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3 11:59최종 업데이트 24.12.0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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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개관 전 모습.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화재로 첨탑이 무너진 지 5년 만인 12월 7일 기념식을 열고 재개관할 예정이다.연합뉴스

2019년, 대형 화재로 폐허가 되었던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오는 7일, 5년 반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새로워진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낸다.

1163년 처음 세워진 이 유서 깊은 대성당은 2019년 4월 15일 오후 여전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이 잿더미로 변하는 참사를 맞았다. 400명의 소방관이 진압에 나선 끝에 다음 날 새벽에야 화재가 진압됐다.


공식 개관을 1주일 앞둔 11월 29일, 노트르담 성당을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2시간 동안의 방문을 마친 후 "여러분은 잿더미를 예술로 탈바꿈 시킨 연금술사들입니다" 라는 말로, 이날 자리를 함께 한 1300명의 장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크롱은 고무된 표정으로 "저는 5년 안에 노트르담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냈습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 내외의 관람을 통해 영상과 사진으로 대중에 공개된 노트르담 성당은 복원이라기 보다 '재탄생'에 가까운 자태를 드러냈다. 천년 가까운 세월을 간직한 성당의 어둡고 무겁던 실내는 은은한 금빛이 맴도는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 실내의 칙칙한 벽화들, 상징물들, 석조 벽면 등은 치밀한 복원 작업을 통해 화재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진 모습을 드러냈다. 화재로 소실된 지붕을 축조하는 것 외에도, 오래된 먼지와 때, 노출된 납으로 중독되어 있던 성당 내부가 수천 명 장인들의 땀 속에서 말끔히 새 단장을 했다.

32만 명의 기부자, 8억 4천만 유로의 기부금

11월 29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9년 4월 15일 발생한 화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기부자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날 대성당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연합뉴스

1804년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면서 부족한 정당성을 대성당의 권위로 채우려 했던 나폴레옹이 대관식 장소로 노트르담 성당을 택했던 것처럼, 출구 없는 정치적 수렁에 빠져있는 마크롱은 압도적인 권위와 상징성을 지닌 노트르담에 기대어 부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트르담이 프랑스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는 그만큼 막중하다.

5년 전, 화재 소식이 전해졌던 다음 날, 프랑스 최대 거부인 LVMH 그룹의 아르노가와 또 다른 거부 로레알사의 베탕크루가가 앞다투어 2억 유로씩 기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32만 명의 민간인(상당수의 외국인 포함)이 8억 4600만 유로를 순식간에 성당 복원 기금으로 기부했다. 실제로 재건에 든 비용은 7억 유로(약 1조원)였다. 남은 기금은 성당 주변의 환경을 가꾸는 데 쓰인다고 한다.

정치권이 이 부활한 수퍼스타를 향해 어떤 의도를 품든, 다수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로 재건된 노트르담 성당은 그 누구의 지배적 권리도 말할 수 없는 온전히 시민 공동체의 공적 재산인 셈이다.

1200 그루의 참나무가 사용되어 '숲'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지붕과 골조 공사는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중세 때의 전통 기술을 따랐고, 디지털 모델링 같은 현대적 기술이 결합되었다.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장치에도 세밀한 공이 들어갔다.

8000개의 파이프가 있는 오르간은 화재로 인해 치명적 손상을 입진 않았지만, 납 찌꺼기가 쌓이고 그을음이 끼는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오르간 장인들이 8000개의 파이프를 완전히 해체하고 하나하나 세척하여 말끔한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12~13세기에 만들어진 3개의 대형 장미 창문은 화재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19세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연기로 인해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쾰른 대성당의 장인들과 프랑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인들이 1000㎡에 달하는 훼손된 창문의 복원을 맡았다. 5년 전, 불길에 쓰러지며 만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첨탑은 10월 말 96m 높이에 세워지며 다시 태어나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구성하게 되었다.

국민 절반이 방문 의사

11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모습. 2019년 4월 15일 보수공사 중 발생한 화재로 96m 첨탑이 무너지고 목조 지붕이 대부분 소실된 후 5년 간의 재건 끝에 12월 7일 기념식을 갖고 재개관할 예정이다.연합뉴스

지난 11월 24일, <르크루아>와 <프랑스앵포>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7%의 프랑스인들이 재개관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53%는 이 성당에 "애착"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한 50%는 노트르담 성당이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1905년, 정교분리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된 이후 프랑스에는 국교가 없으며 정치와 종교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비교적 철저히 지켜져 왔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성당 내부에서 연설을 하고, 과반에 가까운 국민이 이 성당에 열렬한 애정을 표하는 것은, 화재를 겪고 다시 뽀얗게 태어난 노트르담 성당에 정치적 위기를 겪는 대통령뿐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도 위로와 화합의 계기를 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노트르담 성당의 재탄생 소식에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을 무렵, 라시다 다티 문화부 장관은 노트르담 대성당 입장료 유료화를 제안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관광객에게 상징적인 요금(5유로)을 부과하고 그 돈을 종교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주요 계획에 전액 사용하자고 주교회에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성당 측에선 장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성당은 만인에게 차별 없이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오랜 원칙에 입각한 판단이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정부는 교회의 일에 더 이상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임에도, 라시다 다티 장관은 여전히 언론을 통해 자신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도록 여론 몰이를 시도 중이다. 금년 들어 1730억 유로의 기록적인 재정 적자를 기록한 프랑스 정부의 심각한 상황이 교회를 통한 재정 확보를 감히 넘보는 상황을 만들었음을 짐작케 한다.

5년만의 첫 미사

11월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향해 복구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손짓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는 8일, 5년만의 첫 미사를 앞두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 측은 이날의 미사를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기념비적 이벤트로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 음악계의 대형 스타들이 초대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여러 국가 원수가 함께 하는 특별한 콘서트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후 1주일간 매일 특별한 주제로 미사가 진행되며, 12월 16일부터 정상적 일정(07:45-19:00)으로 성당이 운영된다. 성당 측은 개관 이후 밀려들 관람객들을 위해 예약 시스템을 구축, 3일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방문할 수 있지만, 긴 줄서기를 각오해야 한다.

가톨릭 신자 수가 국민의 6.6%(2021년 IFOP 통계)에 불과한 나라에서, 절반 이상의 국민이 이 성당에 진한 애정을 보내는 것은 국민 작가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 서사를 만들고, 노트르담을 살아있는 존재로 각인시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19년 화재 당시,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선 베스트셀러 1위부터 10까지를 다양한 버전의 <노트르담 드 파리>가 차지하기도 했다.

경제 불황과 출구가 안 보이는 정치 불안의 터널을 지나는 프랑스에서 부활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저마다의 희망을 투사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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