례심의위원회)의 설치뿐 아니라 법령을 위반할 경우 처벌 조항까지 담겨 있었다. 오늘날 정부가 법률로 이런 의례들을 규제하고 처벌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 법률은 제정 후 30년이 지난 1999년에야 폐지됐다. 국가 행사도 아닌 누구나 겪는 일상 의례인 문화를 제도라는 형식으로 규율하려 했던 배경과 그 효과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의 규율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열아홉 살 장지의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기억의 힘은 국가가 규율할 수 없는 공동체가 만들어 온 역사이자, 어떤 형식과 절차로 강제해도 해체할 수 없는 감정의 용광로가 남긴 흔적이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국가애도기간

정부, 좀 더 넓게 말해 국가가 시민의 죽음에 대해 명칭과 형식을 부여한 사례는 한국에서 많지 않다. 지난 제주항공 참사 발생 당일 들었던 7일 간의 '국가애도기간'은 윤석열 정권 이전에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명칭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3년 동안 2022년 10.29 참사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애도기간을 공포했다. 2010년 4월 이명박 정권에서 천안함 사건 발생 후 공포되었던 국가애도기간이 있었으나 이때는 시민이 아닌 복무 중이던 군인이 희생자였다.

언제 잊힐지 모를 상흔을 남긴 사회적 참사는 너무 많았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4년 세월호까지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비교할 수 없는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참사 중에 어떤 고통의 시간을 국가가 애도할 시간으로 정해야 하는지 기준은 없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로 무안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 근거를 둔 조치지만 국가애도기간의 법적 근거는 없다. 단지 대규모 인명 피해 또는 국민적 충격이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고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시민들의 조문 편의를 위해 대통령이 선포할 수 있다는 정도의 행정안전부 설명이 있을 뿐이다.

외국의 국가애도기간은 일정한 관례를 따르는 경우가 있다. 이란에서는 루홀라 호메이니와 같은 종교 지도자가 사망한 직후, 재난이나 테러로 유례없는 사회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남미에서는 전 대통령이나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 사망한 직후 등 국가마다 법과 제도보다 선례에 따라 정한다. 전 대통령뿐 아니라 디에고 마라도나, 아일톤 세나, 펠레와 같은 스포츠 영웅의 장례 기간에도 국가애도기간을 정하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은 국가가 정하는 의례가 법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애도의 주체와 대상

지난 2024년 12월 3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울산 현대모비스와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경기. 전광판에 국가애도기간 관련 안내가 나오고 있다. 프로농구 대표적인 연말 이벤트인 '농구영신'으로 열린 이날 경기는 다른 행사 없이 1월 1일이 되는 순간에 맞춰 농구공 패턴이 들어간 종에 '타종'만 예정됐다연합뉴스

국가가 정한 법이든 국민 다수가 관습으로 여겨 온 절차든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는 행위는 대통령 같은 행정수반의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특정 참사만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할 수는 없다.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슬픔에 공감하는 이들의 규모를 숫자로 환원하여 애도기간 지정 참사를 정한다면, 군사독재시절 제정했던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도입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 당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29일 국무회의에서 7일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내용을 보면 애도하는 주체가 공직자로 한정되어 있다. 무안공항 현장과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 설치, 모든 정부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의 조기 게양, 공직자의 애도 리본 패용 정도가 공식적인 애도 지침일 뿐이다. 여기에 추가된 회식 금지, 연차 사용 자제, 중앙행정기관 및 지자체의 체육대회 및 축제 등의 행사를 가급적 자제하고 불가피하다면 간소하게 진행하라는 지짐은 행정안전부의 지침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2022년 10.29 참사 직후나 지금도 국가애도기간 선포는 낯설기만 하다. 마치 국경일처럼 '국가'라는 명사는 공직자뿐 아닌 모든 시민이 피해자와 유가족에 예우를 갖추라는 모호한 지침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전에 약속한 송년회나 신년 모임을 해도 좋은지, 민간 기획사가 주최하는 콘서트나 축제 등의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하는지 등 정확한 지침이 없다.

여기에 7일이라는 애도기간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감정의 유통기한'를 국가가 정한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국가'라는 명칭이 주는 무게감이 더 강한 나라의 시민일수록 정부의 선포는 자기검열에 나서게 만든다. 불과 몇 주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계엄 포고령을 발표한 정부가 이제는 국가의 애도를 선포했으니 이런 혼란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있어서는 안 될 참사를 애도하는 기간은 어떤 형식으로든 필요하다. 굳이 그 기간을 정부가 선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특히 이번 애도기간 선포처럼 애도의 주체를 정부와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최소한의 행동 지침만을 내린 것은 최근 몇 년간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스스로 습득한 애도의 문화를 간과한 결과다.

세월호 참사, 10.29 참사를 겪으며 사람들은 누가 애도해야 하고 누가 위로받아야 하는지 더 이상 구분을 하지 않는다. 애도의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면 '순수한 유가족'과 '반정부세력 유가족'으로 나눴던 박근혜 정권의 폭력이 언제라도 고개를 들 것이다. 사회적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엄포만큼 정치적인 행위는 없다.

1월 4일은 애도기간의 끝이 아니다

지난 2024년 12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조기가 걸려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는 1월 4일 24시까지 7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제주항공 참사 직후 유가족들은 무안 공항 벽면에 직접 쓴 '재난보도 준칙 준수 요청문'을 붙였다. 시민들은 소셜 미디어에 서울교육청에서 예전에 마련해 놓은 '재난 상황에서 디지털 시민을 위한 올바른 미디어 이용 가이드'를 속속 게시했다.

참사 당일에는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 모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및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언론에는 재난보도준칙 준수를, 중대본과 제주항공 등 관계기관에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와 필요한 환경 조성 등을 요청했다. 유가족과 함께 있는 언론사 기자들의 무리한 인터뷰나 촬영은 여전했지만, 동료 기자들의 문제의식은 이전보다 더 분명해졌다.

사회 구성원 간 협력과 그 사례들을 연구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 Sennet)은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공감(sympathy)과 감정이입(empathy)를 구분했다. 참사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앞에 둔 사람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상실과 아픔을 떠올리며 함께 울고 위로하는 행위는 공감에서 나온다.

공감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슬픔과 고통의 공유를 넘어 '내가 당신이라면 무엇을 했을까'라는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타인의 입장에 서는 이 과정에서 '나'는 슬퍼하고 위로하는 행위를 넘어 관계 당국과 책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고 문제에 항의하며 때로는 분노하는 사람이 된다.

국가애도기간은 그저 행정수반의 자의적 결정으로 내리는 정부의 행동지침이 될 수 없다. 숱한 참사를 겪으며 피해자와 시민들이 쌓아온 경험은 애도라는 문화를 사회적 의례로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국가애도기간을 정하려 했다면 이토록 어렵게 쌓아온 경험과 의례의 문화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정부의 다짐을 밝혔어야 했다. 조기 게양과 애도 리본 패용을 넘어 정부가 얼마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했는지,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할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진정성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시 열아홉의 그 겨울을 떠올린다. 공무원도 없고 관리인도 없던 김포의 산자락에서 나는 애도가 무엇인지, 망자를 보내는 예우가 어떠해야 하는지 몸으로 배웠던 모양이다. 애도는 형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슬픔, 분노, 웃음, 통곡이 어우러졌던, 발길을 떼기 힘들었던 진흙탕의 운구 길처럼 애도는 철저히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다. 이 애도는 1월 4일을 결코 마지막 날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동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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