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광역근로감독과 근로감독관들이 임금체불 단속에 앞서 회의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등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을 처리하는 기준은 '근로감독관 집무 집행 규정'(고용노동부 훈령)에 따라 이뤄집니다. '근로감독관 집무 집행 규정' 제40조 제10항에서는 "신고사건 처리 결과 체불 금품이 청산되지 않으면 신속히 신고인에게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대지급금 신청 절차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한 무료 법률구조서비스 등 민사 절차를 안내하거나 지원해야 한다"라고 근로감독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임금 체불 피해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한 이후 사업주의 임금체불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와 피해 노동자가 임금체불액에 의견 대립이 있다는 이유로 체불금품확인원의 발급을 거부하거나 대지급금의 지급 절차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피해 호소를 합니다.
임금체불 분쟁에서 임금 지급 관련 서류나 출퇴근 기록 등 노동자의 피해 사실 입증 자료에 대한 접근성은 사업주가 더 높습니다. 당연히 피해 노동자는 체불 사실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의 집행에 있어 경찰과 같습니다.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가지고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를 적극적으로 수사해 피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업주 소재 파악이 어렵다, 자료 제출을 안 하니 방법이 없다, 체불 피해액이 엇갈리는데 한쪽 편만 들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 노동자의 체불피해액의 확정이 한 없이 늦어지는 경우를 자주 접합니다. 심지어는 시간 외 근로를 제공했음에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초과수당의 산정이 어려워 정확히 얼마의 시간 외 수당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임금 체불 피해 노동자에게 "정확하게 체불 피해액을 계산해 오라"고 다그치는 일도 있습니다.
임금체불 소극 행정의 결과
이와 같은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행정은 임금체불 피해 사업장을 이탈하여 새로운 구직 활동을 하려는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들의 구직급여 수급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서울시 구로구의 어느 회사에서 일하던 최아무개씨는 사업주가 지속해서 임금의 일부를 체불하여 사업장을 떠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사업주에게 퇴사 의사를 알리고 빈번한 임금체불을 이유로 불가피하게 사직한다는 점을 기재하여 사직서를 제출하니 사업주는 해당 사유로는 사직을 수용할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사업장에서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임금체불로 문제가 되면 안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자발적 이직으로 처리하겠다는 사업주의 대화 내용을 녹취하여 고용센터 실업 인정 담당자에게 빈번한 임금체불로 인한 자발적 이직이라는 점을 증명했음에도 해당 고용센터 실업 인정 담당자는 사업주가 이직확인서에 사유를 정정하지 않으면 실업 인정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고용보험법은 규칙을 통해 '퇴사하기 전 1년간 임금체불이 2개월 이상 발생할 경우' 자발적으로 이직하더라도 실업 인정을 해 줍니다. 기초 고용 질서가 무너진 사업장에서 퇴사하는 경우 불가피성을 헤아려 구직 활동 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지요.
최씨 역시 해당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사업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직 사유를 허위로 기재하였고 최씨가 객관적 자료로 이를 입증했음에도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개정해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에 대한 체불 금품 확인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그동안은 사업주가 '내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체불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사업주 확인서나 진술로도 피해 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 사실을 확인해 줬는데 앞으로는 사업주 확인서만이 아니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개인별 부과고지 산출내역서 등 객관적 자료로 임금체불 사실이 확인되어야 체불 금품확인서를 발급해 주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 보험료는 사업주가 관계의 우위에서 얼마든지 노동자에 대해 허위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일당을 현금으로 받는 일용직의 경우나 비정규직 기간제,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 노동자는 사업주가 4대 보험 신고 의무도 회피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가장 취약한 고용 환경에 있는 이들이 임금체불 피해 사실의 확인이 어려워 대지급금이나 실업급여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대지급금의 수급 요건 강화 이유를 '노동자와 공모해 대지급금을 받는 방법으로 체불임금 지급을 회피하는 사업주의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부정수급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자는 체불 사업주인 만큼 사후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부정수급을 제어해야지, 왜 피해 노동자의 권리구제 요건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 하려고 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에 대한 대지급금 지급 요건 강화 방침을 철회하고 적극적 피해구제 행정을 펼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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