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왼쪽)과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경쟁력의 미래'에 대한 원탁 토론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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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책 분야에서 드러나는 것은 유럽의 기후정책을 과거와 같이 정책 간 조정 없이 추진할 경우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역풍을 맞아 거부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따라서 탈탄소화를 성장의 원천, 경쟁력의 원천으로 만들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에너지 가격의 하락이다. 탈탄소화 정책의 혜택이 에너지 가격의 전반적 하락으로 빨리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에너지 시장의 개혁과 함께 청정에너지 정책의 기술 중립성을 원칙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 원자력, 수소, 바이오에너지, CCUS(탄소 포집, 저장, 사용)를 모두 포함하는 접근법을 제언하고 있다. 또 그리드 투자 확대와 가속을 청정에너지 확산의 열쇠로 본다.
탈탄소 산업의 발전을 위한 분야별 맞춤형 접근도 제안한다.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 대한 대응이 관건이다.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중국에 의존할 것인가, 유럽 산업과 좋은 일자리를 지킬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것이다.
탈탄소 산업에 대한 정책은 산업 부문, 기술별로 3가지 그룹으로 나눠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의 상대적 경쟁력, 전략적 중요도, 미래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 등을 기준으로 기술과 산업을 구분하여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태양광 패널 등 이미 중국의 경쟁력이 확고한 경우 중국 기업이 유럽에 투자하도록 유도한다. 둘째, 배터리 등 전략적인 이유로 유럽 토착 기술의 육성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셋째, 유럽이 기술력이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는 부문은 유치산업으로 보고 육성 정책을 편다.
③ 대외 안보 증진, 대외 의존 축소
유럽은 디지털·그린 전환이라는 이중의 전환과 성장모델의 전환에 필요한 광물자원, 핵심 기술은 물론 군수산업 역량에서도 미, 중 등 경쟁 블록에 비해 가장 취약하다고 보고, 이러한 대외적 취약성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핵심 광물 및 기술의 안전한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문의 역내 생산을 확대해야 하고 방위, 우주 부문의 산업 역량을 키워야 한다. 유럽 내 첨단 반도체 역량 확대도 추진한다. EU 차원의 대외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자원 부국과 무역협정 및 직접투자 조정, 자원 비축 확대, 핵심기술에서 역외 국가와 산업 파트너십 확대 등을 추진해야 한다. 방위산업, 우주산업이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수요를 통합하고 방산 조달에서 협력을 강화하며, 공동 R&D 지출도 확대해야 한다.
보고서는 위 세 가지 분야에 대한 제안에 이어 투자 파이낸싱과 산업전략 거버넌스 체계의 개혁이라는 수평적 산업정책의 제언으로 보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7500억~8000억 유로의 추가 투자가 필요한데, 1960~70년대의 높은 투자율(총투자액/GDP 비율)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정도로 큰 증가이다. 문제는 여기에 필요한 투자를 어떻게 파이낸싱할 것인가, 민간과 공공부문은 어떻게 역할을 분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드라기는 민간 자본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자본시장 통합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돌파형 연구, 그리드, 방위 조달 등 핵심 프로젝트에는 공공-민간 공동투자가 필요하다. 이 경우 유럽 차원의 공동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앞서 제시한 분야별 정책은 모두 개별 회원국 수준을 넘어 유럽연합 전체 수준에서 통합하고 조정한 산업전략을 요구한다. 회원국 수준에서 관련 정책이 없는 게 아니지만 EU 차원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산업 혁신, 탈탄소화, 공급망 안보를 별도의 어젠다로 추진했다면, 이번 집행위는 이것을 하나로 묶는 포괄적 성장전략으로 추진한다.
이 통합은 당연하게도 정책 추진의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거버넌스 개편은 조약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이 떨어져 조약 변경이 필요하지 않는 수준의 거버넌스 개혁, 정책 간 조정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유럽판 '공급측 경제학'... 가능할까?

▲스페인 농부들이 16일 마드리드 농업부 밖에서 EU-메르코수르 무역 협정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가상의 캐릭터로 묘사한 포스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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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보고서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새로운 산업전략이다. 수요 촉진 정책으로는 정체에 빠진 유럽 경제의 성장을 회복할 수 없다는 진단에서 나온 유럽판 '공급측 경제학'으로 볼 수 있다.
2000년 유럽의 혁신 전략인 리스본 전략은 유럽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지식기반 경제'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개혁 어젠다는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완화, 자유화를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이었다. 반면 드라기 보고서는 국가 개입을 동반하는 산업정책 어젠다이며, 혁신 목표와 충돌할 경우 반독점 규제의 완화도 제안하고 있다.
따라서 거시적 성장모델에서 섹터별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산업전략으로 이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대 섹터 혁신을 성장의 동력으로, 탈탄소화와 경제적·군사적 회복력(Resilience)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 세 가지 정책분야를 산업 수준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블록 간 경쟁은 거시경제적 차원의 이슈라기보다는 기술 혁신이 특정 섹터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현상은 다수의 범용 기반 기술이 동시에 발전하여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 한 가지 이슈는 정책의 실행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도 중국과 같은 단일국가도 아닌 주권국가 연합이라는 제약 속에서, 더 깊은 통합으로 일보 전진인가 해체의 가속화인가 하는 기로에서 유럽이 제안한 성장전략으로 이해된다.
미, 중 등 글로벌 블록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통합이 요구되는 시점에 EU는 통합의 동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의 차이로 원심력이 강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제2기 트럼프 정부의 대유럽, 대러시아 정책이 유럽연합 회원국 간 원심력을 더 키울 가능성도 높다. 통합을 주도해 온 독일, 프랑스가 내부 정치 위기로 주도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유럽연합을 둘러싼 환경이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더 깊은 통합을 요구하는 야심 찬 산업 전략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과거에도 위기를 통해 더 깊은 통합으로 진전한 경험이 있듯이 이번의 위기도 통합으로 일보 전진하는 이정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계환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계환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계환은 산업연구원(KIET) 산업통상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북방경제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분야는 글로벌 공급망의 지정학, 유럽·미국 등 주요국 산업전략의 다양성, 체제전환 경제의 산업구조 변화와 경제발전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 <경제패권 경쟁시대 전략적 자율성을 위한 산업통상전략>, <동아시아 공급망 재편과 북한 산업발전에 대한 시사점>, <경제안보 기술동맹 시대 한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 <수출 역동성 회복을 위한 수출 모델 변화 방향>(2024 예정), <북중러 새로운 공급망 형성 가능성과 함의>(2025 예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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