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7 13:06최종 업데이트 24.12.27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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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위커 미국 상원의원이 지난 4일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국회의사당 상원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임박해지면서, 1기 때처럼 전술핵무기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에 탑재하는 전략핵무기와 달리 국지전 등에 쓰이는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논의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26일 자 국내 언론들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자인 짐 리시와 로저 위커가 다음 달 3일 개원하는 미 상원에서 각각 외교위원장 및 군사위원장을 맡을 것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의 대안으로 핵무기 재배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거론됐다.


주한미군 문제뿐 아니라 전술핵 배치 문제에서도 트럼프가 흥정을 걸 가능성이 있다. 이런 흥정에 응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한미군 배치는 물론이고 전술핵 배치의 주된 수혜자 역시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는 북한을 막고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점은 1958년 1월과 1991년 9월에 벌어진 두 사건이 웅변한다.

과거 전술핵 배치, 북한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어네스트 존 전술핵탄도탄 등을 한국에 배치했다고 주한미군이 공표한 시점은 1958년 1월이다. 그달 31일 자 <동아일보> 1면 좌하단은 "유엔군사령부 공보과장 벤 리가리 중령은 30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유엔군 사령부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한국에 오네스트 죤 유도탄이 장비되어 있음을 확인한다'고 언명하였다"라고 보도했다.

"한국에 핵무기가 도입돼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유엔사 공보과장은 "인정하지도 또 부인하지도 않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배치를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 5년 뒤의 일인 데다가 한국을 위한 배치인 듯 선전됐으므로, 북한을 막고 한국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한 것은 일본에 배치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일본 방어용 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했던 것이다.

1955년 1월 7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전면적 핵전쟁을 막기 위해 제한전과 국지전 단계에서 전술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결정(NSC 5501)을 내렸다. 이를 통해 소련을 견제하고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방침이었다.

그런데 일본 본토를 무대로 NSC 5501을 관철시키는 데는 장애물이 있었다. 2020년도 <군사(軍史)> 제117호에 실린 김민식 육군 소령의 논문 '1958년 한반도 전술핵무기 배치 요인 재고찰'은 "1956년으로 접어들면서 핵무기와 미군기지에 관한 일본의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고 한 뒤 그해 1월 상황을 설명한다.

"같은 달에 미 극동 육군 및 제8군사령부는 훈련 목적으로 오키나와에 있는 280mm 원자포를 일본 본토 내로 반입하게 해줄 것을 미 극동군사령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미 극동군사령부는 원자무기 반입이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때는 오키나와가 미국 점령지였다. 이곳의 전술핵무기를 일본으로 옮기면 일본인들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극동사령부의 판단이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이 결성한 니혼 히단쿄가 2024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한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일본 민중 내에는 핵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이런 정서를 감안한 것이 극동사령부의 결정이다.

위 논문은 그해 하반기에 미 합동참모본부가 "주한미군과 장비를 핵전략을 포함하여 현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라고 설명한다. 주일미군이 아닌 주한미군의 핵무장 쪽으로 관심이 집중됐던 것이다. 논문은 "미국의 대일정책 변화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극동 지역에서도 특별히 한반도에 도입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을 위해 한국에 배치한 게 아니라 일본 사정 때문에 한국에 도입됐다는 설명이다.

애초에 미국이 전술핵을 일본에 배치하고자 했던 것은 이 나라를 재무장시켜 북한은 물론이고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소련 견제에 방점이 더 찍힌 일이었다.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가 주로 북한을 겨냥한 것이었다면, 일본에 배치하려다가 여의치 않자 한국으로 방향을 돌린 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주일미군의 주된 방어 대상이 북한이 아니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일본에 배치하는 전술핵의 표적은 소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무기가 한국에 배치됐으니, 1958년의 이 조치는 한국보다는 미국과 일본을 위한 일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전술핵은 한국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전술핵 일러스트 [제작 최자윤]연합뉴스

제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시점은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12일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1차 위기는 이날 갑자기 터진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서서히 고조되던 상황의 축적물이다.

1985년에 북한은 50메가와트 흑연감속원자로를 영변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24일,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해달라'고 소련에 요청했다. 그해 7월에는 딕 체니 국방부 장관이 "북한은 모든 핵시설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하에 둬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1991년 7월 16일에는 북한과 IAEA 간에 보장조치협정 가조인이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 이어지다가 1993년에 제1차 위기가 터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이달 26일 보도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재래식 무기 기준으로 올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5위, 북한은 36위입니다. 남한이 압도적 우위입니다"라고 한 뒤 "그러나 핵무기까지 포함하면 남한 대 북한의 종합 군사력은 1 대 100 또는 1 대 1000입니다"라며 "남한이 북한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런 핵무기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북핵위기가 점증하던 1991년 9월 27일에 주한 핵무기의 철수를 선언했다.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 선언의 주역이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대북 협상에 비중을 두면서 북핵을 관리했다. 그런 호의적 태도로 인해 1991년 9월 18일에는 남북한이 국제연합에 동시 가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술핵 철수 선언이 나왔지만, 이를 북미관계에 한정시켜 이해할 수는 없다. 소련 견제를 위해 배치된 전술핵무기가 북미관계 때문에 철수됐다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1991년 9월에도 북핵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다가 1993년에 가서 제1차 위기가 터졌으니, 그것이 북한 견제용이었다면 그 시점에 그런 선언이 나온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1991년은 세계적인 탈냉전이 진행되던 때였다.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로 미·중 긴장이 이완된 상태에서,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에 그루지야(조지아)공화국과 발트 3국이 소련에서 탈퇴했다. 이 해에 소련에서는 쿠데타도 발생했다.

소련이 힘을 못 쓰던 이 시점에 조지 부시의 전술핵 철수 선언이 나왔다. 그때 소련이 매우 허약했다는 점은 그해 크리스마스에 소련이 해체된 데서도 나타난다. 이는 한반도 전술핵의 주된 표적이 누구였으며 1991년 9월에 철수를 선언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1958년 1월과 1991년 가을의 상징적 사건들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의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일차적으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수혜자는 일차적으로 미국, 이차적으로 일본이었다. 트럼프 쪽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이것이 누구의 이익인가를 웅변해 준다.

지난 13일 영국의 세계적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SIS) 홈페이지에 실린 첼시 와일리(Chelsey Wiley) 전략기술 및 군비통제 분석가의 글은 "이번 여름에 상원 공화당원들과 전직 트럼프행정부 관리들 사이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재배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주권적 프로그램을 통해 이 나라가 스스로 무장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에 관한 토론이 다시 출현했다"라고 설명한다.

한반도 전술핵무기 재배치 방안은 향후 트럼프 행정부에서 더 심도 있게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전술핵 재배치가 마치 한국 안보를 위한 일인 양 포장되고, 트럼프가 이를 빌미로 손을 내밀 수 있다. 자기 일은 자기 돈으로 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를 트럼프 행정부가 느끼게 만드는 방법은 한국인들이 강하게 시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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