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5 11:35최종 업데이트 24.11.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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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한국 정부 대표자와 관계자들의 자리가 비어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다 끝날 듯했던 사도광산 문제가 윤석열 정권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있다. 한국인 강제징용 현장인 이곳에서 24일 거행된 추도식은 윤 정부와 이시바 시게루 일본 내각의 합동으로 치러지지 못하고 일본만의 반쪽 행사로 끝났다. 사실상의 외교 참사다. 윤 정부는 23일에 행사 불참을 결정하고 25일 오전에 단독 추도식을 거행했다.

윤 정부가 협조해 주지 않았으면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을 가능성은 작다. 윤 정부는 성의표시 차원에서 차관급 인사의 추도식 파견을 일본에 요청했다. 일본은 이 요청대로 외무성 정무관을 파견했다. 그러나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을 파견한 것이 화근이 됐다.


홈페이지에 적힌 프로필에서도 확인되듯이, 참의원 의원을 겸하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은 1968년에 태어나고 18세 때인 1986년 연예계에 데뷔해 배우와 걸그룹 가수로 활동했다. 48세 때인 2016년부터 내각부 및 후생노동성 등에서 민간위원 같은 명목으로 활동하다가 아베 신조 피격 이틀 뒤 치러진 2022년 7월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외무성 정무관으로 발탁된 것은 한·일 양국이 추도식 참석자를 놓고 논의를 진행하던 이 달 13일이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쿠이나 정무관은 24일 추도식에서 "선인들의 노고에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표함과 함께,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사도광산에서 희생된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했지만, 애도의 대상이 강제노역 피해자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또 가혹한 노동이 있었다고만 했을 뿐, 노예노동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았다. 인권을 억압하고 노동을 착취한 부분에 대해 반성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표시한 애도의 발언도 23일부터 논란이 된 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경력으로 진정성을 잃게 됐다. 24일 자 <니가타 뉴스>에 따르면 그는 "나는 참의원 의원이 되고 나서는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라며 한국 측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참의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2년 7월 10일의 제26회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의 임기는 그달 26일 개시됐다. 23일 밤 보도된 <산케이뉴스> 기사는 "이쿠이나씨는 2022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알려준다.

야스쿠니신사는 A급 전범들을 포함해, 일본이 제국주의국가로 전환된 메이지시대(1867~1912) 이후로 전쟁터에서 일왕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그중에는 전쟁에 동원된 피해자 민중도 허다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 신사를 설치한 목적은 '왕을 위해 죽으면 이런 데서 추모를 받는다'며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일왕의 이름으로 지난 150년간 자행한 각종 전쟁을 그런 식으로 미화하는 곳이다.

그곳을 하필이면 8월 15일에 찾았다. 이 신사의 춘계 예대제 행사가 열리는 4월 21일 즈음이나 추계 예대제가 열리는 10월 17일 즈음에 참배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되지만, 일본이 특히 자숙해야 할 8월 15일에 참배하는 것은 더욱더 문제가 된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피해자 국가들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1945년 8월 15일 이전을 기억할 의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이날을 패전일이 아닌 종전일로 치부한다. 이런 날에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극우세력은 패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열의로 가득하다.

이쿠이나 정무관도 그런 생각으로 참배했으리라는 판단을 가능케 하는 증표는 비교적 충분하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 이외의 여타 방식으로도 자신의 군국주의적 경향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봉인한다고 했지만

일본 외무성의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24일 오후 니가타현 사도섬 서쪽에 있는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과거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논란이 되면서 한국 정부는 전날 행사 불참을 선언했다.연합뉴스

2022년 선거 전에 JX통신사가 실시한 후보자 설문조사에서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은 무응답 표시를 많이 했다. 정치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성결혼을 법률에 명시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는 항목에 대해 그가 무응답 기타의 태도를 보였다고 통신사는 보도했다.

또 각 정당의 공직 출마자 중에서 여성 후보의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출산비를 보조하는 출산 육아 일시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은행이 대규모 양적 완화를 계속해 통화량을 늘리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등을 묻는 문항에 대해서도 그는 아무런 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아주 명쾌하게 자기 생각을 표시한 몇몇 항목들이 있다.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는 일,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 적국의 공격이 개시되기 전에 적의 미사일 기지 등을 선제타격하는 적 기지 공격능력(반격능력)을 갖추는 일에 대해서는 찬성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는 일에서만큼은 적극적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태도는 마이니치신문사가 실시한 후보자 설문조사에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방위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도 드러냈다.

"일한관계는 전 징용공이나 전 위안부 문제에서 대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라며 양국관계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대립하는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당시의 한국 정부는 윤 정부다. 윤 대통령이 좀 더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셈이다.

그는 군국주의나 한일 역사문제에서 유독 명확하게 극우적 의견을 표시했다. 자신이 어떤 정치인으로 알려지기 원하는지를 명확히 표시하는 이 행동은 그가 일본 극우정치의 아이콘이 될 의향이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 그가 하필이면 8월 15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극우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노출한 그런 인물을 일본은 사도광산 추도식 11일 전에 외무성 정무관으로 임명한 뒤 추도식에 정부 대표로 파견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들을 농락한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협력자인 윤 대통령의 뒤통수도 내리친 셈이 된다. 윤 정부는 일본을 우군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윤 정부만의 생각일 뿐이라는 게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다 끝나는 듯이 보였던 사도광산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든 윤 정부는 일본 정부마저 비협조적인 상태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맞닥트려야 한다. 24일 추도식에 불참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에 속하지만, 이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윤 정부는 사도광산의 새로운 갱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를 봉인한다고 봉인했지만, 그나마 제대로 봉인하지 않아 뒷덜미를 잡히고 있다. 뒤늦게라도 사도광산 강제징용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쪽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 한층 더한 난관을 만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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