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3 19:56최종 업데이트 24.12.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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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민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2차 표결 가결을 촉구하며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유성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무산된 이튿날인 지난 8일, 사회복지·사회정책·보건의료 분야 22개 학회가 '윤석열 탄핵 촉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학회는 성명서에서 "비상계엄령은 헌법적 근거가 없는 폭거"라고 지적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오직 당의 이익과 안위만을 위해 탄핵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바로 퇴장한 것은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윤석열과 함께 역사의 법정에 세워질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22개 학회나 참여한 공동성명서의 시작은 단체카톡방이었다. 비상계엄군의 국회 점령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12월 4일,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비판복지학회) 임원 단톡방에서 은석 덕성여대 교수가 학회 차원의 대응을 제안했고, 학회장인 최영준 연세대 교수가 즉각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학회 간 공동성명서 발표 논의는 그렇게 시작됐다.


비판복지학회 비대위의 이런 움직임은 급박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탄핵소추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가운데, 탄핵소추 부결이 제2의 계엄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비상계엄은 어떤 논리로도 납득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역사에 대한 최소한 예의가 아니었을까?

7일 치러진 1차 탄핵소추 국회 표결은 많은 이의 예상대로 국민의힘 소속 대다수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 내란 폭동에 대해 어떻게 면죄부를 주고 탄핵에 반대할 수 있는지, 과연 국민의힘은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내란 옹호 행태였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동참과 연대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곧바로 관련 학회들에 타전했다. '사회정책 연합 학술대회'를 함께 열어온 학회들의 즉각적인 호응이 있었다.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한국건강형평성학회,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한국사회정책학회 등이다. 불은 곧바로 확산했다. 불과 하루 만에 무려 20여 개 학회가 공동성명서 발표에 손을 맞잡았다. 비판복지학회가 켠 촛불이 어느새 횃불이 된 것이다.

탄핵소추는 새로운 시작에 불과

지난 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연합뉴스

기실 학회 차원의 연대성명 발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부 구성원들의 동의나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고, 이견이 나오면 설득의 시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합의를 모으기도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무려 22개 학회가 하루 만에 공동성명서에 동참했다. 학회 역사상 좀체 보기 드문 일이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일부 학회에서 내부 절차를 이유로 참여 요청을 거절하거나,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나오면서 참여가 무산되거나 결정을 미룬 곳도 있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위기에 처한 마당에 침묵하거나 반대하는 일부 학회 구성원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지속해서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 결정을 유보한 곳이 참여로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발표 이후 미처 접촉하지 못한 몇몇 학회가 성명서 기사를 보고 동참 의사를 잇달아 내비쳤다. 이들은 "우리 학회도 함께 하고 싶어요", "왜 우리 학회에는 연락하지 않았나요"라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리하여 최종 참여 학회는 22곳에서 27곳으로 늘었다. 적어도 보건복지계에서 역사상 이토록 많은 학회가 결집해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내친김에 학회 관계자 몇몇은 2차 탄핵소추 표결을 앞두고선 직접 행동에 나섰다. 관련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 사무실을 일일이 찾아가 직접 성명서를 전달하고 탄핵소추에 찬성투표 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우리들의 작은 열정과 연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지난 14일 마침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되었다. 강인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민의 위대함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탄핵소추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온 국민이 생중계로 내란의 폭거를 목도했음에도 윤 대통령은 여전히 몽니를 부리고,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은 계엄령을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하는 궤변을 서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언론마저 탄핵 절차를 수용하라고 촉구하는 마당에 이들은 배신자 운운하며, 내란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극우적 발언과 행태를 지속해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45년 만에 계엄령이라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고 헌정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한 집단을 단죄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언제든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가 추구해 온 복지국가의 근본적 기반을 훼손할 것이다.

어느 때보다 지식인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다. 학회의 역할 또한 공동성명서 발표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자위할 수도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시간은 실로 엄중하다. 비상계엄에 따른 후폭풍이 어마어마한 데다 안팎으로 큰 위협이 밀려오고 있다. 이런 복합위기의 순간에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이 누구이겠는가? 힘없고 배경 없는 취약계층일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과 대안도 깊게 주시하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다.

전용호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전용호

(이 글은 최영준 연세대 교수, 은석 덕성여대 교수, 김윤영 전북대 교수도 함께 참여해 작성했습니다.)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이며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노인복지정책, 노인돌봄, 장기요양,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등입니다. 저서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공저), <복지국가 쟁점 2>(공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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