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3 07:16최종 업데이트 24.12.03 07:16
  • 본문듣기
안녕하신가요?

몇 해 전, 저는 당신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당신이 생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갔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어요. 지열에 아지랑이가 일렁였고, 매미 우는 소리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햇빛을 피해 나무 밑의 그늘에 숨어 다니며 공원을 가로질렀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산책했을지도 모를 곳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저는 당신의 부고를 알리러 가며 당신의 삶에 대해 상상했습니다. 2000원에 김밥 한 줄이라는 분식집을 지나치며 '이곳에서 종종 김밥을 사드셨겠다', 녹이 슨 호프 간판 아래 이른 저녁부터 거나하게 취한 노년의 남성들을 보며 '술은 여기서 드셨으려나', 공문 속에 담기지 않아 공란으로 남아있는 그 삶을 제 나름대로 채워가면서 당신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참 겁도 없이요.

사람을 찾았습니다

고인이 거주했던 여인숙의 계단나눔과나눔

당신의 집이었던 여인숙은 2층 건물의 2층에 있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했지만, 도무지 2층으로 가는 층계를 찾을 수 없어 건물을 한 바퀴 돌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가파른 계단을 찾아 오르자 습기를 잔뜩 머금은 좁은 복도가 나타났습니다.

정적이 흐르는 카운터 앞에서 저는 조심스럽게 사람을 찾았습니다. 계세요? 대답은 정적이었습니다. 어둡고 좁은 복도에 촘촘히 박혀있는 녹색 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습니다. 누군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곳에서 저는 10여 분 정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카운터 너머 탁자에 놓여 있는 쪽지를 찾았습니다. '부재중입니다. 연락주십시오. 010-0000-0000' 짤막한 문구가 적혀 있는 메모장은 자주 사용해서인지 구겨지고 귀퉁이가 너덜거렸습니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고, 이어지는 통화대기음에 끊으려고 할 때였습니다.

"여보세요?"
"아, 다른 게 아니고요. 여기서 사셨던 ○○○님이요. 그분 장례가 내일 있거든요. 부고를 전달하려고 왔습니다."

제 말에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잠시만요. 머리 말리고 있었어요. 금방 나갈게요."

전화를 끊고 다시 5분여를 기다렸습니다. 어두운 복도 끝의 방문이 열렸고, 그곳에서 중년 여성이 나왔습니다. 머리 끄트머리에는 물기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작은 체구의 그는 빠른 걸음으로 제 앞에 와서 섰습니다.

"○○○ 어르신 아직 화장을 못 했어요?"

걱정이 어려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네, 가족들 찾아서 시신 인수 여부 묻는 데 보통 한 달이 걸려서요."
"아이고야… 여태 그럼 냉동고에 있었던 거예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혹시 여기 사장님이신가요?"
"네, 제가 사장이에요."

그는 제가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경찰 공문 속의 주인공이었어요. '변사자 ○○○은 거주하던 여인숙의 방바닥에 엎드려 누운 채로 여인숙 사장 ○○○에게 발견됨'.

당신은 잦은 전입신고 끝에 마지막으로 이 여인숙에서 4년을 머물렀습니다. 짧으면 반년, 길어도 2년 단위인 당신의 떠도는 삶에서 이 여인숙은 가장 오래 체류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당신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당신을 애도하고 싶어 하는 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경찰조사서에 적힌 번호로 경위에게 전화해 묻자 대번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거기 사장님 좋은 분이세요. 부고 알려주시면 장례에도 가실 것 같은데요?"

통화가 끝나고 인터넷으로 여인숙의 번호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정보는 달랑 주소뿐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부고장을 출력해 가방을 챙겼습니다. 그게 당신의 동네에 당도한 저의 경위입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여인숙 사장님은 제가 무어라 묻기도 전에 당신의 생활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끼니를 주로 어떻게 해결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술에 취하면 어떤 말을 했는지, 명절마다 며칠씩 방을 비웠던 이유에 대해.

