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병원비 때문에 고통받는 암환자는 예전에 비해 줄어 들었다. 공적의료보험 체계가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고 누구나 하나 정도는 들고 있는 암보험까지 있어 경제적 충격은 크지 않다. 의료 수준이나 치료약도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암은 사망원인 1위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잊을 만하면 암병동에서 호출을 받는다. 계절과 관계없이 그 길을 가는 내 마음은 늘 을씨년스럽다. 그런 반복을 하는 동안 나는 두 암병동에서 태운 손님들의 목적지가 대체로는 서울역이나 수서역 또는 김포공항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원정 온 환자들이었다.
서울에 있는 7만여 대의 택시들 중 하나인 내가 이럴 정도면 암치료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는 환자들 수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암환자 만이 아니었다.
두 달 전 서초구에서 택시를 탄 오십대 남자손님은 무릎을 고치기 위해 포항에서 서울로 와 수술하고 입원까지 했다가 내려가는 길이었다. 가까운 부산에서도 그 정도 수술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내 말에 그는 내 몸의 어딘가를 찢는 일은 크고 작고가 아니라 죽고 살고의 차원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병원은 내가 매일 단골로 들르는 가스충전소에서 큰 길 건너 맞은편 가까운 곳에 있었다. 차들이 쏜살같이 내달리는 큰 길로 난 정문은 늘 사람 흔적 없이 한가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을 내려주려 들어간 후문에는 형광조끼를 입은 주차원들이 붉은빛의 경광등을 흔들며 차와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인적 없던 정문과 달리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후문 풍경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놀랐다. 게다가 각종 병원이 즐비한 거리도 아니고 역세권도 아닌 한산한 주택가 앞 큰 길가에 얌전하게 서 있는 건물 하나가, 무릎 수술로는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병원이었다는 사실이 생경스러웠다.
또 어느 날은 강남역 인근 병원에서 허리협착증을 고치기 위해 수술과 입원을 하고 퇴원하는 중년 여성을 수서역에 내려주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지방 대학병원에서 고지 받은 암이 오진은 아닌지 정말 암이 맞다면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큰 병원을 찾아 온 60대 남자를 크다고 소문난 병원에 내려주기도 했다.
큰 병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통설을 익히 들어왔지만 택시를 하면서 직접 체감한다. 암뿐 아니라 크다고 생각되는 질병이나 질환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나 혼자 실어나르는 지방 환자들이 이럴 정도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젓이 서 있는 지방 대학병원까지 외면하고 서울로 몰려드는 것일까.
'올 상반기 지방에서 서울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는 167만 806명이었다. 이 중 59.3%인 99만4401명은 빅5 병원에서 진료받았다.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은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등 '빅5'병원을 포함해 14곳, 종합병원은 44곳이다. <헬스조선.2024.09.09>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은 지방 환자의 통계가 이 정도라면 위에 소개한 무릎이나 허리 또는 내가 모르는 질병이나 질환을 잘 고치기로 소문난 중소병원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는 얘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주요수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인들이 받은 상위 5개 수술의 절반 이상이 서울·경기·인천 등의 병원에서 이뤄졌다. 이 비율도 2015년 50.0%에서 2021년 53.7%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수도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국민 2명 중 1명의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에게 한국인들이 주로 받는 주요 수술 경험이 쌓이니 환자들도 점점 더 많은 임상 경험이 있는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시사저널.2023.05.08>
이 기사 말미에는 '습관적으로 환자와 의사의 서울 집중으로 인해 지방의료 인프라조차 붕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달린다. 새삼스럽지 않다. 오래된 문제이고 당연한 의견이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육성하는 지역거점대학처럼 지역거점병원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큰 병은 서울로'라는 통념, 언제쯤 깨질까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관.
권우성
의사들이 서울로 오고 서울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유는 모든 게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 다녀야 할 일등급 학원이 즐비한 대치동도, 강남에 있는 아파트도, 언제든 뮤지컬 공연이 펼쳐지는 예술의 전당도 서울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병원과 가장 많은 환자들이 서울에 있다. 서울은 한국사회 특권층인 의사들이 살기에 가장 적절한 도시다.
의사는 여간해서는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의사들을 찾아 환자들은 서울로 온다. 집은 남도 끄트머리에 있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20대 딸을 둔 50대 엄마가 손님이었다. 되게 외향적이었던 그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30여 분 잠깐의 침묵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쉬지 않고 말했다. 유방암에 걸렸는데 볼 것도 없이 바로 딸이 있는 서울로 와서 암을 제일 잘 고친다는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항암도 하고 수술도 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병에 걸린 친구는 지방 큰 병원에서 덜컥 수술부터 했는데 몇 년 되지 않아 재발이 됐다. 자신은 재발 없이 완치되는 중인데 일찍 서울에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조목조목 내게 설명했는데 글로 옮기기엔 적절치 않다. 비의료인의 확신에 찬 의료적 추론이다. 그녀의 결론은 어쨌든 서울과 지방의 어쩔 수 없는 의료수준 차이였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추론을 굳게 신봉했다. 병이 치유되고 있는 자신의 몸이 증거였다. 큰 병은 서울로라는 통념은 우리 사회 저류에 흐르는 큰 물줄기다. 오랜 과거로부터 다져진 밑바닥 정서다. '인서울'을 염원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정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 옛날 쌀 팔고 소 팔아 대학등록금 마련하던 시절에도 서울에 있는 일류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면 어떤 부모든 집이라도 팔 기세였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서울로의 향심은 참으로 꺾기 힘든 민심이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귀에 익은 이 말은 사람의 본능적인 희구를 간파한다. 중심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향심이 도시를 만들고 서울을 키웠다. 수학에서 같음을 나타내는 기호는 등호(=)다. 이는 영어로 이퀄(equal)인데 그 의미는 같다 동등하다 균등하다 등으로도 쓰인다. 향심과 마찬가지로 평등과 공정도 인간 본성에 내재된 마음이다.
서울과 지방과의 의료격차 문제에 대해 정부와 학계 등이 나서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말해왔다. 의료서비스 접근성 향상과 원격의료 서비스 제공, 이동형 의료 서비스와 지방 의료 인프라 투자, 지역 사회 건강 프로그램 활성화와 정기적인 건강검진 등이 반복되어 되풀이 된다. 거기에 지역거점국립대학이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혁신도시처럼 지역거점병원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관련 전문가도, 심지어 현존하는 모든 자료들을 섭렵해서 순식간에 분류하는 인공지능(AI)도 도출해내는 적절하고 필요하다는 정책이다. 이 정책들이 올바른 것인지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이런 정책들이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벌어진 서울과 지방과의 의료적 수준을 당장 같은 수치로서의 평균값으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일 뿐만 아니라 사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편차를 줄이기 위한 중단없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이다.
공교롭게 나는 삼일 전 서울역에서 태운 손님을 신촌의 암병동에서 내려주었고 바로 어제는 강남 일원동에 있는 암병동에 젊은 여자 손님을 내려주고 왔다. 이제 나에게 어느 쪽이든 암병동으로 가는 길은 너무 익숙해졌지만 거기 산그늘진 좁은 길을 따라 병동 앞으로 갈 때 절로 스산해지는 마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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