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4 06:50최종 업데이트 24.12.2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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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28일 충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도의회에 '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개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이재환

지난 10월 29일 충남도의회는 '충청남도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 조례안에 따르면 ▲도서 선정시 실무위원회의 심의를 거칠 것 ▲도서관장은 반국가적·반사회적·반인륜적인 내용의 자료가 반입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인권단체들은 국민의 알권리 침해이며, 검열을 정당화하는 정책이라 비판하며 조례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비판했다.

충청남도의 경우 김태흠 도지사가 취임한 이후부터 성평등도서에 대한 검열 및 폐기 사건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보수성향의 학부모 단체들이 충남 일대 공공도서관에 성평등·성교육 등을 주제로 한 어린이책에 대해 "폐기처분을 해달라"는 민원을 전방위적으로 제기해 논란이 되었으며, 심지어 몇몇 도서관은 해당 도서들을 서가에서 제외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태흠 도지사는 "7종 도서에 대해 도내 36개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했다"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보수성향학부모단체들이 폐기를 요구한 책들은 성교육이나 젠더·페미니즘 아동용 도서뿐 아니라 미국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의 생애를 다룬 <나는 반대합니다>(함께자람·교학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림책 <꽃할머니>(사계절) 등 여성가족부가 2019~2020년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지정한 도서들도 23권 포함돼 있다.

이들의 도를 넘는 문제제기와 검열요구 및 도서폐기가 도지사의 열람제한 지시 등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자 보수학부모단체는 전국적인 민원 조직 및 도서 퇴출 운동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 지방의회 의원들이 이들에 적극적으로 호응·협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지자체 중 경기도의 경우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라는 명목으로 2528권의 도서가 폐기 처리됐으며, 도서관 서가에서 1년 새 50여 권을 빼버린 학교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때 폐기된 책들 중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는 2013년 독일 올해의 과학도서상을 받은 성교육 책으로, 국내에 소개될 때 아동인권 전문가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감수를 거쳤다. <10대들을 위한 성교육>은 영국 교육전문지에서 올해의 지식상을 받았던 우수도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 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어린이 페미니즘 학교>와 국내 도서 전문 단체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된 <성교육 상식 사전>, <니 몸 ,네 맘 얼마나 아니>,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도 폐기 목록에 올라있다.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안녕, 내 이름은 페미니즘이야>도 학교 도서관에서 제적됐다.

경기도 학교도서관에서 폐기한 책들 중에는 성교육과 무관한 철학, 문학, 과학 분야 서적도 포함되어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같은 현대 문학작품이 성교육 도서로 분류있으며, 50만 부 넘게 팔린 정재승 교수의 학습동화 시리즈 중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편도 폐기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교조경기지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회견이민선

이렇듯 폐기한 도서관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도 제대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그래도 황폐한 성평등 교육을 더 후퇴시키려는 행동들로 많은 책들은 폐기됐으며, 또 서가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계속해서 이러한 시도들은 진행되고 있으며, 현장에 있는 사서 및 도서관 직원은 계속되는 민원 폭탄에 힘들어하고 있다.

독서의 자유를 빼앗는 나라

경기도 교육청이나 충남도청이 행하고 있는 도서 검열 및 폐기, 서가 제외 등은 모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문화검열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이러한 표현의 자유 침해사건으로 온 나라가 큰 난리를 겪기도 했다. 왜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예술 검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헌법에 명시된 시점부터 '표현의 자유'는 계속 수난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은 꾸준히 생긴다. 이번 성평등 도서에 대한 검열 역시 사회적 논의와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작동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수학부모 단체들은 열람제한을 요구하지만, 정작 문제 삼은 도서들이 어떤 문제인지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성평등·성교육 도서가 피임과 낙태를 조장한다고 하는데, 피임은 건강한 성관계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하고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공공도서관에서 삭제하는 것은 유네스코가 말하는 '포괄적 성교육'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성에 대해 감추고 숨기는 행위가 정말로 올바른 교육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 차별로 시작된 블랙리스트 사건의 결과물인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인 예술인권리보장법에는 '국가기관 등 소속 공무원 또는 예술지원기관의 임직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에서 차별행위를 할 목적으로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의 명단을 작성하거나 예술지원기관에 작성을 지시하여 이를 이용 또는 이용에 제공하거나 이를 제공 받아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국가기관 등 예술지원기관 및 예술사업자는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예술인의 권리를 글로써 적어뒀다. 이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에서 작성해 배포하고 도서관이 실행한 도서 폐기 및 서가 제외 사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위배하는 행위이다.

위에 언급한 예술인권리보장법 혹은 헌법 2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기도교육청이 제외한 책들이 정말 학생 및 청소년들에게 문제가 있는 책들일까? 경기도 및 충청남도가 제외한 책들은 성교육 및 성평등, 성적 지향과 관련된 도서들이며,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도서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

문제가 제기된 책들은 모두 도서관 전문 인력인 사서들에 의해 선정되고 관리되는 책들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없이 전국의 도서관에서 대출되고 있는 도서로 사회적 공동의 가치와 유익을 훼손한다고 볼 수 없는 책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유해도서라고 명하고 접근 제한을 요구하는 행위는 결국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도서관과 사서에게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윤석열은 박근혜 탄핵의 단초가 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사로 인기를 높여 집권했다. 그럼에도 검열사건은 계속되고 있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의 문화예술탄압은 경고, 예산·보조금 삭감 혹은 폐지, 고소, 행사 중단, 기습 철거 등 갖은 방법으로 입막음 하려 한다. 문화예술이 생산하고 더 다양한 예술이 퍼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대신 제도화된 검열과 경쟁·성과주의적 문화 정책 집행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정부가 온갖 방식으로 문화예술계에 탄압과 차별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대대적인 검열사건들은 그 어떤 견제 도 받지 않는다.

특히, 이를 관리하고 예술인들의 권리침해를 처벌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는 모른체하고 있다. 결국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평등도서 검열 및 폐기 사건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도 공범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경기도 도서관에서 폐기한 작품 중 하나인 한강의 <채식주의자>창비

이번 경기도 도서관에서 폐기한 작품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은 지난 6일 노벨상 수상 기념기자회견에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진시황의 시대에서 통용된 분서행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대로 끝나선 안된다. 원상복구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검열에 참여한 모두는 사과하고 처벌 받아야 한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자면 문학은 그리고 문화는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 문학과 문화가 검열당하고 위축되고 있다. 자유를 그렇게 중시하던 대통령의 말로처럼 자유를 훼손한 모두가 처벌받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이두찬 '블랙리스트 이후'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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