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8 12:31최종 업데이트 24.12.0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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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방첩사령부국방부

국군방첩사령부(구 기무사령부)가 2023년 7월 25일 국회 '군무원의 국민 기본권 보장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군무원 A씨를 보복성으로 표적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23년 6월 2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생소한 청원 하나가 게시되었다. '군무원의 국민 기본권 보장 및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에 관한 청원'이었다. 군인도, 공무원도 아닌 '군무원'의 존재에 대해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군무원은 군대에서 근무하는 민간인 전문 인력을 통칭하는 특정직 공무원으로 총원은 4만 명을 웃돈다. 기술, 행정 등 군대 내 비전투 분야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의 처우는 '민간 전문 인력'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군인들의 처우도 엉망이라지만, 군무원은 그보다 더하다.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지나 지원 혜택이 대체로 적용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해 전부터는 군 곳곳에서 군무원들에게 군인의 업무를 떠넘기는 현상도 확인된다. 군인 간부 충원율이 갈수록 떨어지니 빈자리에 군무원들을 땜질하듯 집어넣는 식이다. 지휘권도 없는 군무원에게 당직 근무를 맡기는가 하면, 위병소 조장을 맡기기도 한다.

평상시에야 별문제 없을 수 있겠으나,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당직, 위병 근무에 투입된 군무원들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인 군무원은 국제법, 국내법 상으로 총기 등 살상용 무기를 사용할 수 없는데, 일부 부대에서 군무원도 사격 훈련에 참여하라고 압박을 가하다 문제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이 밖에도 군무원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평정, 진급, 채용 등에 이르기까지 한둘이 아니지만 늘 정책 결정권자의 관심 밖이었다.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고, 존재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신분은 민간인이지만 군인 신분에 준하여 군인의 통제를 받는 위치에 놓여있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라 국민동의청원 제기

국회에 청원을 제기한 A씨는 속칭 '군무원 3법'의 통과를 청원했다. 청원의 구체적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민간인인 군무원을 군인과 사실상 똑같이 취급하고 있는 불합리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개정해 법의 적용 범위에서 군무원을 삭제해 줄 것이었고, 둘째는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 민간인인 군무원을 '군형법' 적용 대상자에서 제외해 줄 것이었다.

군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엄연히 군인과 신분이 다른 군무원을 군인의 지위와 복무를 규정한 법 안에 끼워팔기 식으로 넣어둔 것은 문제다. 일반, 경찰, 소방, 교육 등 여타 공무원들은 모두 각자의 지위를 규정하는 법률을 갖고 있다. 법률 간에 유사한 지점이 있더라도 각기 다른 공무원들을 성격에 따라 별도의 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군무원은 그러한 법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우리 군이 군인과 군무원을 모든 면에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처우도 다를뿐더러, 군의 필요에 따라 인사 제도를 규율하는 법은 '군인사법'이 있음에도 '군무원인사법'을 따로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민간 전문 인력인 군무원을 전시가 아닌 평시에 일괄 '군형법'의 적용을 받게 하는 것도 문제다. '군형법'은 대상자가 군인이라는 이유로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별도 적용되는 형법 규정이기도 하지만, 민간인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인정되는 일부 조항의 경우 민간인에게도 적용된다.

민간인 신분인 군무원을 일괄 군형법 적용 대상자로 분류해 두지 않더라도, 군에서 근무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보안, 군용물 관련 범죄 혐의는 충분히 군형법으로 의율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군무원들을 군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취급해 온 오랜 역사적 연원 속에 편의와 관례에 따라 군무원의 지위를 고민해 두지 않은 입법자의 게으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셋째는 타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군무원도 직장협의회 설립·가입을 허용해달라는 점이었다. 군무원들은 아무리 애로사항이 많아도 군의 통제와 평가 체계하에 있다 보니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어려운 형국이다. 때문에 일반, 경찰, 소방 등이 갖추고 있는 직장협의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근무상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군무원들의 요구 중에 급진적이거나 검토조차 해보기 어려운 사안은 상식적으로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청원은 2023년 7월 25일에 이르러 국민동의청원 성사 요건인 청원인 5만 명에 도달하여 국회 국방위원회로 회부되었다. 그만큼 군무원 당사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절박했고, 시민들의 공감대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 자체는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채 폐기되었으나, 청원 이후 국회에서 2023년도 국정감사 등을 통해 그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군무원 처우 개선과 관련한 논의가 여러 차례 오가기 시작하며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었다.

청원을 제기한 A씨는 평소 다른 군무원들과 교류하며 군무원 처우 개선 소요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모든 국민은 청원할 권리를 갖는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용기를 내 국민동의청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입 틀어막기 위해 정보기관까지 동원

그리고 1년이 지난 2024년 6월 13일, 방첩사령부 수사관들이 돌연 A씨의 사무실을 찾아와 압수수색 영장을 내밀었다. 수사관들은 A씨가 '군 간부, 군무원 아이폰 사용 금지 계획 문건'을 군 외부로 유출했다고 의심하면서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누설죄에 해당한다며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갔다.

당시 군에서는 군용 스마트폰 보안앱(녹음, 카메라 등 스마트폰 기능 차단 앱)이 아이폰 등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 간부들과 군무원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무에 스마트폰이 활용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미 사용 중인 기기를 사비로 변경하라는 조치에 군 간부들과 군무원의 불만이 많았다.

이러한 조치는 올해 초부터 언론에 다수 보도가 되었고, 각 언론사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익명의 인터뷰를 따냈다. 실제 올해 10월 1일부터는 군사 보안구역 내에서 아이폰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고 실시에 즈음하여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다.

아이폰에서 보안앱의 녹음 차단 등 일부 기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군에 보안앱이 도입될 때부터 확인된 사실로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기도 했다. 즉, 보안앱 구동 문제로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다는 건 누설되면 군사상 타격을 줄 수 있는 '군사기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군 내에 잠입한 간첩을 잡아야 할 방첩사가 이런 문건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혐의를 들고 압수수색까지 실시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방첩사는 수사 개시 이래 A씨가 문건을 유출했다는 물증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압수수색 결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아이폰 사용 금지 문건과 관련한 여러 언론사의 보도에 등장하는 군 관계자가 다수인데 유독 군무원 처우 개선 청원을 제기한 A씨를 표적 수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결국 보복성 표적 수사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방첩사는 A씨가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려워지자 최근 불특정 다수의 군무원들을 찾아다니며 A씨를 아는지, A씨와 연락한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무슨 대화를 했는지 탐문하고 다닌다고 한다. 평소 군무원들과 교류하며 군무원 처우와 관련한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는 점을 이용해 A씨가 혹시 문제가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문건을 유출한 정황은 없는지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방첩사는 군 내에 침투한 간첩을 잡고 군부 쿠데타를 방지할 목적으로 운용되는 군 정보기관이다. 간첩을 잡으라고 만든 부대가 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형성될 소지가 있는 문건을 언론에 제보한 사람을 색출하겠다며 역량을 쏟는 기막힌 행태를 보니 이들의 전신인 보안사, 기무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생각보다, 그 입을 틀어막기 위해 정보기관까지 동원하는 행태가 기막힐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켜켜이 쌓인 불만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당장 입을 막고, 협박해서 불만을 수면 밑으로 내려보낼 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 스스로 군무원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말은 뻔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사람이 떠나는 군을 만드는 일만큼 분명한 이적행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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