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1 10:53최종 업데이트 24.12.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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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인 7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권우성

지난 7일, 월요일부터 기말고사라는 딸아이는 책을 들고 여의도로 갔다. 바람이 거셌고 날은 차가웠으며 금방 어두워졌다. 무대에 설치된 영상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부결시키고 의사당을 빠져나가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란 주범 대통령을 지키려는 여당 의원들의 폭거에 80대 할머니, 아이를 안고 나온 젊은 부부, 하루 장사를 접고 왔다는 50대 자영업자와 기말고사를 앞두고 책을 들고 거리로 나선 딸아이의 기대가 짓밟혔다. 국민에게 총을 겨눈 대통령, 얼어붙은 겨울 거리로 나선 국민에게 찬물을 쏟아부은 국민의힘, 견디기 힘들고 견뎌서는 안 될 폭정과 만행의 연속이다.


대통령 탄핵 표결에 불참하고 도망가듯 했던 국민의힘이 다음 날인 8일 생뚱맞게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들고 나타났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주 1회 이상 회동을 정례화하고 수시로 소통하겠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러나 언제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 퇴진을 추진할 것인지, 야당과 대통령 퇴진이나 국정 현안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조차 없었다.

노태우 꿈꾸는 한동훈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법은 나라 질서의 규범이다. 내란과 외환의 죄는 대통령 면책특권조차 허용되지 않는 중범죄다. 수사당국의 체포와 수사, 입법부인 국회의 대통령 탄핵은 국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행위다. 그런데도 법질서 회복을 위한 탄핵 절차를 거부한 채 도망가듯 했던 집권 여당이 질서 있는 퇴진을 운운하다니 자가당착에 앞뒤가 맞지 않은 궤변이다.

탄핵과 빠른 수사, 처벌만큼 질서 있는 퇴진이 어디 있나. 야당이 여러 차례 지적했듯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나눠 행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위헌이고 내란에 버금가는 범죄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배제한 채 내놓은 정국 수습안만 해도 그렇다. 국회가 범죄자 집단 소굴이라던 대통령의 계엄 발표문처럼 야당에 대한 적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일부에서는 한동훈 대표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 주장을 두고 과거 박근혜 국정농단의 최순실 역할을 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최순실은 대통령 권한을 이용했지만 권력을 이양받아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한동훈 대표의 정치적 욕심은 최순실이 아니라 노태우의 탐욕에 가깝다. 윤 대통령의 절체절명 위기에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한 대표가 전두환의 위기를 이용해 기만적인 6.29 선언으로 권력을 이양받았던 노태우와 닮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계엄령으로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정권은 잡은 전두환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약속을 번복하고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던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4.13 호헌 조치에 성난 민심이 들불처럼 일어나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야당에 정권을 넘겨줄 것 같은 위기에 빠진 노태우는 6월 29일 전두환에게 ▲ 대통령 직선제 ▲ 양심수 사면 ▲ 언론자유 보장 등을 수용하지 않으면 당 대표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 전두환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고 노태우는 단번에 쿠데타 주역에서 정국 안정의 해결사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내란 주역 노태우는 전두환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훗날 6.29 선언은 직선제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두환과 노태우가 미리 기획한 '쇼'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사과 발표 이틀 만에 한동훈 대표는 국무총리와의 회동을 정례화해 국정 공백이 없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야당도 국회도 국민도 없는 사과에 권력만 주고받은 모양새다.

내란 주동자는 권력을 주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에 불참을 지휘했던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권한을 이어받아 국정을 수습할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1987년 6.29 선언에 나선 노태우 모습이 이랬다. 물론 대통령의 사과와 한동훈 대표의 담화가 짜여진 각본이라는 근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위기와 혼란을 이용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한 대표의 야심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민이 원하는 질서 있는 퇴진

9일 오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포위한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에 참석한 시민들이 ‘내란동조 국민의힘’ ‘내란수괴 윤석열’ 대형 현수막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권우성

"야당 의원들은 총칼, 군홧발 운운하며 탄핵을 선동하고 있다." - 나경원 의원
"현시점에서 이걸 내란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 강선영 의원
"윤석열 정부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고, 민주당이 얼마나 무도하게 굴고 있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계엄이라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 김민전 의원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이나 군의 책임자들이었다면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한 장관이나 군 장성들과 달랐을까 의문이 생긴다. 국민의힘이 7일 국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내란 옹호 정당임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비상계엄 해지 요구 의결을 위해 국회로 모여 달라는 국회의장의 간곡한 호소에도 당사에 모여 있던 의원들, 대통령 탄핵 투표에 도망가듯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의원들, 야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탓하며 내란을 두둔하는 의원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내란 동조 인사들이 모인 내란 옹호 정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이유만으로도 국민의힘은 정당으로서 대한민국에 존재할 이유를 상실했다.

그런데도 공공연하게 정권 재창출을 주장한다. 지난 7월 국민의힘 대표 경선 당시 한동훈 대표는 '잘해서 보수정권을 재창출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내란 사태를 겪은 지금 생각하면 '보수정권 재창출'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무서운 소리다.

국민에게 총을 겨누고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식의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야심은 반드시 막아야 할 그들만의 희망이다. 경제가 폭망하고 국격이 추락하고 국민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윤석열 정권 같은 정권이 또 만들어진다는 건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회귀로 가는 악몽이다.

대통령 퇴진 시점을 두고 2월 하야니 3월 하야니 하며 여당에서 갑론을박 중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꼴불견 장면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연계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성을 잃은 건 대통령만이 아니다.

국가의 위기를 이용해 법에도 없는 정국 안정 해결사, 통치 대리인을 자처하는 한동훈 대표, 일말의 반성도 없이 내란 정권을 옹호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계산기만 두드리는 국민의힘, 모두가 없어져야 할 구태들이다.

선거 자금 차떼기하다가 정당 문패를 바꾸고 국정농단 때문에 무릎 꿇어 회생했던 정당이 국민의힘이다. 그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으나 그들은 내란을 옹호하며 정권 재창출 계산만 하고 있다. 대통령은 탄핵되어야 하고 국민의힘은 해체되어야 한다. 이게 국민의 원하는 질서 있는 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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