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들이 떠 있다.
연합뉴스
무장한 계엄군이 창문을 깨트리며 국회 건물에 진입하고 헬기가 국회 상공을 날고 탱크가 서울 도심에 출현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귀환을 떠올리게 할 만했다.
약 여섯시간 만인 4일 오전 4시 27분경 계엄 해제가 선언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윤석열발 비상계엄으로 인해 바짝 긴장했다. 1979년 10·26사태 다음날의 비상계엄 선포로부터는 45년 만이고, 1980년 5월 17일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부터는 44년 만의 일이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의 핵심 사유는 탄핵 및 예산 정국이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반경 긴급 대국민담화에서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뒤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라며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가 없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상태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국회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비난했다.
그런 사유들을 내세우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헌법 제77조 제1항)에나 발포되는 비상계엄을 그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선포했다.
위 조문을 구체화한 계엄법 제2조 제2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지금 상황이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위헌·위법 여하를 떠나 너무 뜬금없는 계엄 선포다.
계엄법 제7조는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법 사무를 관장하는 것은 비상계엄, 군사에 관한 행정·사법 사무만 관장하는 것은 경비계엄이라고 구분한다. 1949년 11월 24일 제정된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계엄법도 그렇게 구분했다.
1972년의 비상계엄과 유사
경비계엄까지 포함한 정부수립 이후의 계엄은 이번 계엄 이전까지 총 16건이었다. 사실상 별도의 비상계엄으로 볼 수 있는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를 독립시키면 총 17건이 된다. 이 17건 중에서 국가비상사태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포된 것은 1972년 10월 17일의 비상계엄이다.
나머지 16차례의 계엄은 여순항쟁, 제주4·3항쟁, 한국전쟁(6건), 4·19혁명(2건), 5·16 쿠데타(2건), 한일협정 반대시위, 부마항쟁, 10·26사태, 1980년 서울의 봄을 배경으로 선포됐다. 명분이 정당하든 않든 이 16건은 독재정권이 나라 안이나 밖으로부터 물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발포됐다.
이와 달리 유신체제 선포와 함께 발포된 1972년의 비상계엄은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돌출했다. 온 나라를 통일의 희망으로 들뜨게 만든 7·4남북공동성명으로부터 불과 석 달 뒤의 일이었다.
야권이 정권을 압박하고 촛불집회가 열리고 시국선언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2024년 지금의 상황은 헌법 제77조와 계엄법에 규정된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심란할지 몰라도 객관적인 상황은 국가비상사태와 거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1972년에 가장 근접한 것은 이번 사례다.
3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황당한 말들을 했다. 국회가 마약단속 예산을 포함한 주요 예산을 삭감해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상태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야당의 압박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있다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는 말도 했다.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이 절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발언도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했다. 대한민국 붕괴 혹은 멸망을 운운하는 말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도 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1972년 계엄 선포 당시의 박정희도 정도의 차이는 있고 질적인 차이는 있지만 황당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많이 했다. 그는 유신체제 및 비상계엄 선포의 근거를 세계대전이 아닌 세계 데탕트에서 찾았다.
미·소 어느 쪽에도 가세하지 않는 제3세계의 비동맹운동이 1950년대 중반부터 냉전체제에 생채기를 냈다. 1964년 8월부터 베트남전쟁(월남전)에 전면 개입한 미국이 1968년 1월부터 패전의 징후를 보인 것도 냉전질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통령직 수행할 자격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