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4 08:48최종 업데이트 24.12.0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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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들이 떠 있다.연합뉴스

무장한 계엄군이 창문을 깨트리며 국회 건물에 진입하고 헬기가 국회 상공을 날고 탱크가 서울 도심에 출현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귀환을 떠올리게 할 만했다.

약 여섯시간 만인 4일 오전 4시 27분경 계엄 해제가 선언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윤석열발 비상계엄으로 인해 바짝 긴장했다. 1979년 10·26사태 다음날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는 45년 만이고, 1980년 5월 17일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부터는 44년 만의 일이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의 핵심 사유는 탄핵 및 예산 정국이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반경 긴급 대국민담화에서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뒤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라며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가 없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상태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국회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비난했다.

그런 사유들을 내세우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헌법 제77조 제1항)에나 발포되는 비상계엄을 그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선포했다.

위 조문을 구체화한 계엄법 제2조 제2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지금 상황이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헌·위법 여하를 떠나 너무 뜬금없는 계엄 선포다.

계엄법 제7조는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법 사무를 관장하는 것은 비상계엄, 군사에 관한 행정·사법 사무만 관장하는 것은 경비계엄이라고 구분한다. 1949년 11월 24일 제정된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계엄법도 그렇게 구분했다.

1972년의 비상계엄과 유사

경비계엄까지 포함한 정부수립 이후의 계엄은 이번 계엄 이전까지 총 16건이었다. 사실상 별도의 비상계엄으로 볼 수 있는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독립시키면 총 17건이 된다. 이 17건 중에서 국가비상사태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포된 것은 1972년 10월 17일의 비상계엄이다.

나머지 16차례의 계엄은 여순항쟁, 제주4·3항쟁, 한국전쟁(6건), 4·19혁명(2건), 5·16 쿠데타(2건), 한일협정 반대시위, 부마항쟁, 10·26사태, 1980년 서울의 봄을 배경으로 선포됐다. 명분이 정당하든 않든 이 16건은 독재정권이 나라 안이나 밖으로부터 물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발포됐다.

이와 달리 유신체제 선포와 함께 발포된 1972년의 비상계엄은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돌출했다. 온 나라를 통일의 희망으로 들뜨게 만든 7·4남북공동성명으로부터 불과 석 달 뒤의 일이었다.

야권이 정권을 압박하고 촛불집회가 열리고 시국선언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2024년 지금의 상황은 헌법 제77조와 계엄법에 규정된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심란할지 몰라도 객관적인 상황은 국가비상사태와 거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1972년에 가장 근접한 것은 이번 사례다.

3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황당한 말들을 했다. 국회가 마약단속 예산을 포함한 주요 예산을 삭감해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상태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야당의 압박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있다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는 말도 했다.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이 절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발언도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했다. 대한민국 붕괴 혹은 멸망을 운운하는 말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도 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1972년 계엄 선포 당시의 박정희도 정도의 차이는 있고 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황당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많이 했다. 그는 유신체제 및 비상계엄 선포의 근거를 세계대전이 아닌 세계 데탕트에서 찾았다.

미·소 어느 쪽에도 가세하지 않는 제3세계의 비동맹운동이 1950년대 중반부터 냉전체제에 생채기를 냈다. 1964년 8월부터 베트남전쟁(월남전)에 전면 개입한 미국이 1968년 1월부터 패전의 징후를 보인 것도 냉전질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통령직 수행할 자격 있나

국회 당직자와 보좌관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추가 대국민담화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유성호

이런 상황들이 어우러져 1969년 7월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 한발 물러서게 됐다. 이로 인해 냉전의 해빙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데탕트라는 화해 분위기가 확산됐다.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이 화해를 모색하고 남북한까지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상황이 출현했다.

이런 정세를 박정희는 비상계엄 선포의 요건으로 해석했다. 데탕트로 인한 긴장완화가 한민족을 어떤 운명으로 끌고 갈지 모른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3선 개헌 반대투쟁으로 발생한 리더십 위기를 해결하고자 억지 논리까지 내세웠던 것이다.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명명된 1972년 대국민담화에서 그는 "긴장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 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변화가 우리의 안전보장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위험스러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국제정세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면서 또한 남북대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해 나아가 할 중대한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데탕트 시대에 적응하자면 북한과의 대화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런 뒤 윤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국회를 비난했다. "민족적 사명감을 저버린 무책임한 정당과 그 정략의 희생물이 되어온 대의기구"라는 말로 국민대표자들을 폄하했다. 국회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므로 행정부가 남북대화를 잘 해내려면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궤변을 동원해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비상계엄 사유는 박정희가 제시한 사유만큼 황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금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라는 점은 납득시키지 못했다. 비상계엄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평화 시국에 그는 뚱딴지같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과 거리가 먼 시국을 배경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그의 계엄 선포는 박정희의 유신 선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지금 상황이 유례가 없다'는 메시지를 두 번이 강조했다. 그의 계엄 선포는 1972년 계엄 선포를 연상케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계엄 선포는 '유례 있는' 계엄 선포다.

군대를 동원해 적국을 상대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상대하는 것은 계엄이다. 계엄 중에서도 비상계엄은 매우 강력하고 위험해 국민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칼'이다. 그런 칼을 심야에 아무렇게나 휘두르다가 거둬들이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을 수행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를 의심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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