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마러라고 저택 근처에서 지지자들이 깃발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화려하게 미국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확보된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그에게 재신임을 보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제정신이 아니다' 식의 감정적이고 조소 섞인 평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크다. 지금의 미국은 다른 미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21년 2월 4일 세계를 향해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동맹과 협력관계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하지만 4년여 지난 지금, '돌아온 미국'은 실상 '트럼프의 미국'이었다. '바이든의 미국'은 시대에 뒤처진 뒷북에 불과했던 셈이다.
미국의 공화당은 창당 이래 몇 차례 중요한 이념적 변신을 했다. 기독교 윤리 중심의 엘리트주의가 링컨의 자유주의적 보수를 거쳐,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에 기반한 복음주의적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보수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으로 다시 한번 주류가 교체되는 변화를 겪었다. (관련 기사 :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https://omn.kr/2ayvx)
단순화의 위험을 감수하자면 미국의 200년 역사를 관통하는 보수의 이념은 이처럼 크게 4단계로 요약된다. 19세기 전반기를 지배하던 보수 이념이 연방주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윤리적 보수였다면, 중반 이후 공화당의 창당과 함께, 강한 연방 질서와 인권적 가치가 혼합된 미국적 보수 이념이 탄생하게 된다. 링컨의 공화당이 이에 해당한다.
20세기 전반기의 보수는 강한 연방주의 탈피와 자유시장 옹호로 대변된다. 뉴딜정책 같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사업과 복지국가를 반대했다. 반면, 20세기 후반부터 보수는 고립주의를 버리고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개입주의 외교로 전환했다. 신보수(네오콘)의 등장이 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보수의 변화는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의 흐름, 그리고 미국의 위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립주의 시기의 미국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응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성격이 강했다. 반면, 네오콘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야망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네 단계로 진화해 온 미국의 보수는 이제 또다시 근본적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개입주의를 멋지게 포장한 '세계화'는 더 이상 미국에 매력적이지 않다. 한때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보장하는 주요 도구였지만, 이제 그 빛을 잃었다.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중심의 글로벌 경제는 오히려 미국의 경쟁국들만 성장시키고 있다.
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시장을 가진 미국은 세계화 없이도 자국 경제를 유지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기반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또한,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힘도 보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화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줄어든 반면, 고립주의를 통해 얻는 상대적 이익은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세계화'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이 주창하는 국제 질서의 주요 레토릭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제 미국이 원하는 세계화는 자국에 유리한 하이테크와 정보산업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산업에서만큼은 미국이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