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다음날인 지난 10월 11일 오후 1시께,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한 책방 앞에 그의 책을 구입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박수림
우스갯소리로 손님들에게 말하곤 한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자주 와주세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근 1년간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 종합 독서량은 3.9권이다. 10명 중 6명 정도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동네책방 운영은 쉽지 않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동네책방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작가의 책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과거 해당 책방 관계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한강 작가의 책방 역시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는 만성적인 적자를 겪고 있었다.
동네서점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네서점' 사이트
(https://www.bookshopmap.com/)에 등록된 동네책방은 2023년 기준 총 884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이 익숙함에도, 생각보다 꽤 많은 수의 동네책방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성적인 적자, 적어도 큰 폭의 수익을 낼 수 없는 한계에도 한강 작가를 포함하여 많은 책방 운영자들이 굳이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온라인 서점의 편의성과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굳이 동네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참고서 중심의 서점이 아닌, 우리가 흔히 '동네책방'이라고 부르는 책방은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을 건립하여 시민들이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도서정가제를 통해 특별히 책을 보호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가진다. 일단 동네책방은 이렇게 공공성을 갖는 책을 판매한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중요하다.
특히, 대형 온라인 서점은 대자본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홍보와 판매가 이루어지는 데 반해, 동네책방은 책방지기의 취향에 따라 책을 선별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대형 서점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책들을 손님에게 연결해주어 책 다양성, 출판 다양성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동네책방의 핵심 가치는 책 판매를 넘어 지역에서 독서문화를 형성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동네책방은 독자와 저자를 이어주는 북토크, 독자를 양성하는 독서모임, 인문학 강연 등을 통해 작가에게는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독자들에게는 깊이 있는 독서를 경험하게 해준다.
요즘에는 예술 공연, 전시, 영화 상영 등 책 그 자체에 기반한 행사를 넘어 예술공간으로서 기능도 하고 있으며, 글쓰기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리기도 해 교육공간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동네책방은 단순한 책 판매를 넘어 독서문화 확산, 인문학 보급, 예술, 교육 등의 공간으로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문화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독서 생태계의 근간이자 문화와 예술 다양성의 풀뿌리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2020년 도서정가제 관련 토크 행사에서 "자기가 사는 집에서 버스정류장 7, 8 정거장 안에 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문화 혜택의) 차이가 있다"면서 "동네서점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동네책방이 사회적으로 소중한 자산인 이유이며, 따라서 그 생존과 운영을 운영자 개인에게 일임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충분히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동네책방 지원 사업인가, 착취사업인가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정부나 지자체 예산으로 운용되는 책방 지원 사업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지원사업들은 대체로 책방 행사 시 연사에 대한 강의료 지원을 통한 간접적 지원으로, 책방 공간이나 책방 운영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의 동네책방 지원 사업은 책방 운영자의 기획, 홍보, 행사 운영에 대한 인건비나 공간 활용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가 지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해당 사업으로 강사료 지원을 받으면, 행사 홍보 시 문화체육관광부 등 지원 사업 주체를 명시해야 하고, 이후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행정절차도 겪어야 한다. 행사 참여자들에게 참가비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책방 운영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직접 강의를 하는 등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책방운영자는 강사료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쯤되면 과연 이것이 책방 지원 사업인지, 책방 착취 사업인지 모르겠다. 책방 운영자의 기획과 노동력을 착취하여 책방 운영자의 성과를 정부의 성과로 상납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정부하에서는 이렇게 미미한 지원사업마저도 없애거나 통폐합했다. 기존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살펴 보완하기는커녕 있는 지원사업을 축소시킨 것이다. 보도를 통해 드러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박수현 국회의원실에 제공한 2023년∼2025년(정부안) 5개 도서·출판 지원사업 예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792억원이던 예산은 2025년 707억원(정부안)으로 10.8%가 삭감됐다.
2021년과 2022년 2년에 걸쳐 시행된 서울시의 '우리동네 책방배움터'라는 동네책방 인문학 지원 사업의 경우, 미미하지만 책방에 공간료를 지급하고 책방 운영자가 직접 강의하는 경우 강사료 지급도 가능하게 하는 등 그나마 몇 안 되는 유의미한 책방 지원사업 중 하나였는데, 이 사업마저도 사라졌다.
완전도서정가제는 그림의 떡

▲한강 작가(가운데)와 박준 시인(왼쪽),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강당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성호
동네책방의 생존을 이야기함에 있어 도서정가제도 빼놓을 수 없다. 도서정가제는 무차별적인 가격 할인을 막음으로써 동네책방이 대형 온라인 서점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10% 할인이 가능하고, 추가로 5% 범위 내에서 경제상 이익 제공이 가능하며, 배송비 지원까지 별도로 허용하고 있어 반쪽짜리 불완전 도서정가제이다.
유통과정에서 대형 온라인 서점에 비해 높은 공급률을 수인하는 동네책방으로서는 실질적인 15% 할인과 배송비 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문화예술 선진국인 프랑스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서점만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출판사, 작가, 독자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제도다. 결국 가격 경쟁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주체는 자본이 있는 쪽일 수밖에 없다. 출혈적인 가격 경쟁 상황에서는 출판사뿐 아니라 창작자인 작가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고, 할인을 예정하여 불필요하게 높은 가격 책정 등으로 인해 독자 역시 손해를 본다. 무엇보다 출판계가 "팔리는 책"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는바, 책 다양성, 문화 다양성이 축소된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도서정가제 시행 국가와 비시행국을 비교한 기존 연구에 의하면, 비시행국에서의 책 가격 인상률이 월등히 높고, 동네책방 감소율도 도서정가제 비시행국이 훨씬 높다. 우리나라의 상황만 보더라도 비록 불완전하지만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소형 출판사가 늘었으며, 신간 발행 종수, 동네책방의 숫자 모두 증가했다. 독서 생태계와 책 다양성 측면에서 도서정가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책 다양성 확대를 위해 현재와 같은 불완전 도서정가제가 아닌 완전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완전 도서정가제는커녕 지금 있는 불완전 도서정가제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서점인들의 현실이다. 관련법상 정부는 3년마다 도서정가제를 검토해야 하는데, 서점인들은 3년마다 불안에 떤다.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도, 전 대통령도 동네책방 운영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23년 4월 26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자신의 책방 '평산책방'에서 계산 업무를 하며 손님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네서점이 처한 취약한 현실은 최근에도 드러났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전 국민이 한강 작가의 책을 찾으며 출판계가 잔치를 벌일 때, 동네책방은 완전히 소외되는 일을 겪었다. 동네책방에의 도매와 일반 소비자에의 소매를 겸업하는 대형서점은 도매 거래를 막고 판매를 독점했으며, 출판사들 역시 동네책방에의 유통은 뒷전으로 두고 대형서점은 물론이고 편의점, 이커머스 등에 책을 판매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같은 독서생태계의 일원인가 싶을 정도로 독서생태계 훼손 행위를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역시 동네책방을 운영함에도, 그저 국가적 명예를 높인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동네책방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거나 존중하는 태도, 더 나아가 독서문화 형성과 강화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해 평산 마을에 '평산책방'이라는 이름의 동네책방을 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전 대통령도 동네책방을 운영하건만, 어째서 동네책방은 늘 소외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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