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5 20:30최종 업데이트 24.12.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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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에 대비해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지난 2월 20일 오후 의료진들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로 민간인 환자를 옮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비상계엄과 의료대란의 출발과 결말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군을 동원했다. 적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로 하여금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했다. 국민의 안전과 일상을 위협했고, 국가안보의 공백을 야기했다. 국가 경제와 대외 이미지에 치명상을 안겼고, 세계의 모범이었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렸다. 본인의 정치적 생명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파국적 결말이다. 의료대란도 비상계엄 사태의 판박이였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 발표는 정책적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노린 정치행위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국민 다수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 필요했다.


국민 다수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고, 기득권이 강하게 반발하는 아이템이면 금상첨화다. 기득권의 반발을 제압하며 그 아이템을 관철하면, 국민의 박수는 곱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는 이런 조건에 딱 들어맞는 아이템이었을 뿐이다. 일을 벌이고 나서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애초의 출발 자체가 의료를 개혁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의료대란이었다.

환자는 10년을 기다릴 수 없다

시민들이 4월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유성호

윤석열 정부는 총선 직후인 4월 말까지 속전속결로 의대 정원 확대를 확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이지도 않고, 투쟁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겠다는 전공의들의 탕핑(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 전략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강경진압을 통해 기득권 세력을 부러뜨려야 하는데, 부러뜨릴 타깃과 명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정부와 의사들은 지루한 소모전을 이어가고 있다.

두 집단은 자신들의 행위가 '환자를 위해서'라고 강변하지만, 정작 이들의 안중에 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덜어줄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은 없었다. 온전히 가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아이를 둘로 나눠 달라는 솔로몬 재판의 가짜 어미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의료개혁을 완수해서 미래의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는 정부 설명은 환자와 가족들의 염장만 지른다.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의사가 배출되기까지 빨라도 10년 후다. 2024년의 환자가 2034년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정부 공직자나 전문가들은 "대형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던 환자들이 중소형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정상화된 측면도 있다"는 철없는 말을 한다. 굳이 대형병원에 올 필요가 없었던 환자들이 중소형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지만, 꼭 대형병원 진료가 필요한 신규 중증환자도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선천성 뇌혈관 질환을 앓던 10대 학생이 응급실을 찾다가 억울하게 사망했다. 신규 중증환자의 생명을 제물로 삼은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는 '정상화'가 아니다.

정부가 의료대란을 조장하고 증폭시켰다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6월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이정민

첨예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정부 역할은 갈등을 중재하고 절충점을 찾아서, 갈등으로 야기되는 국민 피해와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였다.

정부 정책이 이해집단의 동의를 전제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침해하는 정책은 해당 집단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의료대란을 둘러싼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조장'되고, '증폭'되었다.

2월 초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 발표 직후 비교적 조용하게 반발하던 의사들을 들끓게 만든 도화선은 정부의 잇따른 위압적 언행이었다. 의사들에 대한 사전 설득 과정은 없다시피 했고, 의사면허 박탈 방침, 의료계 압수수색, 집단행동 금지 및 업무 유지명령, 학생 휴학 및 전공의 사직 불허 등 강경책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미 돈 잘 벌고 있는 의사들이 탐욕스럽게 밥그릇 지키기를 한다는 도덕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개인과 집단을 상대로 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절제되고 적법해야 한다. 설사 그 개인과 집단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일지라도. 한 집단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묵인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공권력 남용의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정부의 손아귀에 백지수표를 쥐어주는 것이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서 윤석열 정부는 법이 허용한 재량의 범위를 넘어, 위법의 소지가 다분한 조치들을 남용했다. 아직까지도 영문을 알 수 없는 '2천 명'에 대한 집착을 관철하기 위해, 정부는 온갖 강압적 조치를 강행했고, 그 결과, 일부 의사들의 선도적인 반발은 전체 의사들의 투쟁으로 변모되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의사들이 돌아올 다리를 불살라 버렸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초기부터 일관되게 강경 입장을 고수했지만, 교수를 비롯한 적지 않은 기성 의사들, 특히 병원 봉직의들은 어느 정도의 의대 정원 확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적절하게 절충해서 의료대란 사태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희망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대국민 담화에서 한 치의 타협 없이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를 밀고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천명되었다. 전공의들이 오로지 미래 수입 감소 때문에 집단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전공의를 인질범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 대표들이 대외적으로 강경 발언을 이어갔지만, 휴학계와 사직서를 낸 대다수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학교와 병원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사태가 수습되면, 학교와 병원으로 빨리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통령 담화 이후, 이들은 장기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남자 의대생들은 현역으로 군 입대를 했다. SNS 단체방에서의 대화와 토론도 사라졌다.

조속한 사태 수습으로 예전의 일상적인 진료가 회복되길 희망했던 국민과 대다수 의사들의 바람은 대통령에 의해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접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학교와 병원에 돌아올 마음을 접었다. 의사들이 진료 현장으로 돌아올 다리는 대통령에 의해 불살라졌다.

의료대란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대란에 대비해 정부가 군병원 12곳 응급실을 민간인에게 개방한 지난 2월 2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내년이 될지, 후년이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의대생과 전공의들 사이에서 수동적 공격 성향이 팽배해졌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감은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의 명분이었던 필수의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장차 자신의 진로 선택에서 필수진료과를 배제할 공산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던 의사에 대한 국민 인식이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싸늘해졌다. 사태 초기에 의사들이 보인 문제적 언행 탓도 있지만, 의사를 돈만 밝히는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몰아간 정부의 언론 플레이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낙인은 돈은 안 되고, 고생은 더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필수진료를 선택했던 의사들에게는 모멸적인 것이었다.

의사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소득이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환자를 살린다는 보람과 자긍심이고, 그것이 필수진료 의사의 자존심이다. 보람과 자긍심이 부정당하고, 자존심이 깨져버린 의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의 기준은 '돈'이다.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한 대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의사 수는 늘지만, 필수진료는 거부하고, 환자의 생명을 살린다는 보람과 자긍심은 사라지며, '돈'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는 의료. 이것이 윤석열정부가 벌인 2024년 사태의 귀결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의료대란의 새로운 시작이다.

2024년 의료판 비상계엄 사태의 출발과 결말

정부의 강압적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장기간의 집단행동으로 환자 피해를 키운 의사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국민 건강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배금주의 정서가 팽배해진 점도 우려된다. 그러나 의료대란의 궁극적 책임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결과도 아랑곳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난데없이 '2천 명'을 들고 나왔다. 정부 정책에 반발하는 의사들을 '처단' 대상으로 취급했고, 환자를 지켜야 할 의사들이 환자를 저버리게 몰아갔다. 그리고 그 결말은 우리가 목도한, 그리고 앞으로 목도하게 될 파국적 의료 현실과 미래이다. 이것이 2024년 의료판 비상계엄 사태의 전모이다.

이진석 교수포럼 사의재

* 필자 소개 : 이진석은 현재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재직하며, 의료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문재인정부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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