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사회복지학부 이승윤 교수의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문학동네
액화노동은 중노동 대비 저임금임에도 고용이 불안한, 질적으로 형편없는 일자리가 다수다. 심지어 이런 나쁜 노동 조건 외에도 문제점이 또 있다. 산재다. 사망사고나 중상은 가끔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지 점잖게 직업병, 다른 말로 골병인 직업성 만성질환 산재는 아직 본격 논의가 되고 있지 않다. 기업도 굳이 추가 비용을 들일 생각이 없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기껏해야 1년에 30분도 안 걸려 끝나는 허술한 건강검진, 하루에 준비운동 몇 분(그조차 대부분 노동시간에 포함 안 시키는) 까딱거리는 수준에 그친다.
본문에서도 언급하는 급식 노동자들은 이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애초에 10년, 20년 동안 1인당 100명 넘는 학생의 밥을 지어왔다면 목, 허리, 어깨, 팔꿈치, 손목이 멀쩡할 리가 없다. 지금은 정년 퇴임한 내 선배 용접 노동자들도 대부분 폐질환을 달고 살았다.
노후를 아프게 보내야 하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비참할 노릇인데, 하필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나라다. 더군다나 액화노동의 특성상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국민연금조차 가입이 안 되어 있는 노동자가 많다. 가난해서 제대로 치료도 못 한 채 병을 방치하고 사는 노인이 얼마나 많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몸이 안 아플 수가 없을 지경으로 부려 먹히지만 그로 인해 얻은 병마는 오롯이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과거이자 현주소다.
2021년 무렵 재유행했던 청년담론엔 노동시장 경쟁에서 밀리면 누구라도 이런 액화노동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뒷배경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 또한 당시 코로나로 권고사직 당한 뒤 직장을 계속 옮겨 다녔던 액화노동 종사자로서 누군가 이 현실을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청년담론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자리를 두고 "어떤 경쟁 방식이 더 옳은가"로 흘러갔다. 먹고살기 바쁜 청년의 사정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청년이란 상징성마저 번듯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몫이었다. 과도한 스펙 경쟁을 비판했던 청년들의 유행어 '노오력'은 힘을 잃었고, 사회가 부조리한 탓에 발생하는 현상의 책임을 몽땅 개인 몫으로 돌리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이 유행어로 떠올랐다.
미디어로만 접했던 청년담론의 괴리를 현실에서 경험했던 적도 있었다. 제4차 청조위 회의 때였다. 총리와 장관들이 앉은 자리에서 모두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지방의 청년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대책을 말했다.
첫째는 임금 보전. 공장 다니는 청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기에 오래 일할 메리트를 못 느낀다. 이들을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인을 만들어 달라. 둘째는 직업 교육. '물경력'이 아니라 진짜 '숙련'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교육시설과 인력에 투자해달라. 이는 단지 노동자나 지역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처라고 생각했다.
내 다음 발언 차례였던 한 위원은 나와 비슷한 비수도권 거주 남성 청년이었다. 하지만 주장은 나와 거의 정반대였다. 요약하자면 "인재가 수도권으로 다 빠져나가는 마당에 최저임금까지 가파르게 올라 회사 운영이 힘드니 주휴수당이라도 폐지해달라"는 거였다. 대기업 하청 공장 사장님들에게서 많이 듣던 주장이었다.
문제의식 발견, 증명, 해결책까지

▲‘비정규직 격차 확대, 학교급식실 파탄 책임 윤석열 정부 퇴진 촉구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집단 삭발식’이 11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민주노총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권우성
세대, 성별, 지역이 엇비슷해도 계급 하나가 다르면 전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물론 창업이 지역 활성화의 핵심 키워드임을 안다. 최저임금 급상승에 골머리 앓는 사업가의 고충 또한 모르지 않는다. 다만 대한민국의 사회 안전망이 형편없다는 사실, 그래서 최저임금이 그 역할까지 도맡아야 하는 현실을 간과한 발언처럼 느껴졌다.
세대와 계급이 어긋난 이 장면은 당시 청조위 부위원장이었던 저자에게도 퍽 인상 깊었던 걸까. 그 잠깐의 장면이 책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자의 저력은 이 순간 느꼈던 생각을 그저 감상평에 머물지 않고 학술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청년들의 노동시장은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으며,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 또한 원활하지 않다"는 사실을 논문 '디지털 전환기 한국 청년 노동시장의 계층화'(2022)에서 논증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이처럼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증명하며, 나아가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사회복지학자 이승윤의 연구 궤적이다. 약자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게으른 기득권이 속 편히 쏟아내는 헛소리를 향한 비판, 동시에 그 기득권에 자신이 편입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경계하는 학자로서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쿠팡 배달, 학교 급식, 현대중공업 하청,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러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거쳐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청년담론을 회고하고 연구자로서 성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246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안에 담긴 고민의 밀도는 숨 막힐 정도다. 가슴 따뜻한 학자가 비정한 자본논리를 반론하려 집요하게 노력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상이 무시하고, 임금은 적은데, 쉴 시간도 없이 부려 먹히고, 그러다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자가 너무도 많은 이 사회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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