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6 13:17최종 업데이트 24.11.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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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2월 26일, 일본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당시 아베 정권 극우화의 배후에는 '일본회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연합뉴스

외형과 달리 지금 많이 억눌려 있는 쪽은 일본 극우다. 10·27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함에 따라 이들의 최대 과제인 헌법 개정의 가능성이 크게 위축돼 있다. 거기다가 미국 대선에서 '미국만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해 미일관계가 불안해지고 이에 기반한 일본 군사대국화 역시 유동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극우세력의 몸부림이 본격화되고 있다. 사도광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사실상 조롱하는 추도식이 열린 24일, 도쿄에서는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이 주도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아름다운 헌법 국민회)'이 대규모 실내 집회를 열었다.


2014년 10월 1일 설립총회를 가진 '아름다운 헌법 국민회'는 이달 25일 홈페이지에 올린 보고문에서 개헌세력인 자민당·공명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 의원들과 학계·사회단체 인사 등을 포함한 800명이 24일 도쿄에서 '자위대 명기하는 헌법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동아시아의 위기로부터 일본을 지키자!"였다. 집회에 참석한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정책위원장)은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헌법 제9조 제2항에 불만을 표했다.

위 보고문은 그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당당하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위대의 명기는 물론이고 9조 2항을 포함해 확실히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한 일을 전했다. 일본회의가 자민당 같은 제도권 정당과 힘을 합쳐 위축된 상황을 극복하고 개헌 국면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시동을 건 것이다.

자민당의 리더십 위기를 파고든 일본회의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얻은 의석(191석)은 물론이고 공동여당인 공명당(24석)이 확보한 의석을 합쳐도 전체 465석의 과반수가 되지 않는다. 개헌을 위한 국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인 310석에는 더욱더 못 미친다. 공동여당과 함께 개헌세력으로 분류되는 일본유신회(38석)와 국민민주당(28석)의 의석까지 합산해도 281석밖에 되지 않는다.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찬성이 나와야 한다. 참의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10월 9일 현재의 의석 분포를 보면, 총 248석 중에서 자민당이 113석, 공명당이 27석, 일본유신회가 18석, 국민민주당이 11석을 갖고 있다.

개헌 발의에 필요한 참의원 의석은 166석이다. 공동여당의 참의원 의석수가 140석이고 개헌세력의 의석수가 169석이므로, 참의원에서 네 정당이 연합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중의원에서도 찬성이 나와야 하므로 지금 여건으로는 개헌 추진이 녹록지 않다.

개헌을 발의하려면 개헌선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만한 강력한 정당을 갖추든가 아니면 개헌세력을 형성하는 정당들의 연합전선을 공고히 해야 한다. 전자는 당장에 요원하다. 아베 신조 퇴진 이후로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 같은 약체 지도자가 연이어 배출되더니, 지금으로 봐서는 스가·기시다보다도 더 약체인 이시바 시게루가 자민당과 내각을 이끌고 있다.

자민당은 정치자금과 통일교 문제로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구축이 힘들다. 이 같은 자민당 리더십의 위기는 전자는 물론 후자에도 영향을 준다. 연합전선을 이끌어갈 안정적인 리더십이 자민당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시바 총리가 그런 역량을 갖추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판 나토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핵심 공약이 쏙 들어간 것도 그의 딱한 처지와 무관치 않다.

2017년에 아베 신조가 개헌 완성의 목표 시점으로 설정한 해가 2020년이다. 도쿄 올림픽이 예정된 2020년을 계기로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 2020년이 4년이나 흘렀지만, 개헌세력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2017년보다도 못하다. 그때만큼의 리더십도 없고 의석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회의가 일어섰다. 24일 국민집회 때 나온 성명서는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와 무기를 지원하고 중국이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하면서 남중국해 등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다가 트럼프까지 당선된 지금의 정세에 우려를 표시했다.

