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31 07:08최종 업데이트 24.12.3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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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연설을 마친 후 손을 흔들고 있다.AP/연합뉴스

지구촌 어디에서든 환경문제에 있어 희망적 소식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1년, (정치 부문에서) 출구 없는 안개 속을 답보 중인 프랑스에서 그나마 시민들을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공기의 질이다.

파리와 파리 인근 수도권 지역의 대기 오염을 감시하는 독립 시민단체 에어파리프(Airparif)의 측정에 따르면, 2023년 파리시의 미세먼지지수는 2003년에 비해 55%, 특히 지난 10년 전에 비하면 45% 감소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저고도층의 오존 지수를 제외한 모든 지수(이산화질소, 미세 먼지, 초미세먼지)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2014년부터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한 파리와 수도권 지역의 공기는 같은 시기 파리 시장을 역임해 온 안 이달고 시장의 분투의 결과이기도 하다.

맑아진 공기는 당연하게도 시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호흡기에 직접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이산화질소(NO2)는 천식을 악화시키거나 폐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만성 기관지 질환을 초래하거나 폐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당뇨병이나 뇌졸중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드프랑스 지역 보건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 동안 초미세먼지로 인한 대기 오염이 초래한 조기 사망자 수가 연간 1만 350명에서 6220명으로 약 40% 감소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파리 지역에서 가장 붐비는 외곽 순환 도로는 대기의 질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에도 못 미치는 탓에, 파리시는 더 높은 수준으로 대기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환경 시장 이달고

이달고 시장은 2014년에 파리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는 2015년 파리시에서 전 세계 천여 명의 시장들을 모아 파리기후협약을 개최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환경 문제에 있어서 공격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을 주도해 온 인물로 꼽힌다. 이미 2007년 파리시 부시장 시절부터 도시계획과 환경 부분을 담당해 오던 그는, 2014년 시장 당선 즉시 대기오염을 줄이는 것을 '파리지앵 삶의 질 향상'의 첫 번째 목표로 삼았으며, 이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파리시의 핵심 정책이기도 했다.

2018년엔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도시 농업 전용 30헥타르를 포함, 2026년까지 150헥타르에 달하는 녹색 지붕·녹색 담벼락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도심의 열섬 현상과 대기 오염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도시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정책이었다. 학교 건물 옥상에 텃밭이 만들어지고, 임대주택 담벼락을 식물들이 타고 올라가며, 도심의 자투리 공간 구석구석에 꽃밭이 조성되면서 더 많은 녹색 식물들이 도심에 채워졌다.

같은 해 지구 온난화 대처에 필요한 지속적 자금 조달을 위해, 유럽 국가들 간 공동의 노력을 촉진하고자 '유럽기후금융협정'을 도입하기도 하기도 했다.

2026년까지 파리 14구와 20구에, 17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2개의 도심 숲을 새롭게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린피스의 발표에 따르면, 안 이달고가 파리 시장으로 머물던 첫 5년 동안 파리시는 프랑스 전역에서 대기 오염 퇴치를 위해 가장 성실하게 노력한 도시로 평가되기도 했다.

특히, 파리시 전체 예산의 4%에 해당하는 8300만 유로(2024년 기준)를 파리 주민참여예산제에 할애했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생활 시설과 학교·유치원 등 공공시설에 녹색 공간·옥상 정원·텃밭 등을 조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예산을 지원해 왔던 것이다. 2014년부터 10년 동안, 모두 855건의 도심의 녹색 정원 조성 사업이 주민참여 예산제의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승용차와의 전쟁

2007년부터 2023년 사이 파리의 미세먼지 지표의 변화airparif

2015년부터 파리시는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승용차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2015년 7월부터 14년 이상 된 버스와 트럭은 파리에서 운행이 전면 금지되고, 2016년 7월부터는 14년 이상 된 자가용 차량의 운행도 금지됐다. 새로운 주차 행정(전문 민간업체에 주차 요금 징수를 맡겨 관리케 하고, 배기가스 배출이 많은 SUV차량엔 주차 요금 3배 부과 등)은 불과 몇 주 만에 교통량을 6.5% 감소시켰다.

센강 우안의 강변도로 일부를 보행자 전용로로 개방하기도 했는데, 이는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우파 진영과 운전자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켜 행정 소송에 휘말리는 등 장기간 이어진 혹독한 시민전쟁을 야기하기도 했다.

2017년부터는 평일 주간에 시내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에 대해 배출가스 오염 정도를 구분하는 스티커(Crit'Air) 부착을 의무화하여, 4·5단계에 해당하는 차량은 진입을 제한하며, 2025년부터는 3단계에 해당하는 디젤 차량의 제한을 예고하고 있다.

