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연합뉴스/AFP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윤석열이 보인 행태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계엄군에게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한 자가 담화를 통해 자신의 행위는 통치행위이지 내란이 아니라고 강변하며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은 차라리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145년 전 저 멀리 미국에서 한 경제학자가 썼던 문장이 21세기 선진 민주국가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구현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2023년 7월 21 일자 <오마이뉴스> 칼럼(
"어느 경제학자의 끔찍한 예언... 국민의 전반적 상태 걱정된다" https://omn.kr/24sjm)에서 헨리 조지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우리 국민의 도덕적 상태를 고려할 때 앞으로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정권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 이미 국가 소멸의 장기 과정에 들어섰다고 본 것이다.
나는 헨리 조지의 예언에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는 구절이다. 이 프레임대로 된다면, 포악한 윤석열(12월 12일의 4차 담화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성정은 포악하다는 말 말고는 묘사하기가 어렵다)을 축출하는 일은 그보다 더 악한 자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보다 더 악한 자라니, 상상하기도 싫지 않은가.
부패하기는커녕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민의 도덕성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작년에 했던 진단을 수정하게 됐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시민들은 물밀 듯 국회로 모여들었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가며 본회의장에 집결했다. 시민들은 군인들을 밀어내고 버스와 장갑차를 막아섰다. 70세 고령의 노교수 부부가 '이제 우리는 죽어도 괜찮아요!'라며 특임대 버스를 온몸으로 가로막는 모습은 많은 국민의 눈물을 자아냈다.
국회 보좌진들은 스크럼을 짜고 군인의 진입을 막았고, 국회 전산 담당 회사 직원들은 힘겹게 국회에 들어가 본회의장 의결 전광판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대비했다. 그동안 정치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매도당했던 MZ세대 청년들은 대거 국회 주변에 모여서 불퇴전의 결의를 드러냈다. 계엄 활동에 동원됐던 군인들조차 최고 지휘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국회의원과 시민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 우리 국민은 악한 대통령을 부러워하지도 닮지도 않았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존중하며 지키려는 국민의 도덕성은 부패하기는커녕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부패한 것은 국민 대중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최상위 기득권 카르텔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의 '협박'을 들으며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장으로부터 희망의 고동 소리를 듣는다.
물론 미국 정부가 윤석열의 잘못을 명시적으로 지적하며 민주시민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 대세 결정에서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최종 심급에서는 국민의 도덕성이 결과를 결정한다. 윤석열과 그 잔당이 아무리 2차, 3차 쿠데타를 획책한다고 하더라도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야당들과 시민사회 세력이 안심하고 대충 대처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