트럼프 때도 미일동맹은 잘 작동됐지만 바이든 때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극우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2기가 상대적으로 불안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명서는 "앞으로 미국이 자국제일주의를 고집하고 지역의 안전보장을 경시하면 아시아에는 힘의 공백이 생겨 중국·북조선의 폭발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본회의는 자민당의 형편이 말이 아닌 데다가 '미국만 제일'이라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북한과 중국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일본회의가 꿈틀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위 성명서의 본문은 "총력을 결집해 헌법개정 실현을 향해 일어설 때다"라는 말로 끝난다.

헌법 개정 추진하는 자민당 내 움직임

지난 11일 도쿄에서 열린 임시 국회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월 27일 총선에 따른 2차 총리 지명 의회 투표에서 총리로 재임명되자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AFP/연합뉴스

일본회의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는 흐름이 때를 맞춰 자민당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 25일 자 <산케이신문> '자민, 개헌 향해 신체제'는 "헌법개정을 향한 자민당의 신체제가 확실해졌다"며 중의원 헌법심사회에서 타 정당과의 교섭을 담당할 자민당 수석 간사에 후나다 하지메 전 경제기획청 장관이 재기용되고 자민당 내부의 조정 역할을 맡을 헌법개정실현본부장에 후루야 게이지가 유임된 일을 전했다.

과거에 국회 헌법조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헌법족'의 중진으로 평가받는 후나다 하지메 전 장관이 원내 교섭을 통해 자민당의 의석수 부족을 만회할 책임을 안게 됐다. 위기에 빠진 자민당 내부를 개헌으로 유도할 책임은 후루야 게이지 본부장이 계속 맡게 됐다. 극우세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자민당의 체제 정비가 이뤄진 것이다.

일본회의를 비롯해 자민당을 추동하는 극우세력은 전쟁 및 군대 보유를 금지한 제9조의 전면 개정을 목표로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므로 지금으로서는 개헌세력 내의 공감대부터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앞으로 한동안 자민당은 공명당·일본유신회·국민민주당과의 공통분모를 도출하는 데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

총선을 11일 앞둔 지난달 16일 NHK가 요약해 보도한 각 당의 기본 입장에 따르면, 공명당은 제9조를 유지하는 선에서 자위대를 헌법 내에 자리매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유신회의 입장은 제9조의 평화주의 및 전쟁 포기를 인정하는 전제하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민당과 국민민주당은 개헌에는 찬성하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자위대 명기를 반대했다. 일본공산당은 제9조 개정을 단호히 반대했다.

이 같은 각 당의 입장을 고려하면, 당장에 제9조 전체를 개정하거나 교전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개헌을 추진하기보다는, 자위대를 헌법 조문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자민당에 유리함을 알 수 있다.

이 방안은 제9조 전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므로 전쟁에 대한 일본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개헌세력과 반대세력 간에 입장 차이가 비교적 선명한 '자위대 명기' 부분을 이슈화시킴으로써 개헌세력 내부를 통일하고 입헌민주당과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할 수 있다.

극우세력을 대변할 정치세력이 국회에서 줄어든 지금 상황은 극우세력이 더욱 크게 목소리를 내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쉽다. 탈냉전 및 버블경제 붕괴와 함께 자민당이 약화되고 정권을 잃기까지 했던 1990년대 중반에 일본 극우는 오히려 강해졌다. 일본회의가 창립된 것도 1997년이다. 한국인들을 분노시킨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결성된 것도 그해다. 자민당이 약해진 시기에 극우가 더욱 요란을 떨었던 것이다.

그런 움직임은 그들의 세력 확대로 이어졌다. 자민당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자민당의 주류는 아니었던 극우세력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집권 이후로 자민당의 주류로 올라섰다. 이를 배경으로 아베 신조가 2006년에 제1차 내각을 출범시켰다. 자민당이 또다시 일대 위기에 처한 지금, 일본회의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개헌을 표방하며 꿈틀대는 것은 과거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에도 그랬고 20세기 말에도 그랬고, 일본 극우는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한국을 공격하거나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대중의 지지를 확보했다. 그것이 일본 국민들을 극우로 기울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사도광산 추도식의 정부 대표로 11일 전 외무성 정무관이 된 극우 정치인을 파견해 한국을 기습적으로 자극하는 이번과 같은 사례는 개헌 추진에 나선 일본 극우세력을 솔깃하게 만들 만한 참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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