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전교조경기지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회견
이민선
이렇듯 폐기한 도서관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도 제대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그래도 황폐한 성평등 교육을 더 후퇴시키려는 행동들로 많은 책들은 폐기됐으며, 또 서가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계속해서 이러한 시도들은 진행되고 있으며, 현장에 있는 사서 및 도서관 직원은 계속되는 민원 폭탄에 힘들어하고 있다.
독서의 자유를 빼앗는 나라
경기도 교육청이나 충남도청이 행하고 있는 도서 검열 및 폐기, 서가 제외 등은 모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문화검열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이러한 표현의 자유 침해사건으로 온 나라가 큰 난리를 겪기도 했다. 왜 정부와 지자체는 문화예술 검열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헌법에 명시된 시점부터 '표현의 자유'는 계속 수난 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은 꾸준히 생긴다. 이번 성평등 도서에 대한 검열 역시 사회적 논의와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작동원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수학부모 단체들은 열람제한을 요구하지만, 정작 문제 삼은 도서들이 어떤 문제인지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성평등·성교육 도서가 피임과 낙태를 조장한다고 하는데, 피임은 건강한 성관계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하고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공공도서관에서 삭제하는 것은 유네스코가 말하는 '포괄적 성교육'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성에 대해 감추고 숨기는 행위가 정말로 올바른 교육인지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 차별로 시작된 블랙리스트 사건의 결과물인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인 예술인권리보장법에는 '국가기관 등 소속 공무원 또는 예술지원기관의 임직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에서 차별행위를 할 목적으로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의 명단을 작성하거나 예술지원기관에 작성을 지시하여 이를 이용 또는 이용에 제공하거나 이를 제공 받아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국가기관 등 예술지원기관 및 예술사업자는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예술인의 권리를 글로써 적어뒀다. 이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에서 작성해 배포하고 도서관이 실행한 도서 폐기 및 서가 제외 사건은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위배하는 행위이다.
위에 언급한 예술인권리보장법 혹은 헌법 2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기도교육청이 제외한 책들이 정말 학생 및 청소년들에게 문제가 있는 책들일까? 경기도 및 충청남도가 제외한 책들은 성교육 및 성평등, 성적 지향과 관련된 도서들이며,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도서들이다. 도대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
문제가 제기된 책들은 모두 도서관 전문 인력인 사서들에 의해 선정되고 관리되는 책들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없이 전국의 도서관에서 대출되고 있는 도서로 사회적 공동의 가치와 유익을 훼손한다고 볼 수 없는 책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유해도서라고 명하고 접근 제한을 요구하는 행위는 결국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도서관과 사서에게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윤석열은 박근혜 탄핵의 단초가 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사로 인기를 높여 집권했다. 그럼에도 검열사건은 계속되고 있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하고 있다. 지금의 문화예술탄압은 경고, 예산·보조금 삭감 혹은 폐지, 고소, 행사 중단, 기습 철거 등 갖은 방법으로 입막음 하려 한다. 문화예술이 생산하고 더 다양한 예술이 퍼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대신 제도화된 검열과 경쟁·성과주의적 문화 정책 집행이 자리 잡고 있다. 중앙정부가 온갖 방식으로 문화예술계에 탄압과 차별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의 대대적인 검열사건들은 그 어떤 견제 도 받지 않는다.
특히, 이를 관리하고 예술인들의 권리침해를 처벌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는 모른체하고 있다. 결국 각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평등도서 검열 및 폐기 사건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도 공범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경기도 도서관에서 폐기한 작품 중 하나인 한강의 <채식주의자>
창비
이번 경기도 도서관에서 폐기한 작품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은 지난 6일 노벨상 수상 기념기자회견에서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진시황의 시대에서 통용된 분서행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대로 끝나선 안된다. 원상복구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며, 검열에 참여한 모두는 사과하고 처벌 받아야 한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빌려 말하자면 문학은 그리고 문화는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 문학과 문화가 검열당하고 위축되고 있다. 자유를 그렇게 중시하던 대통령의 말로처럼 자유를 훼손한 모두가 처벌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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