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당시 아베 정권 극우화의 배후에는 '일본회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합뉴스
외형과 달리 지금 많이 억눌려 있는 쪽은 일본 극우다. 10·27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함에 따라 이들의 최대 과제인 헌법 개정의 가능성이 크게 위축돼 있다. 거기다가 미국 대선에서 '미국만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해 미일관계가 불안해지고 이에 기반한 일본 군사대국화 역시 유동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극우세력의 몸부림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도광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사실상 조롱하는 추도식이 열린 24일, 도쿄에서는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이 주도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아름다운 헌법 국민회)'이 대규모 실내 집회를 열었다.
2014년 10월 1일 설립총회를 가진 '아름다운 헌법 국민회'는 이달 25일 홈페이지에 올린
보고문에서 개헌세력인 자민당·공명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의원들과 학계·사회단체 인사 등을 포함한 800명이 24일 도쿄에서 '자위대 명기하는 헌법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동아시아의 위기로부터 일본을 지키자!"였다. 집회에 참석한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정책위원장)은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헌법 제9조 제2항에 불만을 표했다.
위 보고문은 그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당당하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위대의 명기는 물론이고 9조 2항을 포함해 확실히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한 일을 전했다. 일본회의가 자민당 같은 제도권 정당과 힘을 합쳐 위축된 상황을 극복하고 개헌 국면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건 것이다.
자민당의 리더십 위기를 파고든 일본회의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얻은 의석(191석)은 물론이고 공동여당인 공명당(24석)이 확보한 의석을 합쳐도 전체 465석의 과반수가 되지 않는다. 개헌을 위한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인 310석에는 더욱더 못 미친다. 공동여당과 함께 개헌세력으로 분류되는 일본유신회(38석)와 국민민주당(28석)의 의석까지 합산해도 281석밖에 되지 않는다.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찬성이 나와야 한다. 참의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10월 9일 현재의 의석 분포를 보면, 총 248석 중에서 자민당이 113석, 공명당이 27석, 일본유신회가 18석, 국민민주당이 11석을 갖고 있다.
개헌 발의에 필요한 참의원 의석은 166석이다. 공동여당의 참의원 의석수가 140석이고 개헌세력의 의석수가 169석이므로, 참의원에서 네 정당이 연합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중의원에서도 찬성이 나와야 하므로 지금 여건으로는 개헌 추진이 녹록지 않다.
개헌을 발의하려면 개헌선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만한 강력한 정당을 갖추든가 아니면 개헌세력을 형성하는 정당들의 연합전선을 공고히 해야 한다. 전자는 당장에 요원하다. 아베 신조 퇴진 이후로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 같은 약체 지도자가 연이어 배출되더니, 지금으로 봐서는 스가·기시다보다도 더 약체인 이시바 시게루가 자민당과 내각을 이끌고 있다.
자민당은 정치자금과 통일교 문제로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구축이 힘들다. 이 같은 자민당 리더십의 위기는 전자는 물론 후자에도 영향을 준다. 연합전선을 이끌어갈 안정적인 리더십이 자민당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시바 총리가 그런 역량을 갖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판 나토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핵심 공약이 쏙 들어간 것도 그의 딱한 처지와 무관치 않다.
2017년에 아베 신조가 개헌 완성의 목표 시점으로 설정한 해가 2020년이다. 도쿄 올림픽이 예정된 2020년을 계기로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 2020년이 4년이나 흘렀지만, 개헌세력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2017년보다도 못하다. 그때만큼의 리더십도 없고 의석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회의가 일어섰다. 24일 국민집회 때 나온 성명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와 무기를 지원하고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하면서 남중국해 등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다가 트럼프까지 당선된 지금의 정세에 우려를 표시했다.
트럼프 때도 미일동맹은 잘 작동됐지만 바이든 때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극우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2기가 상대적으로 불안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명서는 "앞으로 미국이 자국제일주의를 고집하고 지역의 안전보장을 경시하면 아시아에는 힘의 공백이 생겨 중국·북조선의 폭발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본회의는 자민당의 형편이 말이 아닌 데다가 '미국만 제일'이라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북한과 중국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일본회의가 꿈틀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위 성명서의 본문은 "총력을 결집해 헌법개정 실현을 향해 일어설 때다"라는 말로 끝난다.
헌법 개정 추진하는 자민당 내 움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