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의 연금개혁안, 국가의 노후보장 기능 포기 선언"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양대노총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9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사실상 국가의 노후보장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며 '노후파탄, 분열조장 윤석열 정부 연금개악안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소연
전문가 중심의 개혁안 마련이 무산되면서 연금특위는 시민대표단 500명을 전국에서 선발하여 연금개혁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대규모 공론조사를 시행하였다.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시민 500명에게 집중 학습을 시키고 연금개혁안에 대한 의견을 묻은 방식으로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야심에 찬 계획이었다.
이 조사는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으로 양분된 개혁방안의 돌파구를 여는 방안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대표단 500명에게는 3권의 자료집, 10여 종의 동영상 등 연금에 관한 기초적 학습자료가 제공되었다. 시민대표단은 KBS로 전국에 생중계된 총 4일에 걸친 전문가토론회와 자체적인 숙의토론에 참여하여 쟁점을 학습하였다.
이 공론조사는 투입된 예산과 학습 분량 등에서 다른 어떤 공론화보다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공론조사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재정안정에 초점을 둔 연금개혁안이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소득보장 강화론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었다. 특히 청년세대가 소득보장강화론을 더 지지한다는 조사결과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이 걷어찬 공론조사
공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연금특위를 중심으로 모수개혁안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공론조사에서 다수안인 소득보장강화론은 보험료를 9%에서 13%로 4% P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인상하는 것이었다. 연금액을 높이되, 그에 상응하는 보험료도 더 납부하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이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여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구조개혁안이 없다', '시민대표단에게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었다' 등 공론조사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특위를 중심으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45%를 기준으로 비공식 협상안이 논의되었고 합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44%까지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조선> <동아> 등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 정치인조차도 합의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합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4월 29일 윤석열-이재명 영수회담에서 모수개혁안을 거부하였다. 다 차려진 밥상을 걷어찬 것이었다. 특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개혁안에 반대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속내를 드러낸 정부 연금개혁안
공론조사를 기반으로 한 연금개혁안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로 폐기된 이후 2024년 9월 복지부는 갑자기 독자적인 연금개혁안을 발표하였다. 통상 정부의 개혁안은 국민연금의 재정계산이 끝난 이후 발표되는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0월 발표한 '종합운영계획'에서 어떤 개혁안도 제시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론조사와는 무관한 9월의 독자적인 정부안의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고, 실제 개혁 의지가 담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엔 생뚱맞게도 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강화하는 공론조사 결과와는 정반대되는 기조가 담겨 있었다. 재정안정화를 우선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방향에 대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자동안정장치와 연금 삭감
정부개혁안은 보험료는 '대폭' 인상(9% → 13%), 소득대체율은 '찔끔' 인상(40%→42%)으로 요약된다. 외형적으로는 정부안이 소득대체율 인상, 연금 크레딧 확대 등 연금의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나 내용은 사실상 연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었다.
연금의 삭감은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부가 도입한 자동조정장치는 일본모델을 참고한 것으로 물가 변동분만큼 자동으로 연금을 인상하는 물가연동방식을 약화시켜 연금의 실질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가령 현재 방식에 의하면 월 연금액이 100만 원인 노인이 올해 물가가 2% 오르면 내년에는 102만 원의 연금을 받는다.
자동조정장치는 물가인상분에서 보험료를 납부하는 인구의 감소율, 그리고 평균수명 증가율을 빼고 연금액을 인상하는 방식이다. 가령 인구감소 3년 평균이 1%이고 평균수명 증가율이 0.36%이면 연금액은 2%가 아닌 1.36%를 제외한 0.64%만 인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삭감이 매년 누적되면 복리효과로 인해 총연금액이 20% 정도가 삭감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연금의 소득보장을 강화하라는 시민대표단의 공론조사 결과와는 정반대 되는 연금개혁안인 것이다.
차등보험료와 세대 간 갈등의 증폭
정부의 연금개혁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세대별로 보험료를 차등 납부하는 기괴한 보험료 인상안이 들어가 있다. 보험료를 모두 4%P 인상하되 현재의 50대는 연간 1% P씩 4년에 걸쳐, 20대는 해마다 0.25%씩 16년에 걸쳐 4%P를 인상하는 방안이다.
세대별 차등 보험료의 근거는 과거 소득대체율이 높고 보험료율이 낮은 시기에 연금에 가입한 50대는 상대적 특혜를 보았고, 청년세대는 반대로 상대적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세대 간 불공평성은 50대의 대부분이 연금이 없거나 적은 70대~80대의 부모세대들을 사적으로 부양하는 사적부양비를 무시한 것이다. 현재의 50대가 부담하는 부모의 사적부양비를 고려하면 보험료의 세대 간 차등 부담은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세대 간 차등보험료는 여러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50대의 보험료 추가부담은 이들의 고용을 기피하는 고용패널티를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세대 간 보험료 차등을 근거로 '실제적' 갈등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세대별 차등 보험료는 파급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없는 무모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허공으로 사라진 연금개혁
연금개혁은 윤석열정부의 4대 개혁 중 핵심의제였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일보 직전까지 갔던 연금개혁안을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걷어찼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다. 정부는 재정안정에 과도하게 편향된 개혁안을 만들어 연금개혁을 더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2년 넘게 진행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과정은 합리적인 사고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좌충우돌 과정의 연속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대통령 탄핵으로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김연명 교수김연명
* 필자 소개 : 김연명 교수는 현재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연금제도와 복지국가를 오랜동안 연구해왔으며 2022-2023년에 국회연금특위 민간전문가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에 오랜 기간 종사했고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장,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장을 역임했다. 문재인정부 기간 중 복지, 교육, 환경 등을 총괄하는 사회수석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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