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7 06:54최종 업데이트 24.12.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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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권우성

"계엄령이 선포되던 12월 3일, 저는 국회에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도 가지 않았고, 새벽 내내 라이브를 보며 부끄러워했거든요." (여채현, 21, 대학생)

"(라이브 방송) 스트리밍을 틀어 놓고 잤다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화면을 확인했어요. 화면 속에 계속 똑같은 사람이 더 빨개진 손으로 응원봉을 흔들고 계시더라고요. 그 순간에 진짜 마음이 너무 힘들어졌던 거 같아요." (이은비, 43, 킨츠기 공예가)


"친구가 거기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래. 너한테 내가 핫팩 갖다주러 갈게' 하는 마음으로 갔거든요." (조단원, 32, 개발자)

"누구 트윗 마냥 제가 뭐 대단한 민주시민이어서 가는 게 아니고요. 말벌 아저씨처럼 몸이 움직이는 거더라구요." (정금(활동명‧40), 콜센터 상담원)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트랙터 대행진이 21일 서울 남태령역에서 멈췄다. 서울 진입 직전에 경찰이 '교통 혼잡'을 이유로 차벽을 세워 막아섰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 등을 보고 몰려든 3만 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은 "차 빼라"를 연호하며 혹한에 트랙터의 곁을 지켰고, 무박 2일의 대치 끝 경찰은 길을 열었다. 이름하여 '남태령 대첩'.

이틀 뒤인 24일, 남태령 대첩에 참가했던 15명의 여성과 퀴어를 인터뷰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콜센터 상담원, 개발자, 공예가, 프리랜서, 예비 교사 등등 각자의 처지와 나이는 달랐지만 오직 '연대하기 위해' 추운 겨울 자리를 지켰던 이들이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경찰과 대거리를 하고, 관우의 청룡언월도처럼 생긴 큰 칼 모양의 LED 봉을 높이 들고, 시민 발언에 나섰던 사람들에게 그곳에 갔던 이유를 물어봤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때문에… 그곳에 갔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 및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상당수 여성들이 남태령행을 두고 '죄책감', '부끄러움'을 언급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레즈비언 여성 요술봉(활동명·40)은 "12월 3일 계엄 터졌을 때 국회에 못 간 게 마음에 걸려서, 빚졌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당시 국회를 지킨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 이어진 탄핵 집회들에 모두 참여하지는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이 컸다.

계엄 선포에 아비규환이었던 국회를 지켜봤던 이들에게는 이른바 '학습 효과'라는 것이 생겼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가서 자리를,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주중에는 콜센터 상담 업무로 바빠 대신 주말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정금은 그날도 광화문 집회에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의 '트윗'을 봤다.

"'시민들이 오니까 경찰이 폭력적으로 굴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남태령으로 와주세요' 라는 트윗을 보고 무작정 4호선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냥 그분들 지켜야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어요."

22일 오전 1시, 물결(가명‧21)도 정금과 비슷한 마음으로 남태령으로 가는 버스 막차에 올랐다.

"계엄 때 나가지 못했다는 일종의 부채감이 있기도 했고, 그때의 경험으로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그걸 막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어차피 걱정돼서 잠들지 못할 거라면 현장에 있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해서…"

혹한 속 기운을 잃어가는 '남태령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교대'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22일 오전 7시 첫차를 타고 남태령에 도착한 대학생 조보리(가명‧23)는 밤새 전농TV의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지켜본 이들 중 하나였다.

"방송을 보다 보면 중간중간 마음 쓰이는 사람들이 보여요. 자꾸 졸거나 힘이 빠지는 게 보이고… 경찰들이 방패를 들었다. 뭐 했다 하는 소리를 들으니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몸살 기운에도 일어섰던 이유는 "내가 아프다고 해도 밤새 남태령에 있는 시민들과 농민들만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21일 언니와 함께 광화문을 찾았던 조은(가명‧23)은 "남태령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최 측 공지에 남태령으로 넘어가 밤을 새웠다. 아침에는 언니가 와서 자매 간에 '배턴 터치'를 했다.