2024년 10월부터는 파리시에서 가장 대기오염 수치가 높은 지구인 외곽순환도로의 제한 속도를 시속 70km에서 50km로 낮추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자동차 사용을 억제하고,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이 조치는 즉각 공해 감소에 기여하고 있지다. 하지만 주로 승용차로 이동하는 교외 거주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벨리브로 시작, 코로나로 완성된 자전거 천국

파리 중심을 가로지는 리볼리가. 2020년부터 4차선 자전거 전용 도로가 되어 자전거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거리가 되었다목수정

전 세계에 공유 자전거 붐을 일으킨 진원지인 파리시는 2007년 공유 자전거 프로그램 벨리브(Velib)를 설치한 지 17년이 흐른 2024년, 마침내 자전거가 이용자 수가 승용차 이용자를 앞지르는 성과를 달성했다. 파리지역연구소(Institut Paris Région)가 지난 4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파리시민(16~80세)의 11.2%가 시내 이동시 자전거를 주로 이용하는 반면, 승용차(자가용,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4.3%에 불과했다. 1위는 도보(53%), 2위는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등 35%)이 차지했다.

17년 전, 벨리브 도입이 오늘날 파리에 자전거 혁명을 가져온 첫 단계였다면, 코로나 시기(2020년)에 과감히 서울 종로에 해당하는 리볼리가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탈바꿈 시킨 것이 자전거 인구를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2020년에서 2021년 사이 파리의 자전거 인구는 2배로 늘었다. 코로나로 이동통제령이 실시되던 바로 그때(2020년 3~5월), 이달고 시장은 리볼리가의 6차선 도로 중 2개 차선(버스와 택시)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자전거에 내주는 결단을 했다.

더불어 시민들이 창고에 버려둔 자전거를 수리하여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자전거 수리비도 지원해 주었다. 전염병 창궐로 거리두기를 장려하던 시기, 사람 많은 대중교통보다 1인 교통 수단인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매우 설득력 있는 제안이었다. 시민들의 호응이 커지자, 이동 통제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리볼리가는 여전히 자전거 도로로 기능하게 되었으며, 이후 자전거 전용도로는 파리와 인근 도시에 우후죽순으로 확대되어 2024년 현재 파리에는 1400km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다.

이달고 시장은 임기를 마치는 2026년까지 파리시 전체를 100% 자전거 도시로 전환, 현재 11.2%인 자전거의 교통 분담률을 15%까지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학교 앞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전환하는 정책이 큰 호응을 얻었으며, 200여 개의 학교 앞 차 없는 거리가 생겨났다.

자전거 전용 도로의 증가와 벨리브 정차장의 증설은 이미 협소했던 시내 주차 공간을 더욱 줄였다. 또한 파리 시내 대부분의 도로에서 제한 속도를 30km로 낮추면서, 승용차 이동의 장점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다수의 사람들을 자전거 이동으로 유인했다. 이러한 정책은 교통 사고를 10년 전 대비 41%가량 줄이는 또 다른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대중교통망의 확대

파리는 210만의 파리시내 인구와 주변 수도권(일드프랑스) 지역의 800만 인구가 함께 움직이는 대도시다. 외곽도시로부터 파리 시내 직장으로 이동하는 인구의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시키는 것은, 곧바로 승용차 사용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파리시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2007년부터 일드프랑스와 함께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14개 지하철 노선에 4개의 노선을 신설하고 2개의 노선을 연장하며, 총 60개의 역을 증설해 200km의 철로를 추가하는 대공사다. 수도권 지역 주민의 90%가 도시철도 역사로부터 2km 이내에 거주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도시철도망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파리 외곽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빠른 시간 내에 도심에 진입할 수 있도록, 새로운 노선들은 도시 외곽주민들의 편의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어 있다.

"호흡하라"

2018년 안 이달고 시장이 발간한 저서 <호흡하라(RESPIRER)>Editions de l'Observatoir

2020년 재선되어, 2026년이면 12년에 걸친 파리시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게 되는 이달고 시장은 3선에는 나서지 않을 것을 일찌감치 언론에 공표한 바 있다. 스페인 산 페르난도에서 태어나 스페인 노동자 출신 부모를 따라 3세 때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 1세대인 이달고 시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이중 국적자다.

비교적 어린 나이인 23살에 국가 고시를 거쳐 근로감독관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사회당에 당적을 두고 파리 시의원, 국회의원, 파리시 부시장으로 일해오다가 2014년 파리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17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퇴임 후 군소 정당으로 전락해서 존재감이 사라진 사회당의 정치적 위상과 달리, 이달고 시장은 전임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과 함께 2001년부터 지금까지 굳건히 파리시에서 사회당의 입지를 지켜온 인물이다.

2018년 발간한 저서 <호흡하라(RESPIRER)>에서 이달고 시장은 환경에 초점을 맞춰온 자신의 정치 철학을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우리는 환경 오염 때문에 내일 죽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으로 오늘 당장 죽어간다.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것은 시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상황의 위중함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부여한다. 이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약속이다. 그것은 나의 약속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정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이달고 시장은 파리 올림픽 기간 중, 일부 종목을 해외령 타히티에서 실시하면서, 타히티 측과 통화한 수십 건의 통화료가 3만 유로에 달하는 사실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또한 재임 중 운전자들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취급당하며, 소송과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환경정책에 있어서만은 그 누구보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굳건하게 실천해 온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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