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7일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희훈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서 일할 때
국가정보원이 위법적으로 사찰해온
문화예술인 249명 중점관리명단을
간신히 받아왔다
이름 옆에 A, B, C 등급이 매겨져 있었는데
다행히 A등급 스물두 명에 내 이름이 또렷이 들어 있었다
B나 C였다면
난 국가정보원의 존립 이유를 믿지 못했을 것이다
- 졸시, '자존심' 전문
2018년 호기롭게 위와 같은 시를 썼던 나는 실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별도 관리했다는 '문화예술인 중점관리명단' 내 A급 사찰 대상자였다. 당시 국정원 개혁위원회에서 내부 조사를 통해 공개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 확인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뿐 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여년 동안 나의 일상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사찰·미행·도청·탐문·공작 등을 당하고 그 결과 어떤 기록물들이 국정원 내에 쌓여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진상규명의 기회와 명예회복 등의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회는 아직까지도 오지 않았다. 사실 그 기회는 내가 다시 사찰 등과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거나, 피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 고소를 해서 찾아야 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 진실은 국정농단과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내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이에 따른 피해보상과 명예회복, 그리고 재발방지책 마련을 국정과제 1호로 약속했던 이 국가와 정부가 해주었어야 할 국가적 책무였다.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위법했던 국가폭력 관련해서는 계속되는 진상규명과 그 피해 회복, 재발 방지에 대한 계속되는 책무를 가진 대한민국 정부가 마땅히 해주어야 할 일이다. 내 개인의 일을 떠나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부를 나는 헌정에 기초한 정상 국가의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
그 사이,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문화체육부와 그 산하 수십 개의 국가기관이 1만여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하고 사찰 검열 배제한 희대의 국가범죄에 대한 진실은 적당히 파묻혀졌다. 그 진실규명을 외치는 동료 문화예술인들만 계속되는 모욕과 상처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통받으며 조롱받고 있다. 그 사이, 몸통으로 구속되었던 박근혜와 김기춘 등은 사면 복권되었다. 무수히 많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실행자들만 '명예회복(?)' 되어 돌아왔다.
대표적으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좌파척결, 지속적으로 고사, 화이트리스트 육성' 등의 원대한 기조하에 진행되었던 블랙리스트 실행 당시 문체부 장관과 대통령 문화특보로 일했던 유인촌의 화려한 부활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 하 문체부 장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더불어 현 문체부 제1차관인 용호성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실행 당시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있으며 여러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했던 자다.
둘 모두 미진한 조사에 따라 법적으로 확정된 판결을 받은 바 없다는 핑계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기회를 주었어야 할 정부와 의회, 검찰 등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처럼 농락당한 과정을 틈타 그간 여러 명의 국가범죄 혐의자들, 동조자들이 복귀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 기조실장과 제1차관을 지내며 여러 블랙리스트 사건 실행의 몸통에 있었던 송수근은 계원예대 총장으로 돌아왔었다. 현재는 (사)한국국제문화포럼의 회장으로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립중앙극장 장으로 블랙리스트 실행 연루자인 안호상은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돌아왔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사면복권 받은 후 얼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로 돌아왔다.
'좌파척결 및 고사' 시도가 다시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