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정대표자 회의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왼쪽부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이 회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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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사회적 대화는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의 양보와 타협의 장으로 활용되었지만, 90년대 이후 사회적 대화는 산업과 의제별로 다양한 노동 쟁점들을 논의하는 장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노동정책의 경우 정부의 독단으로 의사결정이 어렵고 이해관계자 간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는 기업친화적인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려 했으나 노동조합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된 바 있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2018년, 2019년 각각 16.4%, 10.9% 인상했으나 그 후 경영계와 보수언론의 반대에 부딪혀 2020년, 2021년에는 각각 2.9%, 1.5% 인상하는 데 그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정부가 노사단체 및 국민적 공감 없이 노동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다양한 복합위기와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보다 늘어나는 소득 불평등이 잠재적 불안 요소다. 한국 상위 10%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46.5%를 차지하고 있어 독일(37.1%)과 일본(44.9%)은 물론 미국(45.5%)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은 주로 비정규직의 임금이 낮고 기업규모에 따라 임금 차이가 크기 때문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이나 원·하청 공정거래와 같은 논의가 필요하다.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것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위기다. 생산인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청년, 여성, 고령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중요하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및 초단시간 노동, 그리고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등 노동권 보호 밖의 노동자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보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여가고 있지만 정작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성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현재 사회적 대화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화가 노사 당사자보다 정부 주도로 이뤄지면서 정부의 성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온 점이다. 주로 민주당 정부에서는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고 보수당 정부에서는 사회적 대화를 활용해 노동시장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 왔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위해 노사정위원회법을 제정해 사회적 대화를 상설화했고, 노무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로 바꾸는 한편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어 업종별·의제별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을 제정해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계층별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사회적 대화를 활용해 노동 관련 쟁점을 풀려고 했다.
이러한 진전은 보수당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가 멈추거나 수단화되는 방식으로 후퇴했다. 보수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가 멈추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정부 개입의 최소화'였지만, 사실은 노동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시도했으나 저(低)성과자 해고와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려다 노동조합과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좌초했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집권 초기 정부의 반노조 정책에 의해 그 역할이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한국노총은 2년 가까이 참여를 중단하다 최근 참여하는 등 불안정한 정상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이런저런 제도 개혁을 통해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하는가 싶다가도 보수당이 집권하게 되면 갑자기 개점휴업이 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특히 보수당이 집권할 경우 사회적 대화를 지나치게 수단화하는 경향이 커서 민주노총은 아예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노총은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다가도 노동 관련 다른 쟁점이 생기면 사회적 대화를 일시 중단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비록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는 구조적 한계가 있지만 입법 성과 및 효과가 여러 차례 확인되기도 해서 사회적 대화를 중단할 일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7년 말까지 298개의 사회적 합의 중 법 개정으로 이행한 합의는 124건(41.6%)으로 나타나 법, 제도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연구에서도 사회적 대화가 활성화할수록 노사관계 측면에서 파업 등 사회적 갈등이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를 바라보는 국민의 긍정적인 시선이다. 몇 해 전 실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노사관계 발전 방향으로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를 1순위로 꼽았다.
이러한 결과들은 부족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동안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사회적 대화가 가능한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국회에서 다른 사회적 대화가 성공하려면

▲지난 10월 22일 공무원 근무시간면제 심의위원회 11차 전원회의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석현정 위원장이 근무시간 면제(타임오프) 한도 의결 과정에 대한 규탄 발언을 하던 중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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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떠오른 국회의 사회적 대화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회적 대화의 잠재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어서 변화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국회의 사회적 대화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기존과 다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국회의 사회적 대화는 정부 중심의 사회적 대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경사노위가 집권세력의 철학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국회도 누가 다수당이 되는가에 따라 노동정책에 대한 철학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는가에 주목해서는 곤란하며 어떤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
즉 국회에서 사회적 대화를 하려면 정부의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다루기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급한 갈등현안이나 중장기 사회적 과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국회의장의 개인적 지향에 따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지속가능한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잘 알려진 대로 노동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조정 역할을 많이 해왔기에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를 계기로 인력과 예산 배정 등 국회의 사회적 대화를 상설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회는 공무원연금이나 택배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를 성공시킨 사례가 있으므로 상설 논의체로 한 단계 진화하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
셋째, 국회의 사회적 대화는 노사단체에 지나치게 합의를 강요하기보다 유연하게 논의하되, 이행에 있어서는 정당이 책임지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노사가 합의를 전제로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안에 따라 노사의 부담이 커 합의가 어려운 경우도 존재한다. 이 경우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참여 정당이 논의 사항에 대해 입법이나 정책건의, 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또한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해당 내용을 숙의하거나 추가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상임위원회별로 청문회를 열거나 정부 당국자를 불러 객관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추가 정책을 건의하는 방식 등이다.
넷째, 국회의 사회적 대화는 진단보다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국회 논의 기간은 의제의 무게에 따라 달라져야겠으나 문제가 명확하다면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논의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 사안을 단기간(예: 3개월 + 필요시 3개월 연장 등 6개월 이내)에 논의하는 등 효율적인 운영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의 정당성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이어온 우리의 사회적 대화는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넘친다. 서로가 똑같은 양으로 양보하는 것이 어렵고 타협의 결과물이 노사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할지 따져왔기 때문인데, 그 사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이 쌓이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는 노사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적 운명이 달린 도전들이 많기도 하다. 기존의 관성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대화 실험을 지지하는 이유다.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정흥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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