"어르신은 잘 안 먹었어요. 여기 사시는 분들 다 사정이 고만고만해요. 그래서 끼니 챙기기 어려운 분들한테는 제가 종종 주먹밥이나 밥이랑 김치 같은 거 가져다주고 그랬어요. 어르신은 그렇게 한 번 받아 들면 몇 끼에 걸쳐서 드셨어요. 도박을 좋아했는데, 가끔 저한테 오만 원씩 빌려 가고 그랬지요. 다른 사람들이 돈 빌려달라 그러면 절대 안 빌려주는데 어르신한테는 빌려줬어요. 수급비 나오는 날이면 꼬박꼬박 갚았거든요. 가끔 술을 드셨는데, 술에 취하면 항상 여동생 얘기를 했어요. 그나저나 여동생 찾았대요? 명절마다 친척들 보러 간다면서 방을 비우셨는데 그 사람들이 안 나타났대요?"

동네를 걸으며 했던 제 모든 상상이 빗나갔습니다. 당신은 김밥이 아니라 배달 음식과 여인숙 주인의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방 안에서 혼자 술을 드셨습니다. 나는 '고인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날 이후로 섣불리 상상하지 않습니다. 공문으로 알 수 있는 삶의 궤적은 단편적이고 흐릿해서, 저는 고인에 대해 아주 조금도 모르는 셈입니다. 함부로 고인의 삶을 추측하고, 재단하지 말기. 당신의 장례를 치르면서 배운 것입니다.

고인이 살던 여인숙의 방 호수나눔과나눔

한참을 이야기하던 여인숙 사장님은 제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참, 방을 보고 가실래요?"

저는 그 질문에 아주 잠깐 얼어붙었습니다. 누군가 죽은 채 발견된 장소를 본다는 것은 제 하루 계획에 없었던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이구나. 새삼 그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번 보고 가지요."

여인숙 사장님은 제 대답에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열쇠 꾸러미를 챙겨왔습니다.

"경찰들이 다녀간 뒤로 한 번도 연 적 없어요. 저도 이 방문을 여는 게 무서워서. 바닥에 엎드려 계셨는데, 여름에 침대가 너무 더워서 바닥에 누우셨나 봐요.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있는 방이라 그렇게 돌아가신 것 같아서 참 마음이 아파요."

여인숙 사장님은 말을 멈추지 않으며 꾸러미에서 당신의 방 호수와 같은 숫자가 적힌 열쇠를 찾아 문손잡이에 꽂았습니다. 덜컥. 잠금이 풀리고, 문이 열렸습니다.

안녕을 빕니다

이 여름날의 기억은 아직 생생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눈 감고도 당신의 방 모습이 어땠는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그 그림 속 방의 모습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모습입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이 당신과의 이야기를 여기에 적는 제 마지막 양심일 겁니다. 당신의 방 안을 보며 여인숙 사장님과 이야기하고 다시 거리로 나섰을 때, 어느덧 해는 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강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새겼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처음의 인사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날 여인숙 사장님이 쏟아내던 말들은 결국 당신의 안녕이었거든요. 사장님은 숨을 거둔 당신을 발견하고, 경찰들이 당신을 수습해서 사라진 이후부터 매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다니던 교회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함께요. 기도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당신이 천국에 갔기를, 이제는 편히 쉬고 있기를, 그렇게 당신이 안녕하기를…

사장님은 여인숙을 비울 수 없어서 장례에는 참석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장례가 치러지는 날에도 어김없이 당신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례가 치러지는 날, 당신의 이름이 적힌 지방을 태우며 저도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저는 수많은 고인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당신처럼 여인숙에서 살다 떠난 사람들도 있었고, 여인숙은 아니지만 비적정 주거지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살다 떠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반복되는 죽음과 장례를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무뎌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당신의 동네와 여인숙, 방 안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당신의 안녕을 빌었던 여인숙의 사장님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다시금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와 고인의 안녕을 빕니다.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어떤가요? 그곳에서.

안녕하신가요?
덧붙이는 글 기사에 나온 사례는 개인을 특정 지을 수 없도록 재가공 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