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관련 후손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왼쪽 네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 홍성군 서부면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한 김명동은 20대 때부터 국내 독립운동의 지도자급 인물로 활동했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명단에는 그가 없지만,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현장에는 그가 있었다. 17세 때 3·1운동에 참여한 그는 25세 때인 1927년에는 국내 최대의 좌우합작 단체인 신간회의 설립에 참여했다.
원호처(국가보훈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독립운동사 제10권: 대중투쟁사>는 신채호·한용운·조만식·이상재·안재홍·홍명희 등이 포함된 신간회 발기인들을 거명하는 대목에서 "1월 19일에 발기인 김명동 등 34인의 명의로 아래와 같은 신간회 강령을 발표하였다"라며 김명동의 이름을 언급한다.
국내 최대 독립운동단체의 34인 발기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20대 중반의 김명동이 얼마나 촉망받는 청년운동가였는지를 알려준다. 그는 이 조직에서 중앙집행위원과 신간회대회준비위원회 재무부원 등으로 활약했다. 또 지방 지부의 확장에도 참여했다.
1927년 6월 19일 자 <조선일보> 2면 우상단은 그가 나흘 전 홍성청년회관에서 열린 신간회 홍성지회 준비모임에 참석한 사실을 보도했다. "본부 상부 간사 김명동 씨의 신간회 강령 설명이 잇섯고"라고 신문은 전했다. 고향의 신간회 지회 설립을 도우며 일종의 격려 방문을 했던 것이다.
1993년도 단재학술상(신채호 학술상) 수상작인 전 동덕여대 교수 이균영의 <신간회 연구>에 따르면, 일제 고등법원검사국(고등검찰청)이 1931년에 발행한 <조선형사정책자료>는 신간회의 지방 지부가 260개라는 말도 있고 386곳이라는 말도 있다고 알려준다. 신간회가 이 정도로 뻗어나가는 데에 김명동도 한몫을 했다.
43세 나이로 광복을 맞이한 김명동은 3년 뒤 5·10총선 당시 충남 공주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런 뒤 반민특위에 참여해 가장 선명한 의정 활동을 펼쳤다. 이는 1949년 6월 6일 대통령이 경찰력을 동원해 반민특위 처단에 나섰을 때 그가 현장에서 위협을 받는 원인이 됐다.
반민특위가 친일파들을 속속 잡아들이며 일종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이승만은 거듭거듭 제동을 걸었다. 처음에는 담화 등의 형식으로 훼방하던 그는 6월 6일에는 체포조까지 파견해 무력 공격을 벌였다.
반민특위에 관한 61번째 특집이 실린 1977년 9월 5일 자 <경향신문> 5면은 윤기병 서울 중부경찰서장이 6월 6일 오전 7시에 병력 80명을 경찰서 뒷마당에 모아 놓고 "우리가 하려는 행동은 불법적인 비상조치인 만큼 사정이 있는 사람은 빠져도 좋다"고 말한 뒤 체포조 40명을 추리는 장면을 묘사한다. 윤 서장도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기사는 설명한다.
이날 체포조는 한편으로는 반민특위 직원들과 특경대원(특위 경찰)들을 체포하고, 한편으로는 특위 정문을 봉쇄했다.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장 권승렬은 '상부 지시'를 운운하는 체포조에 가로막혀 정문에서 몸수색을 당하고 무기를 빼앗겼다.
이 모습을 본 김명동은 "상부 지시라니, 상부가 누구냐?"며 고함을 쳤다. "김명동·김상돈 등이 곳곳에서 고함을 지르자 윤기병은 '좋을 대로 해석하라'며 버텼다"고 위 기사는 말한다. 김상돈이 '즉각 국회를 열겠다'며 호통을 치자, 윤기병은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 1949년 하반기에 친일청산의 동력이 떨어졌다.
이 사건 뒤 김명동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가 국회의 석방요구결의로 풀려났다. 반민특위를 주도한 다른 의원들은 빨갱이로 몰려 유명한 '국회 프락치 사건'의 희생자가 됐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내의 친일파부터 찾아내자며 친일청산을 선도한 김명동의 투쟁은 그렇게 꺾였다. 그 뒤 그는 2년 만에 치러진 1950년 제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 직후 한국전쟁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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