노래하며 걷던 평화로운 광화문과 경찰에 의해 통행이 막히고 트랙터 유리창이 깨진다는 남태령의 낙차를 의아해한 이들도 있었다. 그것은 곧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떠올리게 했다. 21일 광화문 행진 대열에 참가한 조수진(24)은 'X'를 통해 쭉 전농 소식을 '팔로우'하고 있었고, 이 행진의 끝에서 곧 트랙터를 마주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다 '남태령에서 막혀서 못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좀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저희는 신나게 걱정 없이 노래나 부르면서 걷다가 왔으니까, 저기서는 큰일이 일어났다는 상상을 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거기 있는 농민들은 연세가 좀 있으시고, 전국에서 조금씩 모인 거고 이런 식이니까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는 집회하다가 막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백남기 농민도 '농민'이고요. 그래서 그 얘길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나는 게…"

'양곡관리법' 등 농촌 의제를 구체적으로 알았던 이는 15명 중 2명이었다. '몰랐다'고 응답한 13명 중에서도 2명은 양곡관리법이 윤 대통령이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더욱 자명하게 인지한 사실은, 농민들 의제를 모르더라도 그들이 광장으로 올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면서 응원한다고 말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가벼운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들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여전히 모르지만 적어도 그럼 가서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중략) 근데 일단 '딜리버리(delivery‧전달)는 돼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갔었어요."(조단원)

'오병이어의 기적'과 '희한하게' 안전했던 공간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저지된 뒤, 응원하는 시민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이주연

남태령에서 만난 핫팩 나눔과 배달 음식 후원 등을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김밥 한 줄을 받으면 절반만 먹고 절반은 뒷사람에게 보냈다. 집에서 데워온 보온병 물을 옆 사람과 나눴다. 집회 현장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다 저체온증으로 쓰러질 뻔한 신미영(24‧여성의당 경기지부 당원)은 발 핫팩을 나눠주던 노인, 직접 가져온 귤을 나누던 여성 등 집회에 있던 이들이 "모두 따뜻하고 다정하셨다"라고 말했다.

새벽녘, 정금의 맨손에는 뜻밖에 장갑이 끼워졌다. 이미 10시간가량 혹한에 노출된 몸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떨리던 정금을 어느 소녀가 붙들더니 자신의 장갑을 끼워줬다. 이어 어느 여성 농민은 정금을 자신의 차에 태워 히터를 틀어 몸을 녹이게 했다. 강원 강릉에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남태령에서 밤을 꼬박 새운 김지우(활동명‧22)는 "400명이 참가하는 단체 카카오톡방이 개설돼 어느 출구에 사람이 부족하고, 물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공유해가며 현장 상황을 알려줬다"라고 밝혔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만큼 성황리에 진행된 시민 발언은 자주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들이 농민들 의제를 잘 모르고도 남태령에 온 것처럼 "논바이너리예요", "트랜스젠더예요" 하는 말들을 잘 몰라도 '끄덕끄덕'하는 분위기였다. 개별 의제를 얘기하면 "숟가락 얹지 마라" 하는 비아냥이 날아들던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그런 게 중요하지가 않았던 거죠. 최소한 그 자리에서는 '우리가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투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여기 모였다'는 생각을 공유했던 거 같아요. 필요에 의한 공동 전선이 아니라 여기 있는 동지들이 '넌 뭐니? 네 얘기도 좀 들어보자' 하는 식으로요."(조단원)

정금은 "모두가 각자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응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들이 차벽으로 에워싼 곳에서 두려움에 떨면서도, '희한하게' 집회 현장 만큼은 "여자여도 성소수자여도 아무래도 상관 없이 자기 자신 그대로 있어도 안전한 공간"이었다.

"너무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여의도 집회 참석 후 혼자 집에 가다가 피켓을 든 저를 보고 젊은 남성들에게 위협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안에선 정말 희한하게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농민이 여성이 시민이 국회의원이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자리었거든요."

