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1월 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미국과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주한대사들이 서울 모처에 긴급히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섯 나라는 북·중·러 같은 옛 공산권 진영에 맞서는 기밀정보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의 구성원이다. 골드버그의 눈귀를 포함한 다섯 명의 눈귀가 윤석열과 김용현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태 파악이 늦었던 미국이 이 모임을 연 것은 이번 사태가 미국에 준 영향을 보여준다.
윤석열·바이든·기시다의 끈끈한 우정 덕에 공고해질 것처럼 보였던 한미일 삼각체제는 4년 더 재임할 수 있었던 조 바이든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대선 후보직을 넘겨주면서 이상 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해리스가 후보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후보 교체가 확정(8.22.)된 뒤인 10월 1일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취임과 함께 기시다 후미오마저 퇴장했다.
그래서 삼각체제의 계속 유지를 열망하는 측의 입장에서는 2027년 5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윤석열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기시다 총리의 '9월 자민당 총재선거 불출마' 의사표명(8.14.)으로 일본 정권의 교체까지 확실시된 뒤인 지난 9월 3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해리스가 당선되면 그의 참모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발언했다. 2027년까지 삼각체제하에서 윤 정부가 갖게 될 위상을 의식한 발언이라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일궈낸 삼각체제는 1950년대부터 미국이 열망했던 것이다. 미국이 이승만과 박정희를 한일회담으로 유도한 것은 태평양만 걷어내면 미 서부와 가장 가까운 지역인 동아시아에 확실한 보루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시스템이 이제 막 궤도에 들어서려는 시점이었다. 향후 2년 반 넘게 이 시스템을 지켜줄 수 있었던 윤석열이 느닷없는 대형 사고를 쳤으니, 미 행정부의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란이기도 하지만, 한미일 삼각체제를 안에서부터 교란하는 내란이기도 하다. 그래서 북·중·러에 유리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으로 북한 오물풍선의 발사 지점에 대한 원점 타격이나 평양에 대한 무인기 침투를 추진했다는 의혹이 보도되고 있다. 이런 의혹이 보도되는 상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더욱더 밀어붙이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미국 스팀슨센터의 마이클 매든 연구원은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10일 자 글에서 "(김정은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우선시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일 연대의 약화는 중국에 이익이 되지만, 동시에 위기도 될 수도 있다. 매든 연구원의 말처럼 지금 상황이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로 이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국이 패싱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중국이 원치 않는 사태가 러시아에 의해 동북아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달 1일 중국 외교부가 한국을 무비자 시험정책 대상에 추가한 것은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러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띤다. 후쿠오카 지역의 민영방송인 RKB는
10일자 해설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표면상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각자의 생각이 있다"라고 한 뒤 "북조선이 러시아에 과도하게 접근하는 것은 환영할 수 없고"라는 말로 중국의 입장을 새삼스레 강조했다.
그래서 김정은과 푸틴이 한국 상황을 명분으로 한층 긴밀해지면,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일본에 다가갈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에 대해 강경 입장을 견지하던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20일 일본산 수산물을 점진적으로 수입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북·러가 더욱 가까워지면 중국정부 고위 인사가 후쿠시마 수산물을 공개 시식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현 상황이 북러 밀착을 심화시키면 이처럼 한중일이 가까워질 수 있다. 북중러 3자가 공고해지는 것과 더불어 이 역시 한미일 삼각체제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11일 자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와야 다케시 외무대신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일한관계의 중요성은 변치 않는다"라고 확인했다. 한일관계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강조되겠지만, 한일관계의 현실은 앞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새로운 패권 전략에 재 뿌린 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