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6 06:48최종 업데이트 24.12.06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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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말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3일 늦은 저녁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했던 비상계엄이야말로 바로 그것이었다.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등등의 국민 반응은 이 사태가 얼마나 황당했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선 윤 대통령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비상계엄 선포 전문을 살펴보자. 선포문에서 윤 대통령은 사법 업무와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한편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국회, 특히 민주당의 행위를 반국가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요약건대, 국회와 야당을 북한 공산세력에 동조하는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였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종북으로 몰아 처벌했던 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 오래된 지금 국회와 야당의 활동조차 반국가세력의 체제 전복 행위로 이해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망상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자유는 사실 민주주의의 자유가 아니고, 비판자나 정적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유였다. 게다가 명태균 사건으로 곧 드러날지도 모를 자신과 김건희 여사 문제가 상황을 더욱 압박한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통령의 그러한 인식과 상황이 비상계엄 선포라는 극단적인 행위로 이어지리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거의 40여 년이 지난 지금, 비상계엄이라는 과거의 흉기가 이렇게 동원될 것이라 누가 짐작했겠나? 그러나 비현실적인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의 역사적 트라우마

해방 이후 비상계엄은 여러 번 선포되었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여수·순천사건, 4·3항쟁, 6.25전쟁, 부산정치파동, 4·19혁명 시에 선포되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5·16군사정변, 6·3항쟁, 10월유신, 부마민주항쟁, 10·26사건 당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던 이상의 사건들은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는데, 그중 비교적 지금과 가까운 두 사건만을 되짚어보자.

우선 1972년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채 10월유신을 감행했다. 유신체제 구축 당시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7년여 간에 걸쳐 진행된 유신독재는 수많은 고통과 피해를 낳았다. 긴급조치를 통한 탄압,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한 전격적인 사형, YH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직 박탈과 의원직 제명, 그리고 부마민주항쟁과 10·26으로 인한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등등이 그것이었다.

다음으로 1979년 10·26사건으로 인한 비상계엄 선포는 이후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군사쿠데타(이는 <서울의 봄>으로 영화화되었다)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드리우고 있다(노벨상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지금도 그 고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또한 그 결과로써 우리는 8년에 걸쳐 전두환 정권의 독재 속에서 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정과 더불어 불과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왜곡된 인식과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시민들과 보좌관, 계엄 해제를 결정한 국회의원, 그리고 방송과 영상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주시하며 감시했던 국민들은 침착하게 이를 막아냈다.

희극으로 끝난 비상계엄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나폴레옹 1세와 이후 나폴레옹 3세가 황제로 등극함으로써 공화국이 붕괴하자, 마르크스는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의 과거 비상계엄은 참혹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그것은 짧은 희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수호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에게 취임 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할" 것을 선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가장 우선적인 역할로서 헌법 수호를 새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윤 대통령의 무모한 비상계엄 선포는 그동안 어렵사리 발전해 왔던 우리의 헌정질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갈등과 전쟁 그리고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시민촛불’ 집회가 4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다.권우성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반민주적 폭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분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우선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로 정해진 그 요건이나 절차를 제대로 따랐는지, 그 모든 내용을 탄핵 절차를 통해 낱낱이 밝혀야 한다.

다음으로 이번 윤 대통령의 계엄령이 국헌 문란의 내란 행위에 해당하는지 역시 밝혀야 한다.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지만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예외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의 내란 여부는 분명하게 파악해야 하며, 그것이 내란 행위일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위 두 가지가 그동안 국민의 피와 땀으로 쌓아온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일차적인 조처이다.

현명하고 단호한 선택이 필요한 때

물론 탄핵 추진과 내란죄 조사는 대통령 임기 중단과 같은 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따라서 이에 정부 여당이 적극 저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대규모 국민적 항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국민적 항쟁을 통해 한 단계씩 도약해 왔다. 그런 점에서 정부 여당, 특히 한동훈 대표를 위시한 국민의힘은 현명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민주 폭거에 편승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 발전의 거대한 물결에 동참할 것인지를 말이다.

나아가 우리가 이번 민주주의 위기 사태를 제대로 극복한다면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 선출과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의 새로운 시대 개막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위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기회이다. 어렵사리 민주주의와 경제의 발전을 이룩해온 우리지만, 최근 국내외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제반 환경의 변화는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의 불안을 미래의 희망으로 만들 수 있는 국민적 역량을 지니고 있다. 이제 그 역량을 발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정해구 /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정해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해구는 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정치학 전공 교수로서,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입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과 국무총리 소속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로서 한국 정치 및 대전환기 미래 정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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