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30 19:14최종 업데이트 24.11.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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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커피는 부드러워야 좋은 거 아녜요?" 1991년 연극인 윤석화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 광고 문구다. "여자는 커피 향기 속에서 부드러워진다", "개성 있는 여자의 부드러운 향기"라고 속삭이는 윤석화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부드러운 커피, 마일드커피, 맛과 향이 살아 있는 고품질 커피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1991년은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 있어서 다방의 몰락이 본격화된 해였다. 다방의 쇠퇴는 이미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지만 이 해에 가속화되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다방이 급격히 설 자리를 잃어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1989년 말에 1만 2000여 개에 달하던 시내 다방 수가 1990년에 1만여 개로 줄었고, 1991년 8월 말에는 9364개로 줄었다. 1991년에 들어서만 8백여 개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도하면서 <매일경제>는 "다방 찬바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1991년 11월 12일 자). 건물 임대료 상승과 인건비 부담의 증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일차적 원인이었지만 다른 요인들도 함께 작용하였다. <경향신문>은 '도심 다방이 사라져 간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종로와 중구 등 도심의 경우 지난 4년 사이에 절반가량인 47%의 다방이 사라진 것으로 보도하였다(1991년 12월 15일 자).

다방 대신 커피전문점 생겨

커피하우스 학림 (자료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떤 요인들이 다방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을까? 1991년 들어 가속화된 다방의 몰락을 가져온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는 커피전문점의 등장이다. 1980년대에 등장한 카페에 이어 체인점 형태의 커피전문점이 급속하게 확산된 것이 1991년이었다. 1988년 12월에 ㈜영인터내셔날이 서울 압구정동에 창업한 '자르뎅'이 효시였다.

이어서 ㈜미원의 '나이스데이', 한국도토루의 '도토루', 동서식품의 '헤르젠' 등 15개가량의 커피전문점이 전국에 150여 개의 직영점 또는 체인점을 두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자르뎅은 1991년 말 당시 전국에 33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직영점 형태로 운영하던 한국도토루의 도토루와 ㈜미원의 나이스데이도 점차 체인점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들 4개 커피전문점 이외에도 브레머상사의 '브레머', 범아식품의 '트랜디', 미스타커피의 '미스타커피', 메디아오퍼레이션의 '메디아' 등 새로운 커피전문 체인점이 속속 등장하였다. 신문에는 커피체인점 모집 광고가 줄을 이었다. '새 시대의 새로운 커피전문점'을 내세운 '커피타임', '고메이 커피를 아십니까?'를 내세운 '고메이커피'(Gourmet Coffee), '꽃이 피는 커피하우스'를 내세운 '가기아커피하우스'(Gaggia Coffee House)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 커피 체인점들은 지하가 아니라 지상 1층에 문을 열어 다방보다 접근을 쉽게 했고, 탁 트인 실내 공간에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제공하였다. 다방이나 음식점과는 달리 음료를 직접 주문하고, 음료를 직접 가져다 마시고, 마시고 난 컵을 직접 반납하는 셀프서비스도 커피전문점의 새로운 문화로 등장하였다.

다방보다 밝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실내 분위기, 원두커피가 주는 향상된 커피의 맛, 그리고 개선된 서비스 등이 합해져서 도시의 젊은 층을 시작으로 다양한 계층의 고객을 흡수하였다. <매일경제>의 표현대로 '원두커피전문점의 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아직 테이크아웃 커피문화는 시도되지 않았고, 메뉴에 아메리카노는 등장하지 않았다. 커피메이커를 이용하여 내린 원두커피와 함께 설탕과 프림이 별도로 제공되는 커피문화였다.

커피 자판기 열풍

커피 자판기연합뉴스

다방의 몰락은 가져온 두 번째 요인은 자판기와 캔음료 열풍이었다. 1991년 당시 자판기 시장 규모는 1300억 원 정도였다. 1989년에 10만 대에 불과하던 국내 자판기 보급 대수는 1990년에 14만 대를 넘어섰고, 1991년에는 20만 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매출액도 매년 70% 이상 증가할 정도의 호황이었다.

자판기 중 70% 이상을 점하고 있던 것이 커피자판기였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자판기 제조 경쟁이 뜨거웠다. 삼성전자, 금성산전에 이어 해태전자, 만도기계, 두산기계, 롯데기공 등도 자판기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함으로써 경쟁은 더욱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의 음료 시장에서 자판기를 이용한 판매 비중이 50%라는 점이 국내 기업들의 자판기 사업에 대한 관심을 증가하게 만든 요인의 하나였다.

국내기업들은 미니자판기 제작에도 적극적이었다. 새한벤더(주)가 1991년 1월부터 시판을 시작한 유럽풍의 미니 커피자판기 파트너, 서진전기(주)가 유지비 50% 절감을 내세우며 판매를 시작한 미니자판기 커피타임 등이 등장한 것이 1991년이었다. 유니코산업(주)은 유니마트라는 미니 커피머신을 신문 광고와 함께 시장에 내놓았다. 신문 광고를 통해 내세운 것은 "커피값 아까운 사장님, 차 심부름 지겨운 미스킴, 속 많이 상하셨죠?"라는 카피였다.

1990년대 초반 다방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온 세 번째 요인은 캔커피의 유행이었다. 동서식품이 선점하고 있던 캔커피 시장에 미원 해태 샘표펭귄 등이 뛰어들어 과열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에 277억 원 전후의 시장 규모였던 것이 1991년에는 롯데칠성음료와 서울우유의 참여로 555억 원 규모로 팽창하였다. 캔커피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동서식품이 1991년 5월과 6월 노사갈등으로 조업을 중단한 것이, 오히려 캔커피 시장 쟁탈전을 더욱 가열시켰다.

국내 기업에 이어 코카콜라와 네슬레가 합작하여 '코카콜라네슬레리프레시먼트'를 창립하고, 1991년 3월에 네스카페 캔커피 2종을 국내 시장에 출시하였다. 이런 경쟁 속에서 당시 돌풍을 일으킨 제품은 롯데칠성음료의 캔커피 '레쓰비'였다. '깊고 풍부하며 부드러운 맛과 향' '캔커피 맛이 달라졌다'라는 개념 광고가 가져온 효과였다. 마일드커피의 상징인 콜롬비아커피만을 선택하여 캔에 담았다는 광고 또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1년은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만 격변이 이루어진 해는 아니었다. 세계 질서 또한 급변하였다. 동서 독일의 통일,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연방의 출범, 그리고 일본 경제의 침체기 진입 등으로 인한 국제 질서의 빠른 재편이 이루어진 것이 1991년이었다. 이해 9월 17일을 기해 남과 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달콤한 뉴스로 가득한 가을이었다. 공보처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기념하여 표어를 공모하였고,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표어는 "겨레여 함께 가자, 유엔에서 통일까지"였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매일경제> 1991년 기사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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