토리(가명‧30)에게도 그날의 자기소개들이 기억에 남았다.

"자기 소개할 때 정체성 그런 거를 밝히셨는데 모두 '그렇구나~' 하고 응원해 줬어요. 탄핵 반대하시는 분만 아니면 뭐 외계인이와도 환영할 분위기였어요."

혼자 '레인보우 플래그'(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인 앨라이를 상징하는 깃발) 하나만 들고서 남태령을 찾았던 '요술봉'은 이후 한강진까지 행진하면서는 6~7기의 무지개 깃발과 함께했다.

남태령이 연대의 장이 된 데는 '2030' 여성들과 퀴어들의 힘이 컸다. 인터뷰이들은 외양으로 성별을 짐작하는 일의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남태령에 청년 여성이 무척 많았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다. 여의도‧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보다도 남태령에 더욱 2030 여성들이 많았는데, 이는 남태령 이슈가 여성 유저가 많은 'X'에서 폭발적으로 '리트윗'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X'는 사람들 의견을 나르는 플랫폼에 불과할 뿐, 기본적으로는 혐오를 일상적으로 겪는 여성의 소수자성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서 받는 불이익과 그 불합리함을 그 어떤 때보다 절절하게 깨닫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불이익을 겪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숭고하게 표현하자면 이타심이겠네요. 현실적으로 판단하자면 품앗이일지도요."(여채현)

"'품앗이'라는 말은 나쁜 뜻이 아니라, 농촌에서 품앗이를 하듯 서로의 짐을 함께 나눠 든다는 의미"라고 채현은 부연했다.

불의에 항거할 의지·용기와 함께, 정보 접근성과 전파력이라는 자원을 모두 갖춘 이가 '청년 여성'이라는 진단도 많다. 요술봉은 "연대할 의지가 있으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청년 여성들과 소수자"라고 말했다.

조보리는 "소외된 자들은 나라에 관심이 많다. 좀 더 올바른 나라가 되길 꿈꾸는 마음과 동병상련을 품고 있기에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라며 "정보 교류에 능하다는 강점도 있다. 다른 세대에 비해 실시간 소통에 익숙해서 응집력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살지 않는다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온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부근인 한강진역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시민들이 환영하고 있다.권우성

남태령의 기억은 참가자들에게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만으로는 살지 않으며, 정체성을 넘어서도 연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남태령까지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이 할머니‧할아버지, 어머니‧아버지와 같은 농민이라는 점이 그랬고, 그들이 농사지은 쌀이 내 입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그랬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를 함께 겪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박이재(27)는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여성 의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것이 여성 의제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교육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인문학을 공부해서인지' 문화예술 정책에 관심이 많고,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서울교통공사의 부당함을 규탄한다.

"이상의 실현을 남태령에서 직접 보았고 모두가 농민을 위해 투쟁한 것이 정말로 기쁩니다."

민연우(23)는 앞으로 여성 의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농민 의제 같은 여타 집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공권력의 압력을 보니, 내가 어쩌다 느끼는 무력감을 그분들은 계속해서 일상 속에서 겪으시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그분들도 같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요."

'협객'에게 남태령은 '정치적 효능감의 장'이다. 경찰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경찰차가 움직이는 걸 두 눈으로 봤다는 점에서 그랬고, 연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대가 전달되었을 때, 농민들이 더는 외롭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안함과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유가 뭐든 사람들이 여기 있으면 경찰버스가 움직인다, 그러면 길도 열 수 있다… (경찰들이)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전에는 몰랐던 앞선 세대와의 '연결'을 체감하기도 한다. 남태령 대첩을 계기로 24일 전장연 집회에 처음 참가한 조수진은 민중가요 노랫말에 있던 '깨부수자 성차별'을 기억한다. "제가 페미니즘을 접하기 훨씬 전인 1980년대에 만들어진 노래('딸들아 일어나라')에서부터 그런 가사가 있더라고요. 옛날부터 연대를 해주신 거예요. 나도 저 공로의 혜택을 받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금은 이같은 일들을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 중)라는 노랫말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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