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현 시국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소연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윤석열을 옹호하고 나섰다. 황교안은 "저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대통령권한대행을 했던 선험자로서 최근의 국가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라며 19일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그는 "비상계엄의 본질을 생각해야 합니다"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것은 내란이 아닙니다. 국헌의 본체인 대통령이 무슨 내란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대통령은 내란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국가권력이 입법·행정·사법으로 분립돼 있어 대통령이 입법·사법을 침해하면 국헌 문란의 내란죄를 범하게 되는 국민주권국가의 기본 논리에 반하는 주장이다.
나라를 훔치는 역적도 강도의 일종
이전 시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내란은 기본적으로 종묘사직을 위협하는 행위였다. 종묘사직은 종묘와 사직이라는 국가 제례시설을 의미하기도 하고 ,국가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국가 핵심시설을 침범하는 것도 모반대역죄로 규정하고, 국가 그 자체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도 모반대역죄로 규정했다. <경국대전> 형전과 더불어 형법전 기능을 한 <대명률직해> 형률은 모반대역죄를 이렇게 규율했다.
"무릇 사직을 위태롭게 하여 나라가 망하게끔 모의하거나 종묘나 산릉 또는 궁궐 등을 헐어 없앰으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기로 모의한 경우에는 이런 모의에 같이 가담한 사람들을 주모자와 수종자로 나누지 않고 모두 거열처사시킨다."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모의를 하거나 국가 핵심시설 침범을 모의한 것이 모반대역죄로 규정됐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헌정질서를 교란하거나 국회 혹은 중앙선관위 등에 침입하기로 모의하는 것도 모반대역죄가 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군주 역시 종묘사직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주도 일종의 내란죄를 범할 수 있다고 봤던 셈이다. 1506년에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세력이 내세운 핵심 논리는 '연산군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했다'였다. 연산군이 국헌 질서를 위협한다고 인식한 것이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하는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은 음력으로 연산군 12년 9월 2일 자(양력 1506년 9월 18일 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주상은 임금의 도를 잃어 종묘를 맡을 수 없고, 천명과 인심이 이미 떠났다"며 정변을 정당화했다.
쿠데타로 직무가 정지된 연산군을 대신해 정현왕후 윤씨가 대비 자격으로 비상대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윤 대비는 박원종의 논리를 수용했다. 그는 "사직을 위한 계책이 부득이하다"는 문구가 적힌 전교(傳敎)를 통해 그 논리를 채택했다. 군주인 연산군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비슷한 내용이 <연산군일기>의 다음 기록인 <중종실록>에도 나온다. 이 실록의 서두에는 "연산이 혼미하고 잔학하여 종묘사직이 위태롭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의논하여 (중종을) 추대했다'고 말한다. 국헌 문란의 주범으로 규정된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떠났다가 폐위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연산군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조선시대 사람들은 종묘사직의 최고 책임자인 임금 역시 얼마든지 국가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군주도 모반대역죄 같은 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 폭군 연산군도 조선시대판 내란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윤석열이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반대역죄는 <대명률직해> 강도 편에 규정됐다. 왕조시대 사람들은 나라를 무너트리고자 모의하는 것과 국가 핵심 시설을 침범하고자 모의하는 것도 도적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물건을 훔치는 것과 나라를 훔치는 것을 본질상 같게 봤던 것이다.
연산군 6년 10월 22일 자(1500년 11월 13일 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연산군의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강도"로 불렀다. 이런 표현과 더불어 허균의 <홍길동전> 때문에 현대인들은 그를 의적으로 오해했지만, 그가 강도로 불린 것은 관청을 습격하는 등의 행위 때문이었다.
영조 임금 때인 1755년에 보수세력인 서인당의 분파인 소론당 인사들이 역모죄로 체포됐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임금이 직접 참석한 영조 31년 5월 16일(1755년 6월 25일)의 친국 현장에서 "여러 역적의 음흉한 흉계는 강도의 무리를 모으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발언이 심문하는 측에서 나왔다. 나라를 훔치는 역적도 강도의 일종으로 이해됐던 것이다.
왕조시대 사람들은 임금도 종묘사직을 침해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종묘사직을 침해하는 행위는 모반대역죄로 규율되고, 도적이나 강도와 본질상 다를 바 없는 일로 간주됐다. '대통령이 무슨 내란이냐?'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왕조시대 사람들보다도 정치의식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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