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의 역사적 트라우마
해방 이후 비상계엄은 여러 번 선포되었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여수·순천사건, 4·3항쟁, 6.25전쟁, 부산정치파동, 4·19혁명 시에 선포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5·16군사정변, 6·3항쟁, 10월유신, 부마민주항쟁, 10·26사건 당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던 이상의 사건들은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는데, 그중 비교적 지금과 가까운 두 사건만을 되짚어보자.
우선 1972년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채 10월유신을 감행했다. 유신체제 구축 당시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7년여 간에 걸쳐 진행된 유신독재는 수많은 고통과 피해를 낳았다. 긴급조치를 통한 탄압,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한 전격적인 사형, YH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직 박탈과 의원직 제명, 그리고 부마민주항쟁과 10·26으로 인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등등이 그것이었다.
다음으로 1979년 10·26사건으로 인한 비상계엄 선포는 이후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이는 <서울의 봄>으로 영화화되었다)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드리우고 있다(노벨상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지금도 그 고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또한 그 결과로써 우리는 8년에 걸쳐 전두환 정권의 독재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과 더불어 불과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왜곡된 인식과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시민들과 보좌관, 계엄 해제를 결정한 국회의원, 그리고 방송과 영상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주시하며 감시했던 국민들은 침착하게 이를 막아냈다.
희극으로 끝난 비상계엄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나폴레옹 1세와 이후 나폴레옹 3세가 황제로 등극함으로써 공화국이 붕괴하자, 마르크스는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의 과거 비상계엄은 참혹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그것은 짧은 희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수호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에게 취임 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할" 것을 선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가장 우선적인 역할로서 헌법 수호를 새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윤 대통령의 무모한 비상계엄 선포는 그동안 어렵사리 발전해 왔던 우리의 헌정질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갈등과 전쟁 그리고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