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9 08:33최종 업데이트 24.11.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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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4.2.5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인기를 잃고 욕을 먹어도 미래세대를 위해 의료·노동·연금·교육의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올해 11월 4일의 대통령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국가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완수 의지를 보였다.

'교육개혁' 강조하지만, 주요 사업마다 재정지원계획 부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는 대표적인 교육정책은 유보통합, 늘봄학교, AI 디지털교과서, 교육발전특구, 글로컬대학 등으로 교육부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업들은 2025년 예산안에서 얼마나 재정을 확보했을까.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보인 만큼 중앙정부 차원의 국고 투입도 기대할 만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윤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에는 획기적인 국고 투입도, 긴 호흡의 중장기 교육투자 계획도 없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고교무상교육 사업을 위해, 중앙정부가 국고 47.5%(약 9천억 원 상당)를 부담하였고, 17개 시·도교육청에서도 47.5%의 재원을 부담하였다. 2021년에는 총 18.5조 원 규모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국고 30%(총 5.5조 원)를 부담하고, 교육청은 70%(총 13조 원)의 재원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대통령 공약으로 시작한 국책사업을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서 중앙정부의 국고 지원이 선행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중앙정부-지방정부 간 신뢰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현장의 갑작스러운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국고 지원 외의 방법도 있다. 2006년에 방과후학교 사업, 중학교 무상교육을 추진할 때에 노무현 정부는 교육청의 주 세입원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교부율을 19.4%에서 20.0%로 인상시키는 조치를 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7·20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위해 총 17조 원의 교육투자 계획을 수립해 운영하였다. 박근혜 정부 고교무상교육 공약은 재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달성은 못했지만, 국가장학금을 매개로 하는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의 이행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이를 위해 박 정부는 매년 2천억 원~5천억 원 상당의 국고를 추가로 투입하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책 사업에 대한 획기적 국고 지원 계획이나 내국세 교부율 인상 계획 등이 없다. 교육청에 큰 부담을 주는 국책사업을 여러 개 추진하면서도 중앙정부의 재원 확보 대책이 없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정부별 교육재정 주요 정책 비교@사의재포럼 사의재

2025 예산안에 감춰진, 무수한 교육재정 폭탄

2025년 예산안에는 무수한 교육재정 폭탄이 감춰져 있다. 국회로 제출되는 정부 예산안은 대부분 국고 편성 사업이기 때문에 세부 사업명과 예산을 국회에 보고하지만, 교육청의 유·초·중등 사업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액만 기재되어 있지 해당 하위 사업에 대해 보고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충분히 예견되는 예산 사업이 가려질 때가 많다. 이번 2025년 예산안에는 유독 '악재'가 될 만한 큰 사업들이 많다.

몇 가지 대표적인 사업만 확인해 보았다. 우선 유보통합 사업이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유아교육 및 보육 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으로 2024년 6월에 교육부로 업무가 이관되었고, 17개 교육청이 실무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올해 부처 일원화는 이뤄졌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부의 유보통합 사업은 '교육-돌봄 책임 특별회계'를 신설한다는 내용 외에 추정 예산과 구체적인 재원마련 확보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교육부가 계획한 5대 상향평준화 과제 중 당장 급한 것들(교사 대 영유아비율을 1:12에서 1:8로 낮추기, 표준유아교육비·표준보육비 수준으로 집행)만 하는 데에도 매년 약 3.5조 원이 소요된다는 국회 추계가 나왔고, 전체적으로 총 20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학계의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2025년 예산안에는 유보통합 실행계획에 대한 예산 반영이 없다. 정부는 시도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한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교육청과 세부 과제별 예산 협의가 된 것도 아니다.

AI 디지털교과서도 현 정부 교육개혁 과제의 핵심이다. AI 디지털 교육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 대책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특별교부금 비율을 당초보다 0.8% 늘려서 0.8%에 해당하는 5600억 원을 디지털 교육혁신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신규로 재정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늘렸다는 0.8%의 정체는 원래 교육청에게 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보통교부금의 비율을 0.8%만큼 깎고, 이를 교육부가 관장하는 특별교부금으로 보낸 것에 불과하다. 즉, 교육청 입장에서는 신규 재정지원이 아니라, 기존의 돈을 교육부가 도로 가져가서 예산 꼬리표만 달아서 다시 보낸 셈이 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교육청이 AI 디지털교과서 구독료를 출원사에 매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교과서의 구독료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추정대로 하면, 서책형 7천 원의 5~10배(학생 1인당 연간 5~9만 원) 수준으로, 매년 최소 1.9조 원~최대 6.6조 원의 구독료 부담이 발생한다. 매년 이 재원은 누가 부담해야 하나.

