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자판기
연합뉴스
다방의 몰락은 가져온 두 번째 요인은 자판기와 캔음료 열풍이었다. 1991년 당시 자판기 시장 규모는 1300억 원 정도였다. 1989년에 10만 대에 불과하던 국내 자판기 보급 대수는 1990년에 14만 대를 넘어섰고, 1991년에는 20만 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매출액도 매년 70% 이상 증가할 정도의 호황이었다.
자판기 중 70% 이상을 점하고 있던 것이 커피자판기였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자판기 제조 경쟁이 뜨거웠다. 삼성전자, 금성산전에 이어 해태전자, 만도기계, 두산기계, 롯데기공 등도 자판기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함으로써 경쟁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의 음료 시장에서 자판기를 이용한 판매 비중이 50%라는 점이 국내 기업들의 자판기 사업에 대한 관심을 증가하게 만든 요인의 하나였다.
국내기업들은 미니자판기 제작에도 적극적이었다. 새한벤더(주)가 1991년 1월부터 시판을 시작한 유럽풍의 미니 커피자판기 파트너, 서진전기(주)가 유지비 50% 절감을 내세우며 판매를 시작한 미니자판기 커피타임 등이 등장한 것이 1991년이었다. 유니코산업(주)은 유니마트라는 미니 커피머신을 신문 광고와 함께 시장에 내놓았다. 신문 광고를 통해 내세운 것은 "커피값 아까운 사장님, 차 심부름 지겨운 미스킴, 속 많이 상하셨죠?"라는 카피였다.
1990년대 초반 다방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온 세 번째 요인은 캔커피의 유행이었다. 동서식품이 선점하고 있던 캔커피 시장에 미원 해태 샘표펭귄 등이 뛰어들어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에 277억 원 전후의 시장 규모였던 것이 1991년에는 롯데칠성음료와 서울우유의 참여로 555억 원 규모로 팽창하였다. 캔커피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동서식품이 1991년 5월과 6월 노사갈등으로 조업을 중단한 것이, 오히려 캔커피 시장 쟁탈전을 더욱 가열시켰다.
국내 기업에 이어 코카콜라와 네슬레가 합작하여 '코카콜라네슬레리프레시먼트'를 창립하고, 1991년 3월에 네스카페 캔커피 2종을 국내 시장에 출시하였다. 이런 경쟁 속에서 당시 돌풍을 일으킨 제품은 롯데칠성음료의 캔커피 '레쓰비'였다. '깊고 풍부하며 부드러운 맛과 향' '캔커피 맛이 달라졌다'라는 개념 광고가 가져온 효과였다. 마일드커피의 상징인 콜롬비아커피만을 선택하여 캔에 담았다는 광고 또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1년은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만 격변이 이루어진 해는 아니었다. 세계 질서 또한 급변하였다. 동서 독일의 통일,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연방의 출범, 그리고 일본 경제의 침체기 진입 등으로 인한 국제 질서의 빠른 재편이 이루어진 것이 1991년이었다. 이해 9월 17일을 기해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달콤한 뉴스로 가득한 가을이었다. 공보처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기념하여 표어를 공모하였고,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표어는 "겨레여 함께 가자, 유엔에서 통일까지"였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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