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하던 중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표결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남소연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의 학자들 역시 자신들이 믿었던 정치가 완전히 실종되는 모습을 보며 그 충격을 여러 경로로 표현하려 애썼다. 특히 몇몇 정치철학자들은 당대의 현상을 니체의 허무주의(nihilism)를 빌려와 분석한 바 있다. 여기서 허무주의는 이 삶이, 또는 이 세상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니체가 설명하려고 했던 것은 단지 그런 허탈감이 아니라, 한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들이 터무니없이 손상되어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 버리는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견뎌내고 있는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자유, 공정, 정의, 민주주의, 또는 헌법과 같은 우리 사회의 최상위 가치들이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고 그 의미를 타락시키고 있는 상황 말이다. 예컨대, '공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반복해서 회자되지만, 그 의미는 그저 우스꽝스러우며 결코 현실 속에서 증명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고,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를 판별하지 못한 채 헛된 이야기에 빠져든다. 심지어 '지도자'조차 스스로 현혹되고, 동시에 우리를 현혹한다. 정치를 정치로서 기능하게 하는 고결한 가치들은 야만적 권력욕과 경제적 이득 앞에서 철저하게 힘을 잃고 고꾸라진다. 이것이 바로 저열함과 퇴행으로 설명되는 허무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껍데기들이 판을 치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윤석열을 단죄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힘들게 일구어낸 핵심 가치들을 되살려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껍데기는 가라"고 외쳐야 한다. 공정, 정의, 평등, 자유와 같은 기초적 가치들이 정치 기술자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회, 우리 삶을 지탱해야 할 핵심 가치의 진정한 의미가 긍정되고 실현되는 사회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내란이라는 중범죄 앞에서도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기득권의 민낯을 또렷하게 보지 않았는가?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쇄신하지 않을 것이므로 현 시국을 사회 변혁의 기회로 바꿔낼 것은 오직 민초들뿐이다.
우리가 원한다면 이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의 시간이다. 당연히 이럴 때일수록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운동의 에너지가 중요하다. 거리로 나올 것을 호소하는 각계의 입장문들이 요구하는 세상이 바로 그런 변혁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노동자, 장애인·농인, 성소수자, 여성 단체들의 재빠른 입장문들을 본다. 단순히 윤석열 탄핵을 넘어 이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외침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회운동은 변혁의 이상을 함께 만들어왔으며, 우리 모두는 이미 끈질기게 거리로 나갈 것을 결의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되살릴 것이다. 이제 민중들의 시간이다! 껍데기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