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6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첨예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정부 역할은 갈등을 중재하고 절충점을 찾아서, 갈등으로 야기되는 국민 피해와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였다.
정부 정책이 이해집단의 동의를 전제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침해하는 정책은 해당 집단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의료대란을 둘러싼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조장'되고, '증폭'되었다.
2월 초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 발표 직후 비교적 조용하게 반발하던 의사들을 들끓게 만든 도화선은 정부의 잇따른 위압적 언행이었다. 의사들에 대한 사전 설득 과정은 없다시피 했고, 의사면허 박탈 방침, 의료계 압수수색, 집단행동 금지 및 업무 유지명령, 학생 휴학 및 전공의 사직 불허 등 강경책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미 돈 잘 벌고 있는 의사들이 탐욕스럽게 밥그릇 지키기를 한다는 도덕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개인과 집단을 상대로 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절제되고 적법해야 한다. 설사 그 개인과 집단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일지라도. 한 집단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공권력 남용의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정부의 손아귀에 백지수표를 쥐어주는 것이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서 윤석열 정부는 법이 허용한 재량의 범위를 넘어,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조치들을 남용했다. 아직까지도 영문을 알 수 없는 '2천 명'에 대한 집착을 관철하기 위해, 정부는 온갖 강압적 조치를 강행했고, 그 결과, 일부 의사들의 선도적인 반발은 전체 의사들의 투쟁으로 변모되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의사들이 돌아올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강경 입장을 고수했지만, 교수를 비롯한 적지 않은 기성 의사들, 특히 병원 봉직의들은 어느 정도의 의대 정원 확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적절하게 절충해서 의료대란 사태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희망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대국민 담화에서 한 치의 타협 없이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를 밀고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천명되었다. 전공의들이 오로지 미래 수입 감소 때문에 집단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공의를 인질범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 대표들이 대외적으로 강경 발언을 이어갔지만, 휴학계와 사직서를 낸 대다수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학교와 병원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사태가 수습되면, 학교와 병원으로 빨리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통령 담화 이후, 이들은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남자 의대생들은 현역으로 군 입대를 했다. SNS 단체방에서의 대화와 토론도 사라졌다.
조속한 사태 수습으로 예전의 일상적인 진료가 회복되길 희망했던 국민과 대다수 의사들의 바람은 대통령에 의해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접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학교와 병원에 돌아올 마음을 접었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으로 돌아올 다리는 대통령에 의해 불살라졌다.
의료대란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