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6 11:56최종 업데이트 24.12.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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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태어나 성장한 곳은 전북 무주읍이다. 방과 후에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건 태권도장, 방과후 수업 검도, 배드민턴 동호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수영장 정도였다. 또래 중 대다수는 태권도장을 다녔다. 운동 좀 하는 친구들은 태권도장에 다 모였다.

서울에 오니 운동할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있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이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가격, 시설, 운영자 모두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숫자가 없는 삶이 더 아름답다고 믿지만, 때로는 숫자가 주는 정직함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테면 연봉이나 출퇴근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체육관은 가까운 게 최고다

체육관 (자료사진)unsplash

가장 추운 연초는 운동 열기가 가장 활활 타오르는 때다. 우리는 어떤 체육관을 골라야 할까. 사람마다 체육관을 고르는 기준은 다를 테다. 운동 목적이나 개인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여건상 저렴한 금액이 최우선일 수 있다. SNS 사진용 운동이 필요한 사람은 내부 시설과 조명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하나의 운동을 진득하게 즐기고 싶다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 가까운 거리와 좋은 사람.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내년 이맘때도 운동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필자에게 체육관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체주근접'이다. 직주근접이 최고이듯, 집과 가까워야 한다는 원칙은 복싱장을 고를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아무리 야근 없는 직장이어도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 여가 활동 시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약 2년 전이었다. 뛰어가면 5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복싱장을 찾아가 운동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6시 30분~7시 사이가 된다.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간단한 식사를 한 뒤 곧장 복싱장으로 간다.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하면 열 시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다. 매주 3~4회 운동하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 이틀만 쉬어도 근육이 근질근질해진다. 의지만으로 습관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운동하는 장소가 가까워야 습관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덜 소모된다.

이 외에도 복싱장이 가까우면 여러 장점이 있다. 물리적인 거리는 심리적인 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몸이 평소보다 피곤한 날에는 집 밖으로 걸음을 떼는 것부터 힘들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우면 일단 발걸음을 떼는 게 가벼워진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우면 운동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조금이라도 덜 걷게 되니 자연스레 남은 체력으로 샌드백 한 번이라도 더 칠 수 있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곳이 좋은 체육관

미트 훈련하는 모습이현우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체육관을 오래 다니기는 쉽지 않다. 분위기도 중요하다. 이때 분위기란 운동 분위기를 포함해 운동 외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체육관은 본질적으로 운동하는 장소다. 전반적으로 운동하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야 한다.

운동 분위기는 회원들이 만들기도 하지만 관장님의 운동 철학이나 지도 방식이 중요하다. 온라인 복싱 카페를 보다 보면 회원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 체육관이 있다. 절대 가서는 안된다. 때론 잔소리꾼 역할도 하고 재능 발굴단장으로 연기하는 지도자가 있는 체육관에 가야 한다.

프로 운동선수가 될 게 아니고 취미로 즐긴다면, 정교한 자세 교정보다는 응원과 격려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초보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복싱과 같이 혼자서 훈련하고 연습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운동은 고독할 수 있다. 신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가끔 '재능이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해주는 재능 발굴단장이 되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초반에 기본기와 자세를 배우는 시기는 중요하다. 잘못 잡힌 습관이나 굳어진 자세는 고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체육관에 가면 자신의 자세를 보며 교정할 수 있도록 거울이 마련되어 있다. 정신을 놓고 있다간 복싱장 마법의 거울은 자아도취를 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한다. 마법에 빠질 때쯤 옆에서 잔소리를 잘 포장해서 속삭이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복싱장에서 택견하는 당신의 모습에 누군가 웃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세를 꼼꼼히 봐주고 교정해 주는 체육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복싱장에 가면 미트 치는 훈련이 있다. 샌드백 훈련이 멈춰있는 물체를 타격하는 훈련이라면 미트 훈련은 정말 실전에 가깝게 움직이는 사람을 타격하는 훈련이다. 지금 다니는 복싱장은 매일 미트를 잡아주신다. 누구나 몸 상태가 안 좋은 날이 있지 않은가. 평소보다 파워가 약한 날이면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신다. 미트 훈련을 하면서 자세를 교정받기도 한다. 중심이 흐트러지거나 턱이 들리면 관장님은 바로 이야기해 주신다.

지금 다니는 체육관은 '바디 미트'도 칠 수 있다. 관장님이 거북이 등 같은 미트를 복부에 차고서 관원들이 복부를 타격할 수 있도록 미트 훈련을 시키신다. 전력을 다해 때리는 바디샷의 희열은 때려본 자만이 안다. 이렇게 전력으로 바디 미트를 칠 수 있는 체육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바디 미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트 훈련을 매일 혹은 정기적으로 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복싱장을 고를 때 중요하다. 종목에 따라 이런 세부 프로그램이나 커리큘럼을 확인해 보는 것도 체육관을 선택할 때 확인하면 좋다.

요즘은 복싱도 피트니스처럼 PT(퍼스널 트레이닝의 약자로서 개인 코칭을 뜻한다)를 하는 체육관이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 체육관은 PT가 아니더라도 초보자일 경우에는 더욱 신경 써서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엄격하게 시간을 지켜 운동하도록 지도하신다. PT라는 게 별것 있는 게 아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복싱과 같은 운동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PT가 당연한 운동 아니겠는가.

사랑방 같은 복싱장의 즐거운 운동 분위기

나보다 스피드가 빠르거나 몸집이 큰 사람이 압박해 오면 별다른 움직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체력이 소진된다.이현우

취미로 즐기는 이들에게는 외적인 분위기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쌓는 것도 취미 생활의 일부다. 쉬는 시간에 적당한 유머가 섞인 가벼운 수다를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운동 분위기도 근육처럼 적절한 이완과 수축이 필요하다. 얼마 전 체육관 아는 형님은 복싱장 종소리가 '3분 쉬고 30초 운동하라는 의미'라고 농담을 건넸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분위기는 사람이 만든다. 좋은 사람이 좋은 체육관을 만든다. 어떻게 좋은 체육관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물론 한 번의 방문으로 알아채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알 수 있는 비법이 있다. 여러 시간대에 가보면서 살펴보자. 체육관에 오래 다닌 사람이 있는지 한둘이 아니라면 그곳은 좋은 체육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텃세를 부리는 분위기는 아니어야 하며 새로 온 관원을 환영하는 분위기여야만 한다.

어느덧 복싱장은 동네 사랑방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제는 2년 정도 다니다 보니 동네에서 체육관 형님들과 어린이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출근길과 퇴근길에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체육관 관원들과 몇 차례 회식도 하면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복싱장은 더 이상 단순히 운동만 하는 장소는 아니다. 체육관 때문에 이 동네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니 체육관을 향한 애정이 짐작되는가. 체육관에 가면 정겨운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은 썩 운동이 끌리지 않는 날에도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물론 복싱을 좋아하는 마음이 지금 체육관을 오래 다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도 운동을 진득하게 하는 비법이다. 이제 복싱을 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다행히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휩쓸리지 않고 복싱장 하나의 샌드백을 차지하고 있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몇 개의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아마추어신인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연말에 신인선수권대회가 있는 걸 고려하면 1년간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폐관 수련을 할 생각은 없다. 늘 그랬듯 관원분들과 잽뿐만이 아니라 농담도 던져가며 즐겁게 운동할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취미니까. 목표를 세우되 즐겨야 지속할 수 있다. 즐기는 자가 챔피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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