심각한 세수결손, 지방교육재정도 강타

교육부 '늘봄학교 확대·유보통합 추진 계속'?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교육부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교육언론창

2023년과 2024년에는 국가 경제사정도 어려웠다. 기획재정부가 세수를 재추계하여 별도로 발표할 정도로 국내 세수결손은 심각했다. 2023년에는 56조 원, 2024년에는 29조 원의 세수가 적게 들어왔고,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2023년에는 10.4조 원, 2024년은 4.3조 원 등 예상보다 적게 들어왔다. 교육청 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재정 충격이다.

그러나 교육청의 재정 감소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고등교육 예산 확충을 위해 2023년에 신설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는 그 세입원을 교육청으로 보내던 국세 교육세 일부로 설계하였고, 이로 인해 교육청의 재정은 매년 2조 원 적어졌다.

지방교육재정에 보탬이 되던 고교무상교육의 중앙정부 국고 지원 정책은 올해 말에 법률에 의해 종료될 예정이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국고 지원을 3년 연장하는 법안을 두고 여야 공방전이 큰 상태이다. 불과 한 달 전 거리 곳곳에 국민의 힘이 내건 '고교무상교육을 계속 실시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과 민주당의 '고교무상교육을 지키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붙었던 것을 생각하면 진즉에 합의됐어야 하는 사안이다.

교육청이 돈이 남아돈다는 지적이 몇 년간 계속되고 있다. 2022년에는 예상치 못한 초과세수로 교부금이 전년 대비 21조 원 더 들어왔으니 '돈이 남아돈다'는 말이 나올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2023~2024년은 '역대급 세수펑크'에 따라 교육청은 14~15조 상당의 교부금 손실이 있었고, 교육청은 2025년 예산안을 초긴축 재정으로 편성했다. 2022년의 넉넉한 세수 시기에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교육안정화기금)' 등에 저축하였고, 이 기금으로 현재의 재정난을 견디고 있다. 이 돈도 2026년이면 완전히 고갈된다.

추가경정 없는 세수결손 처리... 국회 예산심의권 위배, 행정 예측가능성 훼손

이번 세수결손에 따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년 연속 예산액 대비하여 감액되었다. 이렇게 세수결손이 발생하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세입경정을 하고, 예산액과 결산액의 차액은 늦어도 2년 뒤 연도(다음다음연도)까지 정산을 하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9조에 규정하고 있다. 법 취지는 간단하다. 세수 결손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3년의 교육청 세수결손분 10조 원에 대해 추경을 통한 세입 경정을 하지 않고, 10조 원을 감액하여 교부하였다. 즉 불용 처리의 방법을 택했다. 불용 처리했으니 정부는 다음다음연도까지 정산할 필요가 없고, 사실상 예산 삭감을 하고 끝내게 된다.

국가재정 전체의 세수결손에 대해 추경이 없었다는 것은 헌법 제54조에 명시된 국회의 예산심의·확정권을 위배한 것이다. 또한 교육현장 기준에서는 세입세출에 대한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만약 법대로 2023년의 세수 결손분을 2년 뒤인 2025년에 정산한다고 정부가 방침을 확정했다면, 교육청은 긴축 재정 기조의 사업비 축소 수준을 조정했을 것이다. 교육청의 사업비는 결국 일반 학교의 목적사업비, 학교운영비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바,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의 질 저하를 가져오게 된다. 정부는 2024년 세수결손만큼은 교육청에 정산을 해주어 2023년의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

교육투자 없이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의 공약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윤 정부는 지금이라도 유보통합, 늘봄교실, AI 디지털교과서 등의 대규모 재정 소요사업에 대해 과제별로 재원 확보계획을 세밀히 수립하고, 2025년 예산안에 일부라도 국고로 반영해야 한다. 이걸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대규모 재정투자 사업을 유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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