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2 11:53최종 업데이트 24.12.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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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인사들의 역할과 이들이 주도한 정책을 분석해 그에 따른 문제점과 사회적 파장을 조명하는 기획입니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이 빚어낸 국정 난맥상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합니다.[편집자말]
안창호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9월 9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인권위원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0월 27일 광화문과 서울시청 일대에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린 것이다. 만약 이들이 행사 이름처럼 정말 예배만 하고 헤어졌다면 이상할 건 없겠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주최 측이 발표한 100대 기도문에는 '동성애 차별금지법'과 '젠더 성혁명'에 반대한다는, 보수 개신교계가 성소수자 혐오를 주장할 때 쓰이는 표현이 고스란히 담겼다. 만연한 성차별을 '젠더 갈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아예 페미니즘을 '악한 사상'이라고 지목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계가 극우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이전부터 성소수자 인권 증진과 성차별 해소를 '사회악'이라 지목했던 걸 생각하면 그다지 별일이 아니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10만 명이 참여했다. 조금 더 보수적이라 측정된 경찰 추산을 봐도 23만 명이 모였다.

이 정도의 인원이 서울의 도심에 집단으로 모여 혐오와 차별을 주장하는 집회를 했다는 건 꽤나 위험한 신호다. 실제로 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아예 '혐오'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를 만큼 이와 관련한 사회적 문제로 시름해왔다. 특히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주민이나 외국인에게 표출되는 증오를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현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요한 시기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지난 10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와 여의도에서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를 개최한 가운데 한 참가자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누적된 사회적 불만을 만만한 소수자나 약자 집단에게 투사하는 흐름은 결국 폭탄 돌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내용의 혐오와 배제를 마주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동과 노인이 멸시를 당하고 특정 공간에 출입조차 금지되는 상황을 이전에는 상상해본 적 있는가. 아동과 노인은 사회에서 가장 보호와 존중을 받는 집단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차별과 혐오는 상대방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기에 발생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기본적인 인권의 침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차별과 혐오의 여파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겠다면 그 방식은 소수자의 인권을 더욱 철저히 보호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계가 있을지라도 이 일을 수행해 온 국가 기관이 있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비록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가 시정권고일지라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소수자를 구제할 방파제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권위가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인권위의 상황을 보면 시대적 필요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는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 책임이 매우 큰데, 위원장으로 부적절 인사라 할 인물이 인권위의 수장으로 임명된 이후 인권위의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위원장, 위기의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9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입장과 역사관 논란 등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유성호

잠시 9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는 후보 신분이었던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하여 경악스러운 발언을 쏟아냈다. 창조론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 반면 진화론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했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으며 그 이유로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핵심 수단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해괴한 이유를 들기도 했다.

사실 이런 내용의 발언들은 안창호 위원장이 이전에도 주장해 왔던 것으로 시민사회 단체에서는 일찌감치 이를 이유로 후보자 자격을 주는 것조차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아예 당당하게 문제적인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여느 때와 같이 시민사회의 우려를 무시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을 감행한 것은 덤이다.

그래서 지금 인권위는 어떠한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주요 사업 관련 예산 대부분이 올해와 비교해 축소되어 편성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삭감 내역을 살피면 '장애인 인권증진 사업'은 1억 4300만 원, '취약분야 인권개선 사업'은 1억 3300만 원, '차별시정 및 혐오대응 강화사업'은 2600만 원이 줄었다. 아예 예산이 통째로 날아간 사업도 있다. '인권상황 개선방안 연구' 예산이다. 인권위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분야의 예산을 줄이거나 아예 날리는 건 기관의 설립 목적에 역행하는 자기 파괴적 행위가 아닌가.

시대를 읽지 못한 대통령의 인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임명장 및 위촉장 수여식을 마친 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과 함께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문제는 예산만이 아니다. 최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 국장단은 2025 업무계획 수립을 위한 회의를 연 뒤 "평등법 관련 업무 내용을 현 상황을 고려해 정비 요청한다"는 취지의 논의 내용을 각 부서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유는 국회에 발의된 법안도 없고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어서라고 한다.

이에 인권위의 구성원들은 위원장의 성향에 따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주요 과제로 삼았던 기관의 기조가 바뀌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럴만한 것이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의 논란이라는 게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안창호 위원장의 태도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닌가.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소식들이 안창호 위원장의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의 근간이었던 의사결정 구조와 주요 사업 그리고 추진 과제들이 위협을 받거나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문제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화되고 있고, 지금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어떤 끔찍한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 불안한 흐름을 여느 때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읽지 못했고,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기관을 마비시킬 인사를